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타고 가다가 꼭 자신이 벨을 눌러야만 하는 아이들을 종종 보곤 한다. 다른 사람이 먼저 눌렀다하면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들이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도 버튼을 자신이 꼭 눌러야하는 아이들도 있다. 사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런 단계를 거쳐 성장하지 않을까 싶다.
SNS에서 떠돌아다니는 공감가는 사진
우리 동생을 비롯한 장애가 있는 많은 아이들 중에서는 특정 행동이나 물건에 꽂혀, 무조건 자신이 하고자 하는 특성을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는 그것을 '내가내가병'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보기엔 시답잖은 행위인데 아이들은 "내가! 내가!"라고 말하거나, "내가 할 거예요!"라고 말하며 그 행동에 숭고한 사명감을 가지고 반드시 하고야 만다.
정말 지금 생각해도 아찔했던 사건이 있었다. 새내기 교사였을 무렵, 나는 교감,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많은 선배교사들에게 나의 수업을 공개하는 공개수업의 날을 맞이했다. 준비한대로 척척 진행되어도 덜덜 떨기 마련인데, 그 날 하필... 한 아이의 '내가내가병'이 발현되고야 말았다. 수업자료를 PPT로 만들어 TV에 띄우고 한 슬라이드씩 넘기며 수업을 하고 있는 도중, 한 아이가 "내가! 내가!"를 외치며 달려나왔다. 그 아이는 선생님이 포인터로 슬라이드를 넘기는 그 행동에 꽂힌 것이다. 그렇게 뛰쳐나온 아이는 수업 초반부터 그 포인터로 타다다닥, 모든 슬라이드를 순식간에 다 넘겨버렸다. 망했다. 그야말로 망했다고 생각했다. 지금이야 아이들의 돌발 행동까지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게 공개수업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신규 교사의 입장에선 내가 준비한 것들을 제대로 보여드리지 못했다는 속상함이 더 컸던 것 같다.
우리 동생에게도 '내가내가병'이 있다. 엄마나 내가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꼭 옆에서 지키고 서 있다가, 다 세척된 그릇을 건조대에 올리는 행동을 본인이 하려고 한다. 만약 그 행동을 무시하고 내가 그냥 그릇을 놓았다가는 그릇을 꺼내어 본인이 다시 올려놓는다.(이눔의 자식, 이럴 거면 니가 설거지 좀 해라.)
또 불을 끄는 행동도 자신이 하려고 한다. 불을 켜는 것은 그 누가 해도 상관 안 하지만, 불을 끄는 역할은 반드시 자신이 해야 한다. 문을 닫는 행동도 마찬가지이다. 베란다문, 현관문, 방문, 화장실문, 현관 입구에 있는 중문,심지어 냉장고 문까지 가리지 않고 식구들을 따라다니며 문지기를 자청한다.
대체로 내가 여유가 있을 때는 '내가내가병'을 진득하게 참아줄 수 있다. '그래, 네가 하렴.' 하면서 기다려준다. 그런데 내가 여유가 없이 바쁘거나, 예민해져 있을 땐 그 모든 게 짜증스럽기만 하다. 바빠 죽겠는데 빨리 안 나오고 문을 열고 다시 닫고 있다거나, 무거운 짐을 들고 들어오는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현관문을 닫기 위해 나를 밀치고 갈 때는 속이 터지는 것이다. 학교에 있는 아이들에겐 티를 내지 못하지만, 동생에겐 그 짜증스러움을 분출하기도 한다. '이럴 거면 니가 다 해.', '빨리 나가야 하니까 그만하고 나와!','두 번 일 만들지 말라고!'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올 때도 있다.
'내가내가병'은 왜 나타나는가? 모든 행동이 아니라 왜 소모적인 특정 행동에서만 나타나는가?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일단은 본인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에서 '내가!'가 나오는 것 같다. 불 끄기, 문 닫기, 버튼 누르기 등 큰 노력이 없어도 손쉽게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결과는 뚜렷하게 나타난다. 투입 대비 산출이 너무나 명백하여 자신의 행위가 더 두드러져 보이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내가내가병'은 아무래도 '자기주도성'에 해당하는 것 같다. 에릭슨의 인간발달단계에 따르면 3세 ~ 5세경에 주도성이 발달한다고 하는데 바로 그 단계인 것이다. 생각해보니 버스에서 자신이 벨을 누르려고 하거나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리려고 한 아이들이 그 정도의 나이대였던 것 같다. 장애가 있는 우리 아이들은 다소 느린 단계를 따르니 몸은 다 큰 성인이지만, 이제 그 단계를 거치고 있는가 보다. 그 단계를 넘어 다음 단계로 나아갈지 혹은 여전히 그 단계에 머무를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발달 단계를 따르고 있다니 이해하지 못할 짜증스러움은 좀 가시는 것 같다.
요즘은 '내가내가병'을 역으로 활용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누나가 그러하듯... 잠이 들기 전, 나는 침대에 누워 큰소리로 동생 이름을 부른다. 곧 동생이 내 방에 들어오면 "불 좀 꺼줘!"라는 부탁을 한다. 어차피 불 끄는데 투철한 책임감을 가진 동생이라 좀 덜 미안한 기분이랄까?
동생의 이름을 불러도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다음은 필살기다. "안 오면 불 내가 끈다?!", "누나가 문 닫는다?!" 사실 내가 불을 끄기 위해 몸을 일으킬 생각은 추호도 없다. 말은 그렇게 해도 나는 침대에 누워있다. 그 필살기에 동생은 달려오다시피 내 방에 온다. 참이상한 협박이자 요상하게 들리는 압박이다.
본인이 진짜로 해야 하는 일에 "내가내가" 좀 했으면 좋겠지만, 그건 엄밀히 말해 '내가내가병'이 아니다. 나부터도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은 하기 싫기 마련인데, 그런 기대는 과한 욕심이다. 그러니 욕심일랑 접어두고, 앞으로도 내 방문과 전등 스위치 관리를 철저히 당부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