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의 계엄선언과 해제 상황을 본 느낌
늦은 밤, 딸아이가 갑자기 "미친 거 아냐? 윤석열이 계엄령을 내렸데" 라기에 깜짝 놀랐다. 사실이었다. 순간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늘 위태하다 여기며 보던 그였기에 결국 이리 되나 싶었다. 과거 기시감으로 보면 국회를 봉쇄하고 시내 곳곳에 장갑차와 탱크, 무장한 군인들이 서있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중학교 시절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당한 10.26 사태가 그랬고, 5.18 광주 사태, 부마항쟁 등 이런저런 한국의 현대사가 머리를 스쳐갔다. 그런데 뭔가 좀 어설프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통령의 담화문에 오랜만에 듣는 '종북 좌파'라는 말이 나왔다. 저 담화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까 싶었다. 구구절절 자신이 일을 하려는데 사사건건 발목 잡는 야당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게다가 포고령에 전공의들은 복귀하라는 내용도 있었다. 그러다 이재명 대표가 이동하며 찍은 유튜브 영상에 "국민 여러분, 국회로 와주십시오"라는 메시지가 나오고, 국민의 힘 한동훈 대표의 "이건 잘못된 비상계엄이고 위법"이라는 메시지가 떴다. 그러다 국회의원들이 담을 넘는다 하더니 새벽녘에 190명 국회의원들의 "비상계엄 해제의결"이라는 메시지가 떴다. 그러고는 새벽녘에 윤석열이 나와 국회의 요구를 받아들여 비상계엄을 해제한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정말이지 가까이 있으면 주먹을 한 대 갈겨주고 싶은 얼굴이었다. 별 미친 개새끼에게 감당 못할 권력을 주어 나라꼴을 이토록 우습게 만드나 싶어 화가 치밀어 올랐다. 새벽녘에 계엄 해제 소식을 듣고 잠이 들어 하루의 일상을 시작하며 오늘은 좀 차분하게 지난밤 계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이번 계엄은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을까? 사안이 지난 다음 복기하는 것도 나름 의미 있는 일이다.
1. 군과 경찰 수뇌부를 확실하게 장악하지 못했다.
군과 경찰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명령을 따르는 조직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대통령에게 충성을 하는 인물들로 채워져야 한다. 박정희, 전두환 때처럼 오야봉이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할 정도는 되어야 그 조직으로 불법적인 무력 사용이 가능하다. 왜 그런가 하면, 실패하면 다 함께 사지로 내몰리는 결단이기 때문이다.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윤석열은 그런 카리스마가 없다. 절차에 맞지 않는 비상계엄이라고는 하나 성공하면 억지로 우길 수도 있었는데 그럴 무력을 행사할 수족들이 없는 것이다.
2. 완벽한 언론통제를 못했다.
예전 같으면 방송 3사와 신문사를 제압하면 어느 정도 메시지를 통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시대는 방송 3사의 위력이 예전만 못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튜브와 선호하는 SNS 채널에 접속하는 시대이다. 계엄 소식에 야당 대표가 이동하며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국민들을 국회로 모이라고 하는 시대에 완벽한 언론통제는 어렵다고 봐야 한다. 게다가 김어준의 뉴스공장이라는 유튜브 방송국에 계엄군을 보냈다는 자체가 우스운 이야기다. 유튜브 뉴스는 장소 불문 만들 수 있는 영상이다. 이걸 어떻게 막을 것인가?
3. 여야 대표의 계엄 위법 선언이 빛났다.
특히 한동훈 대표의 위법 선언이 빛났다. 여당 대표가 자기 당의 대통령이 발표한 비상계엄이 위법이라고 선을 긋고, 그것을 막으러 국회 의결의 장에 들어갔다. 이재명, 한동훈 대표가 손을 마주 잡는 광경은 그나마 국민들에게 큰 안심을 주는 장면이었다. 당시 추경호 원내 대표를 중심으로 당사에 있던 국회의원들은 대체 뭐 하는 사람들이었을까? 이들은 정말 나랏돈 아까운 인물들이다.
4. 국회의원들을 격리시키지 못했다.
이게 참 이상하다. 법을 전공한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언해도 국회의원 과반수가 의결하면 비상계엄을 해제해야 한다는 걸 몰랐을까? 그렇다면 개별 의원들을 국회에 들어가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계엄군으로 하여금 한 명씩 체포해 버스에 태워 격리시키고 초기 계엄 상황을 일정 기간 유지하며 시간을 벌어야 했다. 게다가 날짜도 잘못 잡았다. 다음날 국회 본회의가 있는 날이라 지방 국회의원들도 서울에 와 있는 상황이라 의결 정족수를 채우기가 더더욱 용이했다. 계엄을 한다면서 국회 의사일정도 제대로 파악 안한 걸 보면 얼마나 엉성한 준비였는지 알 것 같다. 다행히 여야 의원 합쳐 190명 찬성으로 비상계엄 해제가 가결되었고 이로써 정당한 헌법 절차를 거쳐 군이 물러나는 전환점이 되었다.
5. 시민, 국회 보좌진 등의 힘이 컸다.
계엄 선포 소식에 국회로 달려간 시민들은 국회를 둘러싼 군인, 경찰 병력을 온몸으로 막고는 도착한 국회의원들을 속속 의사당 안으로 집어넣었고, 헬기로 강하한 공수부대의 의회장 진입을 막기 위해 국회 보좌진들이 필사적으로 막아선 덕에 그나마 의회 가결이 가능했다. 군인과 경찰의 무력으로 점령당한 국회라면 제대로 비상계엄 해제 의결이 가능이나 했을까 싶다. 이 또한 천만다행이다.
오전에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다녀왔다. 지난밤에 있었던 긴장감은 온데간데 없고 의사당 계단에는 민주 당원들의 윤석열 퇴진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여의도 근처 직장을 둔 사람들과 지하철로 넘어온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식전 행사로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제창을 하는데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난다. 민주주의는 정말 유리알 같은 제도라는 걸 다시금 실감하는 시간이었다. 어떻게 이 나라는 제대로 된 머슴 하나 뽑기가 이리도 힘들까 싶어 한숨이 절로 난다. 그나마 어젯밤 일은 정말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