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18일, 22학년도 수능 응시인원은 509,821명이었다. 50만명이 넘는 수험생 여러분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감독하신 중등 선생님들 저어어어어엉~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하루 감독하고 적지 않은 감독비도 받는데 대체 왜 고생이냐고? 이제부터 극한업무 수능감독 체험기를 풀어놓으려 한다.
1. 감독 선발부터 싸움은 시작된다.
보통 수능 한 달 전쯤부터 각 학교별로 수능감독 선발 공문이 온다. 학교별로 감독 인원이 정해서 오며 고등학교는 중학교에 비해 배정인원이 많다. 고3담임(우리는 특성화고라 고3담임들도 차출됨)이거나, 지병이 있어서 오래 서 있기 힘들거나(진단서를 제출하기도 한다) 자녀가 고3인경우는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교사들이 감독 명단에 올라간다고 보면 된다. 명단을 보며 겉으로 말은 안 하지만 다들 누가 감독에 가고 누가 감독에 안 가고를 다들 파악하고 민감하게 반응한다. (감독선발 때문에 싸우는 경우도 봤음) 오죽하면 내년에 마흔 넘은 남편 수능 원서 접수시켜야겠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다.
2. 감독 배정 학교 발표
감독 열흘 전에 감독 배정 학교가 발표된다. 우리집에서 가까운 학교가 당첨되면 땡큐하지만 감독 10년 인생에서 그런 적은 손꼽을 정도로 드물다. 코앞에 고등학교를 두고 새벽부터 1시간 가까이 운전해서 감독하러 갈 생각을 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같은 학교에 감독 가는 샘들 중에 친분 있는 샘들이 있으면 그래도 조금 힘난다.
3. 예비소집은 수험생만 하는 게 아니다.
수능 전날 오전에 수험생 예비소집이 끝나면 오후엔 감독관 예비소집 및 교육이 있다. 이 때 모여서 2시간 정도 교육을 받는다. 모든 책임을 감수하겠다는 노예 계약 같은 서약서에 나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외치고 싶지만 손은 이미 도장을 찍고 있다. '우리학교는 5교시 제2외국어 한문이 없습니다'라는 교감샘의 말에 샘들이아이처럼 신나서 다들 박수를 치는데 나도 함께 따라서 친다. 귀로는 교감샘의 말씀을 듣고 눈으로는 감독관 업무 안내 책자를 보며 머릿속으로는 1교시부터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잔뜩 긴장하여 설명을 듣다가 지쳐서 한숨이 나올 때 쯤이면 교육은 끝난다. 내일 절대 늦지말라는 신신당부의 말씀을 뒤로 한 채 끝나자마자 쏜살같이 뛰쳐 나온다.
4. 집에와서 복습 또 복습
수능은 누군가에게는 20년에 가까운 노력이 결실을 맺는 아주 중요한 일생일대의 시험이므로 내가 그 시험을 망치면 더더욱 안된다(책임지겠다는 서약서에 도장을 찍었으므로 더더욱). 저녁을 먹고 숙제하는 아이 옆에서 감독관 교육자료를 읽고 또 읽는다. 내가 1감독인지 2감독인지도 알 수 없기에(1감독과 2감독은 같은 교실에 감독으로 들어가지만 업무가 다르다)1감독 내용도 확인, 2감독 내용도 확인한다.
나는 육휴로 감독을 2년 만에 나가는 거라 그동안 바뀐 내용이 있어 머리가 아프다. 어라? 교실에 감독관 의자가 있네. 오~ 좋다. 그 전엔 하루 종일 서있느라 허리 아파 죽는 줄 알았는데(난 척추측만증이다) 잘 됐네... 교실마다 의자 2개 배치되었는데 4교시(감독관 3명입실)엔 동시에 이용하지 말라고? 의자 돌려가며 앉는 건 미리 정해서 순번을 정하라고? 그럴거면 왜 갖다놨냐고! 의자에 앉아서 감독하면 애들 감독하는 데에 지장이 있는거야? 게다가 교탁 앞에는 왜 의자 안 놔주는 건데!
공부하다말고 화딱지가 나서 교육자료를 집어 던지고 누구인지도 모를 허공에 대고 미친년처럼 혼자 막 화를 낸다. 도대체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김수영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가 생각나서 서글퍼짐)
5. 시험 전 날 잠은 꼭 설친다.
