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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래된 타자기 Nov 06. 2024

무너져 가는 교회

몽생미셸 가는 길 188화

[대문 사진] 승리의 노트르담 성당


트루빌에도 로마네스크 시기에 지어진 교회가 있다. 승리의 성모 마리아 성당(L’église Notre-Dame des Victoires)이 그와 같은 건축의 역사를 증언한다.


11세기에 처음 지어진 성당은 세례자 요한에게 봉헌된 성당이었다. 아직까지 그때의 흔적이 남아있는데, 라틴 십자가 형태의 내진 교차점에 들어선 트란셉트 위에 올라선 종탑이 그 유일한 흔적에 해당한다.


정복왕 기욤을 딴 거리와 함께 로마네스크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몇 안 되는 건축물이란 점에서 트루빌 또한 천 년의 역사를 품은 문화유산 도시로서의 명성을 입증해 주고 있다.


그러나 전쟁과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그 천 년의 역사는 무너지고 말았다.


19세기에 와서 새로 지어진 성당마저 온갖 폭풍우를 견디지 못하고 삭아 부스러진 상태다. 습기는 석회암에 치명적이다. 성당 외관과 함께 내부 벽에 그려진 프레스코 화도 엉망진창 방치된 지 오래다.


이를 복원하려고 트루빌 시당국은 2023년부터 온갖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복원 공사 비용만 4백만 유로에 달하는 이 엄청난 프로젝트에 다행히 트루빌 시가 문화유산 복권 기금에 당첨되어 28만 유로가 선 지급되는 바람에 공사가 시작될 수 있었다고 지역 언론은 전하고 있지만, 나머지 기금을 어떻게 충당할지가 궁금하다.


훼손된 프레스코 화, 지역 언론 <Ouest-France>에서 인용.


이미 다른 교회 하나는 문을 닫았다. 찾아오는 신자도 없고 성당도 무너져 내려앉은 상태며, 미사를 집전할 성직자도 부재한 게 교구 사정이다.


트루빌 시당국은 성당을 개조하여 예식장으로 쓸지, 아니면 미술관으로 활용할지를 놓고 고민 중이라고 지역 언론은 타진한다.


사용처를 놓고 고민에 빠진 노트르담 봉 스꾸흐(Eglise Notre Dame de Bon Secours) 성당.


프랑스 대혁명 이후로 국가와 교회의 분리, 이어지는 프리메이슨과의 이견 다툼, 그보다도 더 심각한 냉담자의 증가와 신자의 급격한 감소, 그리고 자연재해는 교회를 무너뜨린 주요한 요인이었다. 바티칸 제2차 공의회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신자는 늘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1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카지노 사업은 날로 번창해만 간다.


성당에 얼기설기 그물이 처져 있는 걸 지켜보자니 성당 안으로 들어설까 말까 망설여 지기까지 한다. 이런 때는 가슴팍에 성호를 긋는 것이 제일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아주 근사한 제단이 있었음을 일러주는 기록사진이 마음을 쓸어내리게 한다.


1960년대 승리의 노트르담 성당 제단 모습.


서쪽 정면입구로 들어서자 습기가 피워낸 석회암으로 지은 건물만의 독특한 곰팡이 냄새가 훅 끼쳐온다. 오래된 성당일수록 강하게 후각을 찌르는 이 특유의 냄새는 성당이 병들어 있다는 걸 입증하는 가장 강력한 징후다.


성당 전체가 습기 곰팡이에 감염된 게 틀림없어 보인다. 차라리 성당에서 치르는 행사라도 많다면 신자들이 더 자주 드나들어 냄새가 덜할지도 모르지만, 미사 집전의 명목만 유지하고 있는 상태여서 곰팡이 냄새마저 영 다르게 끼쳐온다.


19세기에 제작된 파이프오르간을 정비하고 있는 모습, 지역 미디어 Ouest-France에서 인용.


다른 성당과는 다르게 특이하게도 트란셉트(십자가 형태의 교차점에 난 좌우 교차 회랑) 위로 올라선 종탑을 바라본 뒤 잠깐 기도와 묵상을 마치고 나서야 성당을 빠져나온다. 나오면서 드는 느낌은 승리의 노트르담 성당이 아니라 교회가 무너져 내려앉고 있다는 절박함이다. 아뿔싸! 이걸 어쩌나? 역사도 함께 무너져 내려앉는 느낌이다.


좁은 골목길에서 뒤돌아본 성당은 붕대를 칭칭 감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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