다음 달이면 육아를 시작한 지도 만 1년이 된다. 육아하는 아빠로서 1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으니 육아의 '달인'까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아가를 돌보며 마주하는 어지간한 사건·사고에도 의연한 마음을 가지게 된 줄 알았다. 갑작스러운 아가의 응가에도, 울음에도, 격렬한 몸부림에도 크게 심호흡 한 번 하며 웃을 줄 아는 여유가 생긴 줄 알았다. 아니었다. 착각이었다.
아가는 하루가 다르게 커가면서 새로운 발달 단계로 진입했다. 멍하니 누워서 천장만 쳐다보던 아가는 뒤집기를 시작했고, 또 어느새 네 발로 바닥을 쓸고 다니기 시작했으며, 지금은 손에 잡히는 무엇이든 집고 일어서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먹는 것도 때마다 적당량의 분유만 들이키면 세상 행복해하던 녀석이었는데, 지금은 물, 밥, 과일, 과자뿐만 아니라 입에 들어가면 곤란한 것들까지 손에 쥐려고 난리 난리 생난리를 치며 아빠를 곤란하게 만들고 있다.
아가는 매번 새로운 발달 단계에 진입할 때면, 어김없이 전에 없던 버라이어티 한 상황들로 자신을 돌보는 아빠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아빠는 아가가 기어 다니기 시작할 무렵에는 아가가 어디서 어떻게 넘어질지 몰라 조마조마했었고, 처음 이유식을 먹을 때는 혹여나 음식물이 기도로 넘어가지는 않을까 매 순간 긴장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생경한 상황으로 마음을 졸이던 순간은 금세 잊혀 갔고, 낯선 상황에 어설프게 대처했던 시간들도 점차 경력직의 여유로 응하는 때가 찾아왔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육아, 별거 없네?'라고 생각하며 시건방 춤의 무브먼트를 시작하는데...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우리 아가는 세상 잘 자고, 잘 먹고, 잘 기어 다니고, 잘 웃고, 응가도 잘하는 효녀 중에 효녀라고 생각했다. 우리 아가가 효녀가 된 데에는 육아하는 아빠의 엄청난 노력과 인고의 시간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라고 자화자찬하면서... 그때는 미처 몰랐다. 엄청난 시련이 초보 아빠를 기다리고 있을 줄.
이번에'도' 아빠의 반복되는 교만 때문에 하늘이 노(怒) 하신 것이 분명했다. 불행하게도 이번에'는' 전에 없던 총체적 대재앙의 하루하루였다. 저녁 무렵 잠들면 아침까지 기절한 듯 잘 자던 아가가 새벽녘에 깨기 시작했다. 어쩌다 한 번으로 그칠 줄 알았던 새벽녘의 전투는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일주일 내내 이어졌다. 아침을 알리는 닭 울음소리처럼, 아가의 울음소리는 고요한 새벽을 뒤흔들었다.
고난은 아가의 컴컴한 새벽 시간에서 그치지 않았다. 아기 새가 입을 벌리듯 숟가락이 다가오면 쩍쩍 입을 벌리며 오물오물 맛있게 밥만 잘 먹는 아가였는데, 이제 밥 먹는 시간이 아주 큰 고역이 되었다. 어르고 달래야 겨우 한 입을 먹을까 말까, 어렵게 입으로 들어간 밥도 주르륵 내뱉기를 반복하였다. 무엇보다 밥 먹는 시간 내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데...
옷을 입히는 것도 이렇게나 고된 일이 될 줄 몰랐다. 심지어 외출 시간이 다가오면 가슴이 두근두근하기까지 했다. 지도 어차피 옷을 입어야 하는 것을 알 텐데도(모르려나??),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기를 쓰고 옷 입기를 거부했다(정확히 표현하자면, 아빠가 옷 입히는 것을 있는 힘껏 방해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옷만 거부하면 그나마 다행일 텐데, 더 큰 문제는 기저귀였다. 응가 스멜과 함께 공포가 엄습하는 느낌...
시간은 흘러 흘러, 다행히 이번 주도 어김없이 주말이 다가왔고, 아빠는 엄마의 도움으로 쌓여있던 스트레스를 풀고 에너지를 보충하며 비교적? 평화로운 주말을 보낼 수 있었다. 물론, 아가는 주말에도 여전히 새벽을 깨웠고, 밥알들을 던지며 소리를 질렀으며, 난리부르스를 추며 겨우겨우 옷을 입었지만 말이다.
잊을만하면 다시 맞닥뜨리고, 익숙해질 만하면 새롭게 등장하는 육아 세계의 고난 덕분에, 나는 여전히 '초보 아빠'의 티를 벗어나지 못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 어려운 시기를 버티고 버티다 보면 새로운 미션에 적응할 테고, 고생했던 순간들은 잊혀가겠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번 주도 무사하길... 바라는 염원을 담아 주문을 외워본다.
"아브라카다브라! 다 이뤄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