내일 아침에 7시까지(7시 20분까지랬지만 일찍 가야 주차장도, 대기실 자리도 좋은 곳을 선점 할 수 있다)학교에 도착하려면 5시 반에는 일어나야 하니까 더 놀고 싶다는 아이를 재촉해 강제로 불을 끄고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든다. 늦으면 안되는 강박관념 때문인지 자다가 두어 번 깨서 시계를 본다. 2시 30분..아직 더 자도 되는군..4시 15분...조금 더 자고 일어나자...
6. 결전의 그날이 밝았다. 하지만 지각생은 여기에도 있다.
자다깨다 반복하다 6시 조금 넘어 집을 나선다. 도장 잘 챙겼는지 확인하고 집을 나선다. 해가 아직 안떴네. 이렇게 해뜨기 전에 밖에 나가본 게 언제였지? 아..2년 전 수능 감독 때였구나...슬프다.
다행히 늦지 않게 도착하여 주차도 잘 하고 좋은 자리도 맡았다. 다들 아침을 못 먹고 오는 걸 아는지 학교에서 샌드위치를 하나씩 나눠준다. 제발 1교시 감독만 아니기를 빌면서 샌드위치를 꾸역꾸역 입으로 밀어 넣는다. 교사들도 휴대폰을 제출하라고 해서 제출했다.
수능 뉴스 보면 늦어서 경찰차나 경찰오토바이를 타고 등교하는 수험생들이 있다. 교사들도 마찬가지다. 각자의 어쩔 수 없는 피치못한 사정으로 한 두명의 샘들이 늦게 와서 담당자들의 발을 동동 구르게도 한다. 올해도 지각자는 어쩔 수 없이 발생하였고, 파견 장학사가 와서 늦은 샘을 학생 혼내듯이 훈계를 하는데(시험 치르는데 지장없으면 그냥 좋게좋게 넘어갑시다 좀!) 보기 좋은 그림은 아니었다.
7. 1교시
본부에서 1교시 감독표를 대기실에 붙여준다. 다들 합격자 발표 보는 것마냥 떼지어 몰려가서 자기 이름이 어디있나 찾는다. 아싸! 나 1교시 없다! 하지만 이건 조삼모사에 불과하다. 1교시 감독이 아니라는 건 2,3,4감독을 내리 연타로 해야한다는 소리이므로. 그래도 1교시는 휴대폰 및 전자기기를 수거하고, 결시자파악도 하고, 수능샤프와 컴싸도 나눠주고 암튼 정신없이 바쁘다..그리고 수험생들도 교사들도 다들 긴장해 있다.
1교시는 8시 10분에 들어가서 10시에 나온다. 쉴 수 있을 때 쉬어야 한다. 하지만 교실에 들어가서 실수하면 절대 안되므로 안내책자를 부여잡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린다. 커피가 먹고 싶었지만 중간에 화장실 가고 싶어지면 안되므로 물도 조금만 마셨다.
8. 2교시
역시나 1감독 당첨ㅠㅠ 본부에 가서 시험지, 답안지, 응시원서철, 응시자현황표, 결시자현황표, 컴싸, 샤프, 수정테이프, 스탬프 등(이건 많아서 바구니에 담아준다)을 챙겨 2감독샘과 함께 교실로 간다. 살짝 긴장되었지만 애써 태연한 척 들어간다. 니트릴 장갑을 끼고 있으래서 끼고 있는데 벌써 손에 땀이 차기 시작한다. 예비령이 울리면 문제지와 답안지를 개봉하고 수량을 확인 후 수험생들에게 유의사항을 설명하고 답안지를 먼저 배부하고 성명,수험번호를 마킹하도록 한다. 준비령이 울리면 문제지를 홀수형, 짝수형에 맞게 배분한다. 교실에 24명이 배치되었으며, 수험번호가 홀수면 홀수형, 짝수면 짝수형 문제지를 배부받는다. 본령이 울리면 학생들은 문제를 풀기 시작하고 감독관은 응시표를 보면서 학생 본인여부를 확인 후 답안지에 도장을 찍어준다.
응시원서철을 보면서 도장을 찍어주는데 익숙한 이름과 얼굴이 보인다. 내가 중학교 근무할 때 가르쳤던 학생이다. 어머 너 벌써 고3됐니? 반갑다 야~ 하고 싶지만 꾹 참고 모른 척 한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시험을 잘 보길 응원한다.
