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미셸 가는 길 95화
[대문 사진] 베켈루앵 마을 초입
갓길에 차를 세우고 니꼴라 종탑에 마음을 빼앗겨 한참을 바라보던 그 와중에 몇 대의 차들이 나타나 우리 두 사람처럼 길가에 차를 세우고는 니꼴라 종탑과 함께 마을 사진을 찍는다고 난리법석을 피웠다.
명상과 묵상의 마을이란 점이 무색하기만 했다. 나는 그들 모르게 슬그머니 차를 끌고는 마을로 내려왔다. 그러고 보니 내가 서있던 자리는 마을보다 높은 언덕바지였다.
마을이 우선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일단 마을 한복판에 차를 세워두고 산책하는 것이 나을 성싶었다. 길가의 꼴롱바쥬로 지은 집들은 사진에서 보던 것보다도 훨씬 산뜻하고 정겹게 다가왔다.
단아하고 아름다운 외관, 길가 대부분 건물들이 호텔이나 식당으로 운영되고 있었지만 간판이 너절한 대도시의 풍경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수령이 몇십 년은 되어 보이는 나무 아래 차를 세우고 길 건너편의 건물들을 하나하나 뜯어보았다. 그 가운데 내가 애용하는 메르퀴르 호텔도 눈에 띄었다.
3층이 채 안 되는 나지막한 높이를 이룬 꼴롱바쥬 건물들은 방금 공사를 마친 집들 마냥 생기가 돌았다. 비가 간간히 흩뿌리는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꼴롱바쥬 건축 특유의 외양이 싱그럽게 다가왔다.
“아 저 호텔에 묵으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 밤은 아무래도 저 호텔에 묵어야겠다.” 수도원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도중에도 그런 생각만 들었다.
수도원을 가로지르는 동네 한가운데 나있는 길은 산뜻하다 못해 정결하기까지 했다. 공기도 상큼했다. 대도시 길들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온갖 오물과 쓰레기뿐 아니라 토한 배설물과 담배꽁초로 더럽혀진 파리의 길들에 비하면 이 마을길은 아이들이 보는 동화 속에나 나오는 길일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상상만이 아니었다. 실제 스위스 알프스 산간벽지 산골마을이나 오스트리아 잘츠카머쿠트 시골마을에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집들도 얼마 전에 지은 집처럼 산뜻했고 아늑해 보였다.
저런 집에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저런 멋진 집에서 살면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다 성당 미사에도 참석하고 수도원에서 개최하는 음악회도 가보고 그러면 또 다른 인생의 참맛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갑자기 인생을 다 산 사람처럼 생의 말년을 꿈꾸게 만든 마을 한가운데를 걸어가면서 여행안내사무소 건물 안을 흘깃 쳐다보니 안에서 여직원이 창문마다 커튼을 치느라 분주했다.
겨울이라 빨리 문을 닫는 모양이었다. 하기는 정초에 문을 열어준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수도원도 문 닫을 시간이 되지는 않았을까 갑자기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두 개의 뾰족한 지붕을 한 수도원 입구의 참으로 인상적인 현관문을 지나 안내센터에 들어서자마자 수사님 한 분이 주섬주섬 가판대를 정리하고 있다.
너무 늦은 시각에 도착한 탓에 성급한 마음으로 안내센터를 도로 나와(이 때문에라도 꼭 다시 방문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건물복도에 이르니 복도 양측으로 몽생미셸 순례에 관한 설명 현수막들을 쭉 전시해 놓은 것이 눈에 띄었다.
이탈리아의 몬테 갸르갸노를 출발하여 미슐레를 지나 몽생미셸에 이르는 순례길을 상징적으로 도안한 현수막이 인상적이었다면 인상적이었다. 설명현수막 곳곳을 장식한 성미카엘 천사장의 모습은 몽생미셸에서 익히 본 눈에 익은 천사의 앳된 얼굴을 닮았다.
지금도 몽생미셸을 향한 순례자들은 쥬미에쥬와 베켈루앵 그리고 리지외를 거쳐 최종 목적지 몽생미셸을 향해 걸어가고 있으리라. 그들은 무한 허공 속을 걸어가면서 한없는 휴식을 맛보면서 크나큰 적막 안에 갇힐 것이리라. 그리곤 가끔씩 이런 수도원에 들러 기도하고 묵상하면서 걸어온 길들을 떠올리면서 또한 걸어갈 길을 꿈꾸리라.
“라방드란 역사가에 따르면, 중세의 순례자는 ‘살아가면서 언젠간 특정한 장소로 여행을 하겠다는 목표를 정하고 그런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어떤 어려움도 감수하는 기독교인’이었다. 중세 사회는 영성으로 가득 찬 사회였고, 영성을 중시하다 보니 요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성인과 순교자가 남긴 유품에 집착했다. 독실한 기독교인은 그런 거룩한 성물함을 한 번이라도 접해 보려고 이 나라 저 나라, 이 교회 저 교회로 찾아다녔다. 기도만 하면서 평생을 그렇게 순례자로 떠돌아다니는 사람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자면 그것은 사회 현상이자 정치 현상이었고 나아가 종교 현상이었다. (…) 순례는 장난이 아니었다.”[1]
[1] 세스 노터봄,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