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숙 씨는 대외적으론 품위 있고 고상한 마나님인데 사실은 욕쟁이다. 욕을 재밌고 찰지게 잘한다. 그녀는 때로는 고집불통에 막무가내인 노인이지만 삶을 대하는 자세는 늘 용감하고 고난을 넘기는 마음가짐은 지혜롭다. 그런 그녀가 요즘 전화만 하면 우울증 때문에 잠을 못 잤다고 한다.
칠십 대인그녀는 십 년 전쯤 남편과 사별했다. 나에겐 사별 선배인 셈이다. 용숙 씨는 때때로,"우리 예쁜○○이..너를 생각하면 내가 막 가슴이 아파"하며 눈시울을 붉히곤 한다. 용숙 씨는 엄마처럼 나를 예뻐한다. 나는 가끔 용숙 씨에게 엄마에게도 말 못 하는 이야기들을 털어놓는다. 잠깐이지만 같이 살 적엔 새벽 세시까지 수다를 떨다 잔 적도 있다. 나는 용숙 씨가 좋다. 그녀가 좀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용숙 씨의 아버지인 동주는 해방 이전 시대에 해외 유학파로 고학력자였으며 능력을 인정받는 기술자였다. 그의 부인인 전주댁은 있는 집 딸로, 당시에는 흔하게도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하였다. 소녀다운 감성에 얼굴도 예쁘장했던 전주댁은 격변하는 시대의 신여성보다는 조강지처를 꿈꾸는 순박하고 귀여운 여인이었다. 피차 집안끼리 인연이 닿아 성사된 결혼이었어도처음엔 서로 좋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동주는 예쁘장하고 몸단장만 할 줄 아는 화초 같은 전주댁에게 질려버렸다. 그는 마냥 순한 여인보다는 도도하고 지적 수준이 맞는 신여성이 좋았다.
동주는 대놓고 좋아하는 여인과 만나기를 서슴지 않았고, 질투심은 강했지만 소녀 같은 전주댁은 변변히 화도 내지 못했다.어느 날은 동주가 며칠이나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전주댁은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분한 여심을 표현하려 굳은 마음을 먹었다. 동주가 대문을 들어서는 기척이 들리자 전주댁은 재빠르게 이불 속에 들어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남편이 들어오는 기척을 느끼고도 모른 척이라니 딴에는 대단한 반항이었다. 동주는 방안에 커다랗게 자리 잡은 이불고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냅다 궁둥이 쪽을 걷어차버렸다. 전주댁은 굼지럭거리면서도 결국 몸을 일으켜 남편의 옷을 받아 들었다.남편의 겉옷에서 딴 여자의 분냄새가 났지만 티도 내지 못하고 속으로 울화를 삼켰다. 그게 여인의 덕목이라 했다.
그런데도 둘 사이에는 자식이 다섯은 되었다. 중간 어딘가쯤에 자식이 하나인가 더 있었으나 어린 나이에 죽었다. 형제들 중 누군가는 그 아이의 이름을 기억했을까, 아니면 너무 어린 때여서 누구 하나 있었다 없어진 줄도 잊고 커버렸을까. 아마 맏이인 용숙 씨는 그 아이의 짧은 생을 다른 형제들보다 오래 기억해 주었는지도 모른다.
언제부턴가 동주가 딴살림을 차렸다. 꽤 한참 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용숙 씨는 이번에야말로 아버지가 저들을 버리고 떠났는가 보다 하였다. 그러다 학교 갔다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와 그 여자가 나란히 서서 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버지는 용숙 씨를 꽤 예뻐하였다. 첫 자식이어서 그랬기도 하겠으나 예쁘장한 계집아이가 눈치가 재빠르고 영악한 것이 마음에 쏙 들었다.
용숙 씨는 아버지의 여자를 말끄러미 쳐다봤다. 오히려 그 여자가 무안쩍어 시선을 틀었다. 별로 예쁜 건 아니었는데 옷매무새가 세련되었다. 용숙 씨는 그 여자가 그렇게 싫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전주댁이 손수 만들어 입는 빛깔 고운 한복보다도 그 여자가 입은 양옷 투피스가 고급스러워 보였다. 그 여자가 좋을 리는 없었겠으나 한편으론 어리숙하게 당하기만 하는 어머니가 답답하기도 하였을 것이다. 아버지는 주머니가 불룩할 정도로 돈을 벌어놓고도 저축하는 일 없이 써댔다. 내키는 대로 썼다. 그 여자에게도 쓰고 딴 여자에게도 썼는지 모른다. 전주댁에게 갖다 주는 돈도 없었거니와 돈을 갖다 준다고 해서 전주댁이 알뜰살뜰히 살림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있는 집 큰딸로 화초처럼 고이 자라며 예쁨만 받아온 전주댁은 재봉질로 옷을 짓거나 화초를 가꾸는 능력은 뛰어났으나재산을 쌓는 것에소질이 없었다.
딴살림을 차렸던 동주가 다시 돌아왔다. 그 여자가 아이를 낳지 못하는 몸이었다고 했다. 동주가 돌아왔음에도 살림은 피지 않았다.
아버지는 능력 있는 사람이었는데 집은 늘 가난했다. 원망은 어느새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를 향했다. 어머니가 좀만 더 억척스러웠으면, 그래서 살림이라도 일궜으면 삶이 좀 나았을 것 같았다. 그랬다면 배 주린 동생들을 건사한다고 교복 치마 아래로 생선을 훔쳐올 일도 없었을 텐데. 가난이 지긋지긋했다. 가난을 증오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잘 살겠다고 다짐했다. 예쁜 양옷을 입고 도도하게 살리라고 수백 번 수천번을 되뇌었다. 강한 열망이 현실로 걸어 나왔다.
예쁘장한 외모의 용숙 씨는 한동안 여배우를 꿈꿨다. 그런데 잘 안 됐다. 아마 어떤, 차마 견딜 수 없는 희생이 필요했을 것이다. 용숙 씨로서는 가난보다 참기 어려운 무언가였다. 용숙 씨는 영화판에서 도망쳐 부잣집 남자에게 시집갔다. 이제 갓 스무 살이 넘을까 말까 한용숙 씨는 꽃봉오리처럼 예뻤고 그 남자는 비록 아버지뻘의 나이이긴 했으나 잘생기고 중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