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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 aint heavy Sep 22. 2022

임신 중 선별검사, 그리고 고위험군

 그간 글쓰기를 잠시 쉬는 동안 나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다. 2022년 초에는 누구보다 멋지고 다정한 남자와 결혼을 하였고, 나뭇잎들이 초록초록하게 변할 무렵엔 새로운 생명을 품게 되는 경험을 하였다. 늘 전투적으로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왔던 삶의 모습들을 내려놓고, 누군가의 따뜻함 속에서 살랑이는 꽃잎처럼 안정적인 생활을 요 근래 나는 누리고 있었다.


 어느덧, 임신 안정기라 할 수 있는 주수가 되었고 다른 임산부들과 마찬가지로 1차, 2차 기형아 검사를 하게 되었다. 사실 검사 이름이 주는 압박감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당연히 나의 일은 아닐 거라 생각했기에 큰 두려움이나 걱정 따윈 없었다. 1차 기형아 검사에서 목둘레 무사통과, 피검사 무사통과였기에 더욱 그랬을 지도.


 2차 기형아 검사도 간단한 피검사로 끝났다. 그러나 나의 평온함은 며칠 뒤 산부인과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 박살 나고야 말았다.


산모님, 2차 기형아 검사에서 다운증후군 고위험군으로 나왔어요.
가능한 한 빨리 병원에 한 번 오셔야겠어요.





 전화를 받고 한동안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내가? 내가 고위험군이라고? 나이가 많아서 그런가? 내가 알고 있는 그 다운증후군? 21번 염색체 이상?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그리고 퇴근 후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누가 보아도 나의 막대기 수치는 높아 보였다. 말로만 듣던, 그 고위험군 산모가 바로 나였던 것이다.


 니프티 검사(정밀 검사)를 예약해두고 집으로 돌아와 하루 종일 인터넷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다운증후군, 고위험군, 고위험 산모, 노산, 2차 기형아 검사, 니프티 검사, 양수 검사.... 키워드를 바꿔가며 계속해서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나보다 고위험 확률이 더 높았던 산모들도 니프티 검사에서는 저위험군 판정을 받았다는 후기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글들로 나는 강제적으로 위로를 받으려고 했다. 그러나 불현듯 잘못된 경우엔 사람들이 후기를 남기지 않을 테니, 어쩌면 이 글들은 정확한 데이터가 아닐 거란 생각에 또다시 절망했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장애인의 가족으로, 비장애형제로 힘들게 살아온 걸 알면서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 있냐고 하늘을 원망했다. 10년째 장애 아이들을 가르치는 직업으로 살아가고 있어서 내가 더 잘 감당할 수 있을 거라 이렇게 하시는 거냐고 더더욱 하늘에 대고 따져 물었다. 차마 엄마에겐 기형아 검사 결과를 말하지도 못했다. 그리곤 그동안 나를 거쳐간 많은 다운증후군 아이들이 떠올렸다. 참 이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이었지만... 내가 과연 그 아이들의 부모가 될 수 있을까란 생각이 스친다. 혹여나 다운증후군 확진을 받게 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걱정에 나는 스스로에게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글을 쓰며, 강의를 다니며, 여러 인터뷰를 하며... 나는 장애 아이들을 비장애인들과 다르다고 생각하지 말아 달라,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이며 누군가에겐 아주 귀한 가족이라고 말해왔었다. 그런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니, 스스로가 가증스럽고 위선적으로 보였다. 어쩔 수 없이 마주하게 된 내 형제의 장애, 그리고 직업으로 만나게 되는 장애를 가지게 된 아이들에겐 그렇게 말할 수 있어도, 정작 내가 감당해야 하고 평생을 떠안아야 하는 자식의 문제 앞에선 내가 말해온 가치관들이 모순덩어리로 전락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동안 그럴듯하게 잘 포장해온 나의 모습이, 결국 직접적인 나의 일 앞에선 추악한 밑바닥을 드러내고야 말았다.


 산부인과 담당 의사 선생님은 니프티 검사나 양수 검사를 꼭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종종 이렇게 고위험군으로 나와도 정밀 검사를 하지 않는 부모들도 많다고 하면서 말이다. 자신들에게 찾아온 자식의 모습이 어떠하든 간에 감사하게 받겠다는 신념을 가진 부모들이 종종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혹여나 다운증후군 확진으로 나오더라도, 중절 수술은 불법이란 것도 덧붙여서 말이다. 그렇지만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누구보다 장애인 가족의 삶을 잘 알고 있다는 그럴듯한 핑계였을지도 모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추가로 받은 니프티 검사(정밀 검사)에서 저위험군으로 나왔다. 안도의 한숨을 돌리며 다시금 내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나는 과연 계속해서 이러한 글들을 쓸 자격이 있을까? 우리 동생에게 과연 떳떳한 누나가 될 수 있을까? 우리 아이들에게도 진정한 사랑을 줄 수 있는 특수교사가 맞을까? 장애의 유무를 떠나 무조건적인 사랑을 줄 수 있는 부모가 될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이제 겨우 하나의 카테고리에서 저위험군 통보를 받았을 뿐이다. 인생을 살아가며, 또 아이를 키우며 얼마나 많은 위기와 걱정을 마주하게 될까? 출산 전 선별검사를 통해 알 수 있게 되는 장애는 고작 몇 가지 되지도 않는데, 이 한 가지에 온갖 애를 태워가며 나의 가식적인 모습을 발견했으니... 앞으로 얼마나 많은 가증스러움을 스스로 마주하게 될까? 내가 주장해온, 그리고 그렇게 살아온 나의 가치관과 장애인식관은 또 어떻게 변화하게 될까?


 참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그래도 꼭 남겨두어야 할 이야기이다. 불현듯 우리 동생에게, 우리 아이들에게, 그리고 곧 태어날 우리 아기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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