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내에 묻어둔 사연

몽생미셸 가는 길 93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베켈루앵 수도원 수도사의 뜰


세느 강의 브로톤느 다리를 건너면서부터 이런저런 생각에 길이 수시로 바뀌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13번 고속도로로 들어서자 마음이 조금 평정되는 듯, 허나 마을들을 지나고 숲을 관통하다가 또다시 구릉길로 나서기를 몇 차례나 반복했다.


마침내 13번 고속도로로 들어서서 알랑송을 향한 28번 고속도로로 갈아탔다. 푸른 목초지위로는 기울어져가는 겨울햇살이 구릉 위에서 반짝였다. 싱그럽고도 푸른 생명감이 충만한 풍요로움.


그것도 잠시 베켈루앵은 브리온느와 같은 방향이라 고속도로를 벗어나 138번 국도로 갈아타야만 했다. 국도는 다시 438번 지방도로로 이어졌다. 풍경은 급변했다. 세느 강변의 고즈넉함이나 구릉 위 목초지의 싱그러움 또한 멀어져 갔다. 438번 지방도로는 숲으로 들어서더니 롤러코스트를 타듯 산구비로 비틀비틀 경사면을 타고 이어졌다.


얼마를 더 가야 하나 생각이 들 즈음 베켈루앵을 가리키는 도로 표지판이 반갑게 나타났다. 130번 지방도로로 바꿔 타야만이 베켈루앵에 도착할 수 있었다. 솔직히 베켈루앵은 처음이었다. 처음 가는 길이었다. 이곳에 관한 책들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이 마을이 중세 기독교 문명의 성소였음을 실감했지만, 노르망디를 여행할 때마다 번번이 지나쳤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랑프랑크와 앙셀므 역시 낡고 고루한 기독교의 교부철학을 이끌던 성직자이자 신학자라고만 치부하던 시절이었던지라 그들이 이룩한 중세 기독교 사상조차도 고리타분한 교리처럼 여겨졌다. 생각이 바뀐 건 성서를 다시 읽게 된 20년 전의 일이다. 성당 벽에 걸려있거나 벽면을 채운 제단화나 성화를 바라보면서 성서적 지식이 참으로 부족하지 않나 싶어 성서를 다시 읽기 시작하던 그때로 되돌아가야만 한다.


항상 필요는 관심을 낳게 마련이다. 그때 성서를 다시 완독 하면서 수없이 밑줄을 그어대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까지도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구약의 재밌는 서사도 신약의 거룩한 말씀도 아닌 시편의 잠언이다. 어떻게 그런 표현이 가능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그때 내 머릿속을 꽉 채워갔다.


나는 순종과 사랑이란 단어를 의심하고 그에 대해 끊임없이 회의하는 부류에 속한다. 더군다나 신께 향한 사랑이라니… 그걸 생각하면 항상 머리가 아팠다. 곤혹스럽기까지 했다. 하물며 앙셀므가 주창한 “사랑받는 것보다 사랑하는 것이 더 값지다”라는 명제는 내 인생을 망쳐놓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신께 귀의라든지 신께 의지하는 봉쇄수도원에 갇힌 갈멜(Carmel) 수도원의 수사들과 수녀들을 가까이 지켜보면서 신에 대한 의지는 자발적이고도 순결한 상태에서나 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런 내가 이제 수도원을 찾게 되다니, 나이가 든 것일까? 죽음이 두려운 것인가? 이는 내 순수한 의지와는 다른 어떤 호기심에 의한 것인가? 아니면 수도원까지도 여행지 목록에 끼워 넣을 만큼 여행을 할 때로 한 나그네의 속내에 불과한 것인가?


이런 말이 옳다면 지극정성인 아내의 성당 미사 참석이나 기도, 묵상과는 달리 내 신앙의 믿음의 기초는 지극히 허약하고 무너지기 쉬운 속성을 애초부터 간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내와는 달리 내가 가톨릭 신자가 된 것은 영세신부께 고백한 심적 상태의 평화를 위한 것도 아니고, 남에 대한 헌신을 내 스스로 강요한 탓도 아니며, 결의에 차 하느님께 대한 한 없이 부족한 인간으로서의 애틋한 간구에서 비롯한 것도 아니다.


가톨릭 신자가 되기 전에는 엄연한 불교신자였다. 반야심경을 목탁을 쳐가며 음송할 정도로 그 누구 못지않은 대단한 열의를 지닌 초보 불자였다. 그런 내가 갑자기 가톨릭으로 개종한 것은 우연히, 아니면 필연이었을까? 천주교로의 개종은 오롯이 단 하나의 이유, 내 가족사에서 발생한 끔찍한 사건 때문이었다.


아홉 살이나 나이 차이가 나는 누이동생이 중학교 1학년 13살이 되던 석가탄신일인 초파일에 아무도 없는 부모의 빈 집에서 목숨을 끊은 것이 원인이라면 원인이었다. 나는 지금도 성당만 가면 묵상하면서 가끔씩 하느님께 묻곤 한다. 왜 아무 죄 없는, 세상사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아는 게 없는, 그저 천진난만할 뿐인 아이를 대체 무슨 이유로 데려가셨습니까? 하고 말이다. 어리디 어린 나이에 세상을 훌쩍 뜬 누이동생만 생각하면 그저 눈가에 눈물만 고인다.


프랑스 아베롱 지방의 꽁끄(Conques) 마을의 수호성녀 화(Foy)는 로마인들 앞에서 믿음을 지키려다 13살의 나이로 순교한 성녀다. 내 누이는 세상물정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였다. 대체 빈 집의 공허함이란 무엇인가? 외로움이란 어떤 것인가? 아무도 곁에 없는 그 텅 빈 공허감에 밀려드는 외로움은 어떤 무게인가?


물론 일차적으로는 내 부모가 문제일 수 있고 이차적으로는 나를 포함하여 나이 많은 형제들께도 책임이 있다. 하지만 신의 의지로 아이가 죽음을 맞이했다면 대체 하느님께서는 왜 나를 포함하여 그 많고 많은 형제들 가운데 그 아이를 선택하셨느냐 하는 점이다.


만일 하느님께서 전지전능하시다면 이제는 내게 답을 주셔야만 하지 않을까 나는 오늘도 묻고 있다. 간구하고 있다. 왜 내가 아닌 그 철없는 아이를 데려가셨습니까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