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은퇴를 한 지 일 년이 다 되어 간다. 다시 계약직으로 근무하고는 있지만 아무래도 처음 직장인의 그 마음과는 거리가 있다. 뭐랄까.. 한 걸음 떨어져서 보게 된다. 지난 일 년을 돌아보면서 드는 생각은 사람의 미래는 누군가의 큰 그림 속에 이미 정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운명론과 미래의 일은 미리 염려하고 걱정할 것이 아니라는 현실 중심적인 사고가 교차한다. 어서 벗어나고 싶다 여겼던 이 직장에 다시 입사할 거라 생각을 못 했고 작년 이맘때 많은 시간을 들여 내년 일 년을 계획했던 일들이 얼마나 부질없었나 싶은 게 헛웃음도 난다.
저녁에 옛 후배들과 삼겹살에 소주잔을 기울였다. 집이 멀어 거의 두 시간이 걸리는 퇴근 시간임에도 기꺼이 함께해 준 그 마음이 고마웠다. 본격적인 인사철이라 승진과 이동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그들의 일이었다. 세상일이란 게 그렇다. 닥쳤을 땐 그보다 큰일이 없는 것 같지만 지나고 보면 별일 아닌 게 되고 만다. 재직 당시 내가 겪었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안타까워했던 이들이라 그때의 이야기들이 소재도 되었지만 그저 담담하게 남의 이야기처럼 들을 수 있어 좋았다. 다시 생각해 보면 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이 더 소중하고 감사한 것이다. 붓다가 이야기하는 좋을 것도 없고 나쁠 것도 없다는 ‘공(空)’ 사상이 이런 건가 싶다.
올해 수능 자녀를 둔 후배가 둘 있었다. 둘의 공통점은 아이들이 이전 학교와 학과에 만족 못 해 휴학 또는 자퇴를 하고 다시 시험을 본 경우였다. 하지만 사정은 달랐는데 한쪽은 공부를 너무 잘해서 의대를 목표로 했고 다른 쪽은 인(in) 서울 대학을 목표로 한 경우였다. 수시 합격자 발표를 앞두고 기대는 않는다면서도 결과를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도 역시 덤덤할 뿐이다. 이미 다 겪었던 일이어서다. 요즘은 매일 출근하는 딸아이의 배웅이 즐거움이다.
지금 나에게 다가온 문제가 있다면 그건 내가 그 문제를 감당할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큰 시련 같아도 하늘은 나에게 감당할 만큼의 시련을 주신다고 믿기로 하자. 어차피 내가 극복해야 할 일이라면 그런 믿음이라도 가지는 게 마음이 편할 것이다. 나를 둘러싼 상황은 늘 유동적이고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은 열리는 법이다.
내 어머니는 어려웠던 과거 이야기 하기를 꺼려 하신다. 돌이켜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고비마다 잘 헤쳐나오셨구나 싶다. 두 분은 그저 지금이 감사하고 고맙다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덩달아 나도 그런 긍정적 영향을 받는 것 같다. 인생 후반부를 살면서 느끼는 것은 지금 닥친 일이 당장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큰일 같아도 결국은 지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말도 나왔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