10시 20분에 시작한 2교시는 12시 10분이 되어서야 끝났다. 점심시간에 각자 책상에 종이 가림막을 설치하고 식사해야 한다고 해서 박스 개봉 후 학생들에게 하나씩 나눠줬다.
9. 점심시간
박스 배부 후 본부로 내려와 수거한 시험지와 답안지를 제출했다. 수량이 이상없나 확인될 때까지 대기했다가 가셔도 좋습니다란 얘기를 듣고 시계를 보니 12시 20여분...급식실이 어딘지 몰라서 또 엉뚱한 데서 헤매다가 꼴찌로 급식 줄을 섰다. 내 앞 4명쯤 되었을 때 샐러드가 다 떨어졌다. 급식소 여사님이 준비된 게 없다고 치워버리신다. 황당하고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이눔의 학교는 감독관들 밥 주는 것도 아깝나보다. 어차피 시간 부족해서 다 못먹는다고 애써 위로했다. 앉아서 시계를 보면서 꾸역꾸역 밥을 먹었다. 이따가 4시반까지 계속 서 있으려면 무조건 먹어야 한다! 메뉴는 수육. 체하면 큰일나므로 상추에 싸서 우걱우걱 전투적으로 씹어 먹는다.
밥을 다 못 먹었지만 45분이 되어서 그냥 일어났다. 화장실도 가야하고 양치도 해야 하므로. 급하게 계단을 뛰어올라 화장실에 가고 서둘러 양치를 했다. 얼굴이 초췌해보여 화장이라도 고치고 싶었지만(사실 내 얼굴이 초췌하든 개기름으로 번들거리든 아무도 관심이 없다는 거 다 안다. 이럴 땐 마스크를 써서 어찌나 다행인지)1감독관들 본부로 오라고 방송이 나온다. 젠장 나 또 1감독이야! 종종걸음으로 본부에 가서 시험지 봉투와 바구니를 들고 교실로 올라간다.
10. 3교시
3교시는 영어시간. 그나마 시간이 빨리간다. 영어는 25분정도 듣기평가가 있다. 이 때 소음발생이 되면 큰일나므로 교실창문을 밀폐 수준으로 다 닫고 듣기가 진행된다. 게다가 교실은 온풍기가 25~6도로 맞춰쳐 있다.분주하게 막 왔다갔다해서 그런지 땀이 났다. 교실을 둘러보니 학생들의 반 정도가 반팔차림이다. 하지만 난 목폴라니트에 코트차림ㅠㅠ 패딩은 부스럭 거리는 소리때문에 민원발생할까봐 입을 엄두도 못 냈다. 조용히 코트를 접어 바닥에 내려놓고 팔을 걷어붙이고 머리를 질끈 묶었다. 듣기 평가가 끝나자마자 학생들이 덥다고 창문을 열어달라고 해서 창문을 열었는데 살 것 같았다.
대충 찍고 시작부터 엎드려 자는 학생들도 있지만 종치기 바로 직전까지 끝까지 문제를 푸는 학생들도 있다. 대놓고 쳐다보면 또 방해될까봐 다른 데 보는 척 하면서 마음속으로 파이팅! 응원한다. 지루할 때는 응시원서철을 보며 인물탐구에 빠지기도 한다. 어 얘는 우리동네 사네? 얘는 우리학교 옆 학교 학생이네? 얘는 공부 엄청 잘하게 생겼네? 얘는 재수생이네? 잘 됐으면 좋겠다~이러다 보면 서있느라 다리 아픈 것도 잠시 잊는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마킹을 시작도 안한 수험생이 있으면 내가 다 조마조마하다. 10분 전에 안내방송이 나오고 각자 챙겨 온 시계가 있긴 하지만 혹시 시간을 모르고 있는 건 아닌가.. 가서 시간 얼마 안남았다고 마킹하라고 얘기해줘야 하나.. 온갖 걱정을 하고 있다보면 수험생이 마킹을 시작한다.(나는 쫄보라 문제를 다 못 풀었어도 5분 전에는 이미 마킹이 다 끝나 있어야 안심이 된다) 내 시선은 마킹하는 수험생의 손과 시계를 왔다갔다하고 종이 울리기전에 마킹이 안 끝나면 어쩌나 초조해하고 있을 때 드디어 마킹이 끝난다. 휴~ 다행이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종이친다. 서둘러 시험지와 답안지를 걷어 본부로 내려오고 참았던 화장실로 직행!!
