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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래된 타자기 Oct 31. 2024

어시장에서의 한 끼

몽생미셸 가는 길 187화

[대문 사진] 막심 꼬꺄흐-베스트조베흐(Maxime Coquard–Bestjobers) 사진


트루빌 마을의 어시장에 자리한 해물전은 노르망디 지방에서 그 명성이 자자하다. 트루빌 마을이 옛적부터 고기잡이 배들이 드나드는 포구마을이기도 하지만 잡아온 생선들을 직접 요리하여 그 자리에서 시식할 수 있도록 특별히 해물전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이 아름다운 외관을 자랑하는 어시장이 얼마 전에 화재로 인해 전소되었다. 파리에서 티브이(TV) 뉴스를 통해 화재 현장을 지켜보던 나는 트루빌에 갈 때마다 해물전을 어슬렁거리던 기억을 떠올렸다.


바닷가에서 태어나지도 자란 적도 없지만, 나는 유난히 해물을 좋아한다. 아마도 어머니 풍양 조 씨 영향이 큰 것 같다. 어려서부터 비릿한 해물을 접했던 나의 입맛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트루빌은 그런 나의 해물에 대한 향수를 달래주던 곳이었다.


화재를 딛고 새롭게 개장한 트루빌 어시장.


한 끼 때우기 좋은, 신선한 해물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한, 이것저것 맛보고 싶은 해물을 골라 그 자리에서 먹을 수 있는 식탁이 마련되어 있는 트루빌의 해물전만큼 여행객들에게 사랑받는 곳도 없을 것이다.


물론 겨울철 알바트로스 해안에서 성대히 벌어지는 청어 축제가 있기는 하지만 때를 맞춰 축제 기간에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숯불로 구운 청어를 맛보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트루빌의 어시장 해물전은 어떠한 제약도 없이 항상 열려 있어 부담스럽지가 않다. 아침 10시부터 저녁 19시까지 언제든 해물을 직접 구입할 수 있고 시식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트루빌 어시장 해물전 모습. 노르망디 관광청 사진.
어시장 바로 뒷편 포구에서는 고깃배가 드나들며 그날 잡은 생선류나 어패류를 출하한다.


정오를 한참 지난 때여서 배가 출출하다. 아내 손을 이끌고 해물전으로 향한다. 발걸음이 사뿐사뿐 가볍기까지 하다. 오늘만큼은 레스토랑의 구석진 비좁은 테이블이 아니라 봄빛 가득한 길거리 간이 테이블에서 한 끼 때울 참이다.


어시장 해물전은 기존 건물이 화재로 전소된 탓에 새로 지어 더욱 산뜻해진 분위기다. 테이블마다 벌써 사람들로 가득 찼다. 빈 테이블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날씨가 좋아서다. 날씨가 화창하면 워낙 햇빛을 좋아하는 이들인지라 이런 시골 마을 구석까지 나들이객들로 북적거린다.


어시장 앞 보행자 거리에 설치된 간이 테이블에서 해물을 즐기는 모습.


이리저리 먹을 것을 고르다가 가게 주인이 추천한 굴과 새우를 우선 주문한다. 노상에 설치한 식탁에서 샤르도네 백포주를 곁들인 해물요리는 화창한 날씨에 한끼 때우기 전에 맛보는 해물요리의 훌륭한 아페리티프로 부족함이 럾다.



레스토랑 <증기선(Les Vapeurs)>에서 65유로짜리 랍스터를 맛본 적이 있다. 불에 구운 랍스터 한 마리가 65유로나 했다. 메뉴판에서 그걸 보고 대체 랍스터를 어떻게 요리하길래 가격이 그리 비쌀까 하는 호기심에서 주문했는데, 접시에는 진짜 구운 랍스터 한 마리만이 달랑 얹혀 나왔다.


나는 그걸 보고 경악했다. 앞에서 바라보던 아내도 포크질을 멈추고 랍스터 접시를 가만 응시했다. 65유로였다. 그 한 접시가! 그 뒤로 트루빌에 올 때마다 한 끼는 반드시 어시장에서 때우리라 작정했다.


해물이 먹고 싶으면 어물전이 최고다! 이는 나만의 철칙이 아니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만고의 진리다! 이 진리를 왜 그동안 외면했을까? 왜 나는 실내 그것도 비좁은 테이블에 앉아 식사하고자 했을까? 무엇 때문에 주방장이 해주는 요리만 먹으려고 했을까? 생선을 다듬는 이가 생선을 제일 잘 아는 법이고 해물을 다루는 이가 해물을 제일 맛있게 먹는 법을 아는 사람이다. 고기를 바르는 사람이 어떤 부위가 제일 맛있는지 아는 것처럼……


뚜크 강을 가로 지르는 <벨기에 인들의 다리> 위에서 주황색 지붕을 한 트루빌 마을의 어시장(Marché aux poissons) 풍경을 여행 화첩에 담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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