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미셸 가는 길 96화
[대문 사진] 1677년 베켈루앵 수도원의 모습을 담은 조감도
안내센터 건물을 돌아서 수도원 쪽으로 난 중간문 통로를 지나치는 순간 벽에 걸려있는 1677년 수도원 모습을 담은 동판화 조감도를 발견하고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때까지만 해도 베크 수도원에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성당이 존재하고 있었다. 1342년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성당은 바실리카 양식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십자가 형태의 내부를 갖춘 성모 마리아께 봉헌된 교회였다.
성당의 전체 길이가 130미터에 이르고 내진만 42미터에 달하며 내진에 7개의 기도소들이 들어선 전형적인 대성당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성당의 높이는 42미터에 달해 바로 옆에 지금까지도 남아있는 니콜라 탑 40미터와 같은 높이였다.
통로를 막 나서니 왼편으로 성 니콜라 종탑이 갑작스럽게 느닷없이 엄청난 크기로 다가왔다. 마을입구에 처음 도착하여 멀리서 바라보았을 때는 그렇게 높을 줄 몰랐기에 충격은 더 컸다.
탑 오른편 너머로는 한 때 노트르담 대성당 또한 거대하고 장엄한 모습으로 육중하게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당은 온데간데없고 빈 터에 적막만이 나뒹군 채, 텅 빈 무한대의 허공으로 까마귀들만 무리 지어 날아오르는 풍경 탓에 가슴까지 먹먹해지면서 무슨 연유로 대성당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일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어찼다.
생각하기를 그만두자 니콜라 탑을 등진 채 오른편 정원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수도원 건물 모습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수도원 정원 한가운데에는 베크 실개천이 흐르고 실개천을 흐른 물은 인근의 브리온느를 지나 릴(Risle) 강에 더해져 퐁토드메흐[1]를 가로질러 대서양으로 흘러들 참이었다.
수도원 건물은 인기척마저 없었다. 건물 오른편 아래쪽으로는 이른바 ‘수사들의 뜨락’이라 불리는 목초지가 펼쳐져 있었다. 수도원 건물은 교회와는 아무 상관없이 지어졌다는 듯한 형상이었다. 차라리 기다란 통로를 연상케 하는 건물에 가까웠다. 그러나 건물 정면만큼은 교회임을 일러주는 부조물들이 가득 차있었다.
살그머니 문을 잡아당기자 문이 열리면서 내부가 한눈에 들어왔다. 역시 생각대로 성당이었다. 멀리 제단이 있는 곳에서 수사가 방문색처럼 보이는 중년부부에게 무언가를 진지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교회 내부는 독특하다 못해 “어 이럴 수도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 만큼 텅 비어있었다. 커다랄 뿐만 아니라 널찍한 원통형 통로 자체였다. 이제까지 십자가 형태의 교회 내부만 봐온 터라 생경하기까지 했다.
입구에 서서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붙박이자세로 한참을 서 있다가 제단 쪽으로 걸어갔다. 중년부부는 수사에게 나지막이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서 우리 쪽을 향해 걸어오는 중이었다. 수사의 친절하고도 자상한 설명이 다 끝난 모양이었다. 중년부부는 우리 부부 앞에 서더니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띠고는 인사를 건네 왔다. 부부와 눈이 마주친 나는 오직 ‘봉쥬’라고만 나직이 인사말을 건넸다. 멀리서 수사가 우리 부부를 기다리는 듯해서 수사에게 다가가 인사를 나눠야 할 참이었다.
나이가 일흔은 훌쩍 넘어 보이는 인상을 한 수사께서는 늦은 시각에 찾아온 동양인 불청객을 그저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기색이었다. “좀 일찍 찾아오지 그랬어. 이제 미사 드릴 시간이야. 6시가 다 되어가잖아.”하는 목소리가 공명처럼 울려 퍼지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먼발치에 또 한 명의 수사가 제단 가까이 명상에 잠긴 듯한 모습으로 미사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리는 듯했다. 그 순간 수사가 우리에게 웅얼거리는 듯한 말투로 제단 쪽을 향해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키면서 무어라 이야기했다. 그러나 수사가 내던진 말은 분명했고 간결했다.
사르코파쥬(Sarcophage)! 석관이었다. 누구의? 아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사가 손으로 가리킨 강화유리 바닥에 보이는 석관묘는 수도원을 창건한 에흘루앵의 묘였다. 한때 이곳의 수도원장이었던 랑프랑크와 앙셀므는 영국 캔터베리 대성당에 묻혔다. 반면에 수도원 교회에는 설립자라 할 수 있는 에흘루앵의 시신이 안장된 것이다.
수사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에흘루앵의 사르코파쥬(석관)는 강화유리 안에 거의 부서진 채로 남아있는 커다란 돌덩어리를 제외하면 참으로 현대적이고도 매력적인 장식을 하고 있었다. 실내바닥 높이에 강화유리로 덮여있는 커다란 돌덩어리는 석회암으로 제작된 석관이었고, 강화유리와 석관 사이에는 철제 가시나무 장식을 해놓아서 언뜻 보면 그게 무덤이란 생각이 안들 정도로 현대적이었다. 철제 장식은 아마도 예수 그리스도가 골고다 언덕에 끌려갈 때 로마 병정들에 의해 머리에 강제로 씌워진 가시면류관을 상징하기 위한 것이리라.
기다란 반원형 통로 같은 교회 실내 구조도 그렇거니와 실내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제단도 그렇고 멀리 통로 끝 하얀 벽에 매달린 대형 십자고상마저 21세기에조차 아주 모던한 풍이었다. 석관까지도!
[1] 퐁토드메흐(Pont-Audemer) : 릴 강이 관통하는 노르망디 지방의 이 작은 마을은 관광책자마다 과장해서 노르망디의 베네치아라 일컫는 마을이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릴 강가에 줄지어 서있는 꼴롱바쥬 건축물도 독특하지만, 마을 한 복판에 자리한 노트르담 성당은 바이킹의 솜씨라 짐작되는 커다란 배를 엎어놓은 듯한 독특한 천장구조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