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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백수의 10계명

by 장용범

아침마다 두 딸의 출근을 배웅하는 것도 이제 익숙해져 간다. 나 역시 집에 머무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들고 공유 오피스로 향한다. 어제는 퇴직 후 처리해야 할 몇 가지 절차를 이행했다. 건강보험공단에 들러 직장 가입자에서 지역 가입자로 바뀐 데 대한 보험료를 확인해 자동이체 신청을 마쳤고 국민연금 관리공단에 들러 남은 보험료 납입 기간을 확인했다. 만 60세까지 납입하면 되기에 앞으로 1년 6개월 정도 남았다. 퇴직은 했지만 계속 납입 의사를 밝혔다. 기금 고갈이니 뭐니 해도 나는 공적연금에 대한 믿음이 있다. 한 국가가 국민들에게 지급할 공적연금도 지급 못할 수준이면 다른 것은 더 심각한 상황일 것이다. 끝으로 고용보험센터에 실업급여를 신청하러 갔다. 온라인 교육은 이수했고 전 직장의 이직 처리를 확인한 터라 문제가 없을 줄 알았는데 몇 가지 보완을 요청받았다. 그렇게 낮 시간을 보내고 칵테일 학원에 들렀다. 이날은 몇몇 학원생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기로 한 날이다. 방학 때 상경해 수업을 듣고는 3월 개강을 앞두고 제주로 내려가는 00씨의 송별회를 겸한 자리였다. 짧은 인연이었지만 이별은 늘 아쉬움을 남긴다. 20대인 그들과 50대인 나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지금 백수 상태라는 것이다. 그들의 자리에 나를 끼워준 것이 고마웠다. 청년 백수들과 은퇴 백수의 만남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이 좀 멀게 느껴진다. 자신의 가치를 노동과 생산성으로 입증할 기회를 가지지 못한 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까. 나에게 해당되는 은퇴 백수 10계명을 정해 보았다.


1. 아침에 늦잠을 자도 죄책감을 느끼지 말라.

이제는 알람 없이 자연스럽게 눈 뜨는 것이 특권이다.


2. 남의 시선보다 자신의 만족을 우선하라.

"요즘 뭐 하세요?"라는 질문에 굳이 바빠 보이려 애쓰지 말자.


3. 하고 싶은 일은 하고, 하기 싫은 일은 하지 말라.

평생 열심히 일했으니, 이제는 선택의 자유를 누릴 때다.


4. 몸은 움직여도 마음은 조급해하지 말라.

건강을 위해 적당한 운동은 필요하지만, 성과를 따질 필요는 없다.


5. 돈보다 시간을 소중히 여겨라.

이제 가장 큰 자산은 돈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여유로운 시간이다.


6. 새로운 취미를 찾거나, 그냥 빈둥거려도 괜찮다.

생산적인 취미가 아니어도 충분히 의미 있다.


7. 억지로 바쁘게 살지 말고, 흐르는 대로 살아라.

은퇴 후에도 ‘뭔가 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자.


8. 소소한 행복을 즐길 줄 알아라.

따뜻한 차 한 잔, 창밖 풍경, 조용한 산책… 이런 것이 진짜 행복이다.


9. 젊은 세대에게 훈수 두지 말라.

이제는 조언보다 경청할 때, 잔소리는 줄이고 경험을 나누자.


10. 스스로를 가치 있는 존재로 인정하라.

은퇴했다고 해서 가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제는 그저 편안하게, 원하는 대로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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