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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천

하늘의 이치를 즐기는 방식

by 장용범

한 마디로 완벽하다는 건 세상 돌아가는 이치와 맞지 않다는 것이다. ‘오십에 읽는 주역’이란 책을 친구가 권해서 읽다 보니 '성실하게 궁리하되 집착하지는 마라'는 ‘낙천’ 이란 구절에 눈이 머문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다.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돕는다고 한다. 그런 면이 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경이 기록한 하늘의 계시는 반대일 수도 있다고 가르친다. 간절히 바라면 바랄수록 온 우주가 방해한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만 그게 세상 돌아가는 이치라고 한다. 다산 정약용의 시 ‘혼자 웃다(獨笑)' 도 이와 비슷한 내용을 담았다.


獨笑

양식 있는 집은 먹을 식구가 없고 (有粟無人食)

자식이 많은 집은 굶주림이 걱정이네 (多男必患飢)

높은 벼슬아치는 영락없이 바보이고 (達官必憃愚)

재능 있는 사람은 발휘할 자리가 없네 (才者無所施)

모든 복을 두루 갖춘 집은 드물고 (家室少完福)

지극한 도리는 언제나 능멸당하는구나(至道常陵遲)

아비가 아끼면 자식 놈이 매번 탕진하고(翁嗇子每蕩)

아내가 슬기로우면 남편이 어리석네(婦慧郎必癡)

달이 차면 번번이 구름에 가리우고(月滿頻値雲)

꽃이 피면 바람이 불어 망쳐 버리네(花開風誤之)

세상 만물이 끝내는 이와 같으니(物物盡如此)

혼자 웃음에 까닭을 아는 이 없네(獨笑無人知)


이러고 보니 주역의 저 문구가 좀 더 잘 이해되긴 하다. 예전에 인지심리학자 김정운 교수가 대중강연으로 한창 이름을 날릴 때 지금은 작고 하신 이어령 교수가 주의를 주더란다. "김 교수 그만 내려와. 좋은 것은 다 가지는 게 아니야." 어쩌면 이어령 교수도 주역의 저 원리를 알고 계셨나 보다. 오죽하면 여자들 사이에 집안도 좋고 얼굴도 예쁜데 머리까지 좋은 여자를 재수 없다고 했을까. 멀리 볼 것도 없이 한국 최고의 재벌이라고 하는 삼성가의 경우에도 그들의 가정사 만큼은 별로 부럽지가 않다. 형제들 사이 안 좋은 건 물론이고, 고 이건희 회장의 자녀들은 대부분 이혼을 했거나 심지어 자살한 경우도 있다. 이것도 주역에서 말하는 세상의 이치는 완벽함을 싫어한다의 한 예가 될 듯하다.


그러고 보면 우리 조상들은 이 이치를 생활 속에 실천하고 계셨던 것 같다. 감나무 감을 따더라도 마지막 몇 개는 꼭 남겨두는데 그걸 '까치밥'이라고 한다. 그러니 무언가를 추구하더라도 100%, 퍼펙트, 완벽 이란 말을 경계하도록 하자. 세상 일이 그런 게 아니라고 하니.


세상을 지혜롭게 사는 방법 중 하나는 무언가를 성실하게 행하되 집착하거나 간절하지는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이 낙천적인 삶이다. 지금 오십대를 넘겼다면 세상을 좀 낙천적으로 살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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