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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래된 타자기 Nov 13. 2024

여름을 기다리는 백사장

몽생미셸 가는 길 189화


문득 호텔 유리창 앞 탁자에 놓인 두툼한 책을 펼쳐 든다. 펼친 책갈피에서 한시(漢詩) 한 수가 반갑게 미소 짓는다. 임억령(林億齡)이란 조선 중기 문인의 시다.


해묵은 절 문 앞에서 또 한 봄을 보내니

남은 꽃 비를 따라 내 옷 위에 점을 찍네.

돌아올 제 맑은 향내 소매에 가득하여

무수한 산벌들이 먼 데까지 따라오네.[1]


봄을 떠나보내는 이의 애타는 심사를 자연에 빗대어 절묘하게 읊은 시다. 이 시를 옮긴 이는 “시를 짓는 거나 그림을 그리는 거나 다 마음을 담는 일”이라 했다.[2] 그의 말에 동의한다. 마음을 담지 않았다면 어떻게 저런 절구를 읊을 수 있었겠는가? 소소한 서정의 아름다움까지도 시구에 배어있음은 고풍스러운 시어들이 지닌 ‘향내’ 때문일 것이다.


절간을 기웃거리는 거나 성당 문을 밀고 빼꼼히 안을 들여다보는 일이나 다 같은 일이다. 고향을 찾았을 때 친구가 반갑다고 공주 갑사를 데리고 간 일이 새삼 떠오른다. 그때도 봄이었다. 정림사 5층 석탑의 폐사지에서 뛰어놀던 내가 언제부턴가 남의 나라 남의 성당 터를 찾아다니고 있으니 인생은 참으로 무상하고 덧없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봄을 보내며 나 또한 떠남의 서정에 물들 수 있다면 바라보는 허공에 출렁이는 물살도 청춘의 소용돌이에 휘둘리던 예전 같지만은 않으리라. 바다를 바라본다. 또 다른 쪽에서는 이런 표현도 등장한다.


푸른 바다 배 지나간 자취 찾기가 어렵고

청산에는 학 난 흔적 보이지 않는구나.[3]


학을 갈매기로 바꾸어도 무관하다. 시가 만들어내는 마음의 풍경이기에 학이 날아간 자리든 갈매기가 날아오른 자리든 개의치 않는다. 저 고운 모래사장엔 물살을 피해 건너뛰기하듯 물새들이 종종걸음 치다 날아오르다 내려앉곤 한다. 아이들만이 서넛이서 모래집을 짓고 허물고를 반복한다. 어젯밤 불면에 시달렸다. 무너져가는 성당을 본 탓이다. 성당은 변함이 없다고 했는데 아예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상승해하면서 꿈까지 꿨다.


노르망디 지방에 로마네스크 시대에 세워진 성당들은 대부분 폐허가 되었다. 마지막 전쟁이 가져다준 폐해는 깊고 굴곡진 상처를 남겼다. 역사적 기념물이라든가 문화유산이라 하는 것들은 어찌 보면 멀쩡한 몰골을 한 건축물에 국한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시대가 바뀔 때마다 그와 같은 한정된 규정은 정도가 더 심화될 것이 뻔하다.


저녁 내내 호텔 뒤편은 카지노를 오가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인생을 탕진한 밤이 길어가면 길어갈수록 카지노는 더 많은 사연을 지닌 사람들로 들끓것이다. 나는 저녁 고깃배들이 돌아오는 포구를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포구에 노을이 지면서 여름의 찬란한 노을을 꿈꾸는 등대의 꿈을 그려보았다. 트루빌엔 등대가 2개가 서있다. 하나는 초록빛이고 다른 하나는 붉은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여름날 나는 등대를 하나만 그렸다. 이유를 모르겠다. 2개의 등대가 나란히 서있는 포구를 그리지 않은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여름이 오면 저 텅 빈 백사장은 인파로 들끓고 온갖 파라솔이 난무할 것이다. 파라솔 아래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 누워서 독서를 하는 이들, 엎어져 등을 태우는 이들, 앉아서 음료를 마시는 사람들 온갖 풍경이 다 허공을 채워갈 것이다. 직사각형의 유리창에 들어찬 백사장 여름 풍경을 미리 떠올리기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위를 피해 그늘로 숨는 것과 일부러 햇빛을 쫓아다니는 것 사이에는 얼마큼의 거리가 나 있을까 궁금하다. 점점 열기로 달구어지는 지상의 햇빛에 그런 생각마저 끼어든다. 이제 이웃한 도빌로 향할 때다. 어제저녁 내내 노을 지는 바다를 바라보았으니 오늘 아침은 도빌의 말랑말랑하고 달콤하기까지 한 산책로를 걸어볼 참이다. 거기에 또한 내 인생의 일부분이 묻어 있을 것이고 추억을 떠올리는 것도 새삼스럽다. 그 짧고도 긴 회상을 어떻게 이어갈지가 관건이다. 벌써 호텔 유리문을 밀고 밖을 향해 나가는 모습을 떠올린다. 맘이 먼저 문밖으로 발을 딛는 모양새다.


밤이 지고 아침이 찾아왔다. 등대 너머의 바다를 향해 물새가 날아오른다.





[1] 정민 지음, 『한시 미학 산책,』 휴머니스트, 2010, 서울, 88쪽. 참고로 한자로 씌어진 시는 표기하지 못했음을 밝힌다.


[2] 위의 책.


[3] 같은 책, 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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