11. 4교시
오예! 이번엔 1감독 아니다~!!! 드디어 한 번 앉아볼 수 있게 되는구나!!! 마음의 부담을 조금 덜고 교실로 향한다. 1감독의 지시에 맞추어 답안지와 시험지를 배부했다.
4교시는 혼란의 도가니다. 일단 한국사와 탐구영역2과목을 한꺼번에 보기 때문에 복잡하다. 탐구 2과목은 본인이 선택한 순서대로 시험을 봐야 하는데 1선택 시간에 2선택을 보거나 동시에 2과목을 한꺼번에 보거나 하면 부정행위로 처리된다(대체 왜이렇게 복잡하게 해 놓은 건지 단순한 나로서는 당췌 이해가 안감) 여튼 1선택시간에 1선택 과목 시험지를 잘 보고 있는지 확인, 2선택 시간에 2선택과목 시험지를 잘 보오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래도 의자 덕분에 중간중간 10분정도 앉아있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4교시쯤 되면 정말 극도의 피로감이 몰려오는데 다리가 저리고 허리가 아파서 주저앉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이번에도 쓰러진 감독관 나왔다지 아마) 1감독관 샘께 잠깐 자리 교체하고 앉아계시라고 두 번이나 권했는데 자긴 잘 서 있는다고 사양하셨다. 젊은 분이라 그런가...샘~ 샘도 5년 후면 나처럼 될거에요..
한국사 시험 끝나고 한국사 답안지와 시험지를 걷고, 1선택 끝나고 1선택 시험지 걷고, 2선택 끝나고 2선택 시험지와 답안지 걷고, 개인봉투에 넣어놨던 나머지 문제들도 다 걷을 때 쯤이면 내가 감독관인지 신문뭉치를 들고 있는 배달부인지 정신이 없다.(게다가 1선택 시험지를 번호대로 안 걷어버려서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번호대로 다시 정리하는 꼴이라니..부끄럽기 그지없다)
마지막 시험지 걷을 때는 학생들도 이제 다 끝났다는 생각때문인지 개인봉투들을 들어서 걷기 편하게 막 준다. 얘들아 니들이 지금 협조해주는 건 고마운데 지금 도와준다고해서 바로 집에 갈 수 있는 건 아니란다...
12. 끝날 때 까지 끝난 게 아니다.
답안지와 문제지 수량확인과 이상여부를 확인 할 때까지 수험생들은 하교할 수 없다. 본부에 감독관들이 가져온 4교시 시험지와 답안지가 이상없는지 확인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게다가 4교시는 3과목을 보니 확인시간이 더 걸리는 건 당연지사. 이 때 학생들은 똥 마려운 강아지마냥 나가고 싶어 안달이다. 다행히 휴대폰을 나눠주면 조금 낫다. 휴대폰을 켜고 개인 짐을 정리하면서 본부에서 방송이 나오기만을 기다린다.
얘들아 수능보느라 정말 고생 많았다.(나는 감독하느라 더 고생 많았다ㅠㅠ) 오늘 수능을 위해 그동안 얼마나 노력했을지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그 결과가 너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지도 잘 알고 있지만, 긴~~긴 인생을 봤을 때 오늘의 시험은 앞으로 올라가야 할 수많은 계단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 그래서 다 끝났다고 끝난 게 아니고 이제 시작이라는 것. 그리고 여러분들의 앞길을 파이팅 넘치게 응원하는 사람이 여기 있다는 것.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지만 말할 기회가 없었다는 것ㅎㅎ.
대기실에서 '퇴근하셔도 좋습니다'란 말이 끝남과 동시에 쏜살같이 주차창으로 튀어나온다. 빨리 나가야 그나마 덜 붐비기 때문. 학교 주변은 학생들을 데릴러 온 학부모들의 차들로 한가득이라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여지없이 올해도 교문 앞에선 교통경찰관님께서 교통정리를 해주신다. 학교 주변에 빽빽하게 들어찬 학부모들의 차를 보니 마음 한 켠이 짠해지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수험생만큼이나 아니 어찌보면 수험생보다 더 힘든 1년을 보내셨을 전국의 수험생을 둔 학부모님들~ 예민보스 고3수험생들 눈치보시고 응원해주시고 지원해주시느라 정말 정말 저엉~~~말 고생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