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르노가 들려주는 노르망디 왕국 이야기 48화
[대문 사진] 바이킹이 노르망디에 전해준 기술로 만든 보트
다양한 문헌들 속에서 고래잡이 어부들은 ‘발마니(Walmanni)’로 불렸습니다. 발마니란 용어는 스칸디나비아 어 발멘(hvalmenn, 두 단어는 같은 의미)에서 비롯한 말입니다. 지금까지도 이 용어는 성씨를 뜻하는 단어로 쓰이고 있는데, 고망(Gaument)이나 또는 르 보망(Le Vauman)이 같은 경우에 속합니다.
고래잡이 어부들이 가장 숫자가 많았던 지역은 디브 강 하구와 코탕탱 북동쪽 연안이었습니다. 12세기에 작성된 「생 소뵈흐 르 비콩트 기록집」 고문서에 등장하는 ‘발세타(valseta)’란 용어는 고래잡이 어부들의 조직을 가리키는 스칸디나비아 어인 hval(manna)setr와 일치합니다.
더군다나 그 시대에 고래잡이 어부들의 조직을 ‘societas walmannorum’이라 불렀죠. 이는 보통 해안에 인공적으로 울타리를 쳐놓고 팽팽하게 설치한 그물 안으로 고래를 몰아넣으면 물살에 떠밀려 고래들이 해안의 백사장위로 밀려 나오는 연안 고래잡이 현황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바이킹이 몰려 오기 전인 메로빙거 시대에도 고래잡이는 성행했습니다. 세느 강 하안에서 보다는 코탕탱에서 더 많이 이루어졌습니다. 예를 들어 875년에 씌어진 「바스트 성인의 기적들」에서는 망슈 해협에서의 고래잡이와 어부들의 ‘조합(consortium)’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게다가 ‘크라스푸아(craspois)’라는 용어가 스칸디나비아 어인 hvalr에 전혀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노르망디 지방에서 사용하는 어휘는 덩치 큰 바다코키리의 옛 표기방식인 ‘갈르루스(galerous)’를 통해 분명하게도 스칸디나비아 어에서 기원했음을 증거 해줍니다. 고래과의 동물인 갈르루스(galerous)는 스칸디나비아 어인 흐발로스(hvalross)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프랑스 어로 굳어진 돌고래(marsouin)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칸디나비아 어 marsvin에서 온 이 단어는 프랑스 어와 마찬가지로 돌고래를 가리키며 자의적으로는 ‘바다의 돼지’를 뜻합니다.
이와 병행하여 스칸디나비아 식으로 연안에서 벌어진 일들 가운데 주목할 만한 일은 염전 운영에 관한 것입니다.
염전은 갈리아 시대로부터 이어져왔습니다. 바이킹들은 소금을 확보하기 위해 그 보다 더 나은 방법을 택하지는 않았죠. 그렇기는 하지만 염전과 관련한 어휘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스칸디나비아의 영향력을 결코 무시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오늘날 디브 강 연안은 바닷물이 모래들을 밀어 올려 거대한 백사장을 방불케 하고 있지만, 과거에 특히 이런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염전 지역이 이곳이었습니다. 이밖에도 바흔느빌의 생 바스트의 펄과 몽생미셸 만에 발달된 펄에 염전이 들어섰습니다.
펄 지대 또는 ‘담(dams)’은 땅 위로 물이 넘친 상태의 지면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이 말은 스칸디나비아 어인 dammr에서 온 말로써, 물(水)이란 의미와 관련된 단어입니다. 이와 함께 쓰이는 용어로써 ‘딕(dics)’이란 말(diki에서 비롯한 말로써 같은 의미)은 작은 개울을 통해 물을 끌어내는 것을 의미하죠. 작은 개울을 뜻하는 말로는 ‘fliets’(fljót에서 온 말, 시냇물)가 있습니다.
당시에 염전 지역에 살던 이들은 ‘모래언덕(hogues)’(haugr에서 온 말로 같은 뜻)에 소금을 산더미처럼 쌓아두었습니다. 이런 어휘들은 지도나 토지대장 같은 수많은 기록물들 속에서 쉽게 찾아집니다. 비록 소금제조 방법에 관한 아무런 언급도 없지만, 스칸디나비아 인들이 노르망디에서 엄청난 양의 소금을 생산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합니다.
[1] 양쪽 고물이 뾰족한 배는 훼깡에서 건조한 것이고, 배 뒤쪽 엉덩이가 둥근 형태는 바흐흘뢰흐에서 만든 것이며, 대형 보트는 꾸흐쇨르에서 제작한 것입니다. 사진 속의 배는 1927년에 건조한 대형 보트로써 가장 마지막까지 운행된 보트입니다. 프랑수아 르노 사진.
[2] 후미가 둥근 형태를 띠었습니다. 1859년 피에르 에밀 베르텔레미 소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