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다 보면 졸업생들이 찾아오는 경우를 종종 보곤 한다. 스승의 날이나 시험 기간처럼 특별한 행사가 있는 경우엔 하교를 일찍 하다 보니, 그 김에 졸업한 학교도 와보고 이전 담임선생님도 찾아뵙고 하는 것이다. 앳된 티를 벗고 훌쩍 큰 모습으로 담임선생님들을 찾아뵙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나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데 그저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누군가가 그랬다. 특수교사는 찾아오는 제자도 없다고. 서글픈 말이긴 해도 현실은... 사실 그렇다. 하루 종일 학교에서 붙어 지내며 밥도 떠 먹이고, 화장실 뒤처리도 해주고, 코도 닦이고, 양치도 시키고... 어쩌면 엄마보다 더 오랜 시간 함께 하며 정이 들었지만, 아이들이 졸업만 하고 나면 다시 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따금씩 어떻게 지내는지 생각나기도 하고, 보고 싶기도 하지만, 나도 먼저 보호자에게 연락을 하긴 좀 어려워서 추억 속에 묻어두고 살 때가 많다.
그런데 아이들은 찾아오지 않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찾아오지 못하는 것이 더 맞는 말이다. 혼자서는 외출을 할 수도 없고, 길을 찾는 요령을 알지 못할 수도 있고, 누군가가 보고 싶거나 만나고 싶어도 자신의 의사를 잘 표현하지 못할 수도 있다. 혹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잘하지 못하는 친구에겐, 현재 생활에 겨우 적응을 했는데 다시 이전에 다녔던 학교에 방문한다는 것 자체가 그 아이의 삶을 뒤흔드는 것일 수도 있기에... 오고 싶어도 오지 못하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특수교사들도 제자들이 찾아올 것이란 기대조차 잘하지 않는다. 그저 소식을 듣지 못해도, 얼굴을 보지 못해도 무탈하게 잘 지내고 있기를 속으로만 바랄 뿐이다.
그런 가운데 이번에 졸업을 시킨 아이들이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나를 찾아왔다. 기대가 없어서였을까. 불쑥 찾아온 제자들의 모습에 내가 제일 상기되었다. 옆에서 이 광경을 보고 계시던 부장님은 내 표정이 마치 자식들 다 키워 결혼시키고 사위, 며느리 본 얼굴이었다고 한다. 그 정도로 뿌듯함과 흐뭇함이 벅차올랐던 것 같다. 아이들은 전날부터 단톡을 줄기차게 울려대며 몇 시에 올 것인지, 어디에서 만날 것인지를 서로 이야기했다. 그 탓에 나도 아이들이 방문할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보자 그 설렘과 뭉클함은 스며 올라오기 시작했다.
제자들이 찾아오는 모습을 옆에서만 목도했을 때는 감히 그 기분이 어떨지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내가 그 당사자가 되고 나니 아이들에 대한 만감이 교차한다. 아이들에게 아주 나쁜 선생님은 아니었나 보다 싶기도 하고, 내새끼도 아닌데 막 내가 낳은 자식 같기도 하고, 늘 제자리였던 것 같았는데 언제 이렇게 컸나 싶어 코끝이 찡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추억할 수 있는 아이들로 자란 것에 참으로 감사했다.
그리곤 안부를 물을 수도 없고, 만남을 기약할 수도 없는, 나를 스쳐갔던 아이들을 생각한다. 복지관은 잘 다니고 있을까? 요즘은 가출을 안 하려나? 더 이상 수술은 안 했을까? 이제는 제법 잘 걸으려나? 아이마다 수많은 질문들이 스치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대신하여 작은 바람을 떠올려본다. 내가 그랬듯이 그 아이들의 추억 한 구석에도 나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소박하게 있기를. 아이들에게도 가끔씩 그 추억들이 떠오르기를. 그리고 그 추억 덕분에 웃을 수 있기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