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이정표

몽생미셸 가는 길 94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베켈루앵 마을임을 알리는 이정표


낮고 평평한 구릉의 목초지 길을 따라가다 보니 르 베켈루앵(Le Bec Hellouin) 이정표가 나온다. 표지판 하단에는 프랑스 관광청이 부여한 꽃 두 개가 그려져 있다. 대단한 등급이다.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69일을 살다 서른일곱의 나이에 자살한 우아즈 강가의 오베르 쉬흐 우아즈(Auvers sur Oise) 마을은 꽃이 하나뿐이다.


베켈루앵은 꽁끄 마을처럼 프랑스에서 아름다운 마을 가운데 한 마을로 손꼽히는 곳이다. 수도원 마을을 미슐랭이 식당 등급을 매기려고 별을 붙이는 것처럼 관광지 등급을 매기기 위해 꽃을 붙이다니 생경한 작태임에는 틀림없다.


관광대국 프랑스의 관광정책에 볼 맨 목소리를 달 필요는 없다. 어차피 전 세계의 교회나 사찰, 사원 등은 이미 관광지화 되었으니. 세계 최고의 관광지는 파리 에펠탑이지만, 두 번째는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이다.


패키지 관광객뿐 아니라 개인 여행객들도 시스티나 소(小) 성당 천장과 벽에 그려진 천지창조나 최후의 심판을 보면 열광한다.


미켈란젤로는 성당의 천장과 벽면에 말씀의 시작과 끝을 그려 넣었다. 성서를 읽었든 안 읽었든 여행객들은 미켈란젤로에 열광한다.


열광의 정도는 미켈란젤로나 보헤미안 랩소디를 부른 머큐리나 방탄소년단(BTS)이나 다 똑같다. 더군다나 중세 예술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기호나 상징에 열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켈란젤로가 그려 넣은 것은 기호나 상징이 아니다. 천지창조요 최후의 심판이다. 다시 되풀이하건대 세상의 처음과 끝! 그래서 전 세계 인류가 열광하는 것이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외계인(ET)」이란 영화를 보자. 어린아이가 외계인과 마주 보며 서로 손가락을 잇대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미켈란젤로가 그린 천장화 천지창조 속의 하느님과 아담이 손가락을 맞대는 장면을 스필버그 식으로 패러디한 것이다.


이 같은 명증한 예술이 어디 있는가? 미켈란젤로는 살아있는 성자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러한 그를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견인한 예술가로만 치부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마을 이정표 하단에 새겨진 꽃 두 송이와 함께 이정표 상단에는 마을이름이, 그리고 그 밑의 가장 크고 넓은 표지판에는 마을 풍경을 단순화한 디자인과 함께 ‘클라세 파르미 / 레 쁠뤼보 빌라쥬 드 프랑스(Classé parmis / Les plus beaux villages de France)’란 문구가 적혀있다. 풀이하자면, 프랑스에서 아름다운 마을 가운데 한 곳으로 선정되었다는 뜻이다. 심사위원들은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베켈루앵을 선정했을 것이다.


마을주민들이 깨끗하고 정겨운 마을을 지켜가면서 그 어디에 비교해도 손색없는 베켈루앵 만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존하고 이를 계승하고자 하는 주민들의 노력과 열의를 높이 샀을 것이다.


숨겨진 보석과도 같은 명상과 묵상의 마을인 줄만 알았는데, 뻔한 관광지였다는 선입견을 갖게 만든 마을의 이정표.


궁금했다. 21세기에도 여전한 중세 마을의 참모습이 궁금해졌다. 마을 이정표를 바라보다 왼쪽 길 건너편으로 눈을 돌리자 산자락아래 마을의 상징이기도 한 수도원 종탑인 니꼴라 탑이 한눈에 들어왔다.


베켈루앵 마을의 상징이 된 생 니콜라 종탑


높이가 40미터에 이르는 니꼴라 탑은 수도원의 상징이자 마을의 상징이기도 하다. 사진을 찍는다고 마을 이정표 앞에 차를 주차시킨 것이지만, 사실 내가 길의 초입에서 차를 세우고자 확신한 것은 온전히 니꼴라 탑 때문이다.


탑은 이미 내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노르망디에 관한 책들을 읽어가며 책마다 니꼴라 탑과 함께 하는 중세 수도원 마을인 베켈루앵을 상탄하는 글귀를 접하곤 했던 것과 같이 짙푸른 산자락을 배경으로 서있는 육중한 사각형의 석회암을 쌓아 올린 종탑은 푸르고 적막감이 감도는 마을의 이정표 구실을 하기에 충분했다.


쥬미에쥬의 두 개의 종탑처럼 베켈루앵의 종탑도 마을을 상징하는 역사유적이란 점, 마을의 문장에도 니꼴라 탑은 마을 한가운데를 흐르는 베크 하천과 함께 등장했다. 길을 뒤돌아보니 먼발치에 나무십자가가 하나 서있다. 종교의 성지여서일까? 갈색 빛을 띤 나무십자가 역시 마을의 특징을 단적으로 암시해주고 있었다.


마을 입구에 서있는 십자가가 마을의 내력을 일러주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