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미셸 가는 길 186화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는 꽤 기다란 장편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 』 하나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프랑스 작가다. 이점에서는 더블린의 작가 제임스 조이스와 비견된다. 파리에서 태어나 파리의 페르 라쉐즈 묘지에 묻힌 소설가이자 문학비평가는 어렸을 때부터 천식으로 고생한 탓에 여름마다 이곳 노르망디 해안을 찾아 피서를 즐겼다고 회자된다.
천식은 날씨가 추워지면 기온이 조금만 하강해도 잔기침을 연발하며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가슴이 조여드는 듯한 통증에 시달리는 병이다. 따뜻한 태양이 내리쬐는 지중해 도시들이 천식 환자에게는 최고의 휴양지라지만, 하루 종일 기차를 타고 가야만 겨우 도착하는 지중해 도시들보다도 4시간이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트루빌, 도빌, 꺄부르에서 여름을 보내는 걸 프루스트는 더 선호했던 것 같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덕분에 작가의 친인척 또한 이곳 노르망디에 여름 별장을 갖고 있었던 것도 큰 몫을 했다. 여름철에도 그리 무덥지 않고 공기가 맑으며 바닷바람까지 불어오는 시원한 날씨는 천식을 앓는 그에게는 더없이 좋은 휴양지였을 것이다. 이곳에서의 경험과 추억을 되살려낸 소설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이다.
거칠게 비교하자면, 영어권에서 제임스 조이스가 있다면, 프랑스어권에서는 마르셀 프루스트가 있다. 이른바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 계열에 속하는 작품이란 점에서 조이스의 『율리시스(Ulysses)』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행복하게도 조우한다. 조이스의 소설이 프루스트의 소설의 직접적 계승이란 점 또한 이 두 작품이 서로 얽혀 들어가게 만든다.
조이스의 『율리시스』는 더불린이라는 한 도시에서 일어나는 하루 동안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 ‘하루’가 소설의 진짜 주인공인 셈이다. 아놀드 하우저의 관점에서 보자면, “조이스는 사건의 흐름 대신에 상념과 연상의 흐름”을, 파편화된 일개 “개인이란 주인공 대신에 의식의 조류와 끝없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내면의 독백(monologue)”을 그린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이와 같은 내면의 독백에 따른” 의식의 흐름이란 “움직임의 연속성이며, 이른바 ‘이질적인 연속체’이고, 붕괴된 세계의 만화경 같은 모습이다.” “소설 줄거리의 포기, 주인공 인물의 제거, 심리소설의 와해, 초현실주의의 ‘자동기술법’,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화에 있어서의 몽타주 수법 및 시간, 공간을 혼합한 형식을 들 수 있다.”[1]
이러한 조이스의 ‘의식의 흐름’에 입각한 소설의 대두는 심리소설의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조이스의 경우, 초현실주의 미술에서 디테일이 사실적(寫實的)이듯이 그의 심리분석이 정확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작품 전개의 심리적 중심을 이룬다는 뜻에서의 주인공이 없을 뿐 아니라, 인생 현상의 전체 속에서 특별히 ‘심리학적 존재 영역’이라 이를 만한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소설의 비심리학화 과정은 따져보면 이미 프루스트에서 시작된 것이다.”[2]
“감정 분석 및 의식 분석의 제1인자로서 프루스트는 심리소설의 정점을 이루는 동시에, 하나의 독립된 실체로서의 영혼(Psyche)이 붕괴되기 시작하는 과정을 나타낸다. 왜냐하면 모든 현실이 의식의 내용으로 화하고 사물은 오로지 그 사물을 경험하는 정신의 매개체를 통해서만 그 의미를 지니게 될 때, 스탕달, 발자크, 플로베르, 조지 엘리오트, 톨스토이, 도스또예프스키 등에게서 문제 되던 심리학은 이미 이야기될 수 없기 때문이다. 19세기 소설에서 영혼과 성격은 세계와 현실의 대척점을 뜻하는 것이며, 심리학은 주관과 객관, 자아와 비자아, 내면과 외계의 대립 내지 절충이 이루어지는 영역이다.
이러한 의미에서의 심리학의 지배가 프루스트에서 끝을 맺는다. 그는 열렬한 인물화가요 희화가(戲畫家)지만 그의 관심사는 개인 성격의 묘사라기보다 정신 구조 자체의 분석이다. 프루스트의 작품은 그것이 현대 사회의 총괄적인 묘사를 담고 있다는 흔히들 말하는 뜻에서만 아니라, 현대인의 모든 욕망과 충동, 재능, 콤플렉스, 합리성, 비합리성 등, 그 정신구조 전체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백과사전(Summa)’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3]
조이스의 『율리시스』는 프루스트 소설의 직접적 계승이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은 시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담고 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시간의 존재 자체, 시간의 상대성, 그리고 현재에서 그것을 파악할 수 없는 무능력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생성한다. 삶은 개인이 그것을 깨닫지 못한 채 지나가며, 마들렌을 맛보고, 길에서 비틀거리고, 과거에 대한 감각을 구성하는 우연한 사건들만이 과거 전체를 자각하게 만들고, 경과하고 잃어버린 시간만이 어떤 가치를 지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프루스트의 소설을 관류하는 레미니선스(Réminiscence) 개념이다.
레미니선스란 우리말로 ‘회상’을 뜻하는 말로 프루스트가 플라톤적 사고에 기댄 흔적이 역력하다. 플라톤에 따르면, 우리의 기억장치는 지금 당장 겪은 일들을 금방 다 되돌릴 수는 없지만, 어느 날 우연치 않은 순간에 우리가 겪은 일들이 세세하게 각 개의 장면들로 떠오른다(마치 영사기에서 돌아가는 필름처럼)는 것이다. 심지어 우리가 바라보는 풍경조차도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이미 우리가 마주친 적이 있는 풍경에의 기억에서 기인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레미니선스 이론이다. 프루스트의 소설은 이 개념에 기초한 한 개인이 겪은 일상적 경험을 낱낱이 되살려낸 작품에 해당한다.
프루스트에 따르면, “시간은 현재에도 미래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과거에 존재할 뿐, 과거에 대한 인식은 죽음에 가깝다”라고 설파한다. 파리 소르본느 대학에서 현상학자에게 강의를 들은 바 있는 프루스트는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의 현상학적 개념에 의거해 현재도 존재하지 않으며, 미래도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오직 과거만이 존재한다는 시간 개념을 주장한다.
“게르망트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소설 속에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이는 자신의 인생의 동반자였던 존재들을 즉시 인식하지 못하는데, 이는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시간의 흐름을 읽을 수 없음을 상징한다. 우리는 평생토록 어떤 존재들과 마주친 처음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며, 그들의 얼굴에 나타난 세월의 찌꺼기에 대한 인식은 개인이 그것을 인식한 후 죽음에 임박한 순간이 도래할 때까지 우리가 그것들을 전혀 인지할 수 없게 만든다. 오직 과거에 대한 자각만이 파편화된 일상에 통일성을 부여할 뿐”이라는 것이 프루스트가 주장하는 핵심이다.
이러한 확고한 레미니선스 개념에 기초하여 프루스트라는 한 개인의 삶을 온전히 되살려낸 작품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 할 수 있다. 소설의 내용이 이들 중산층 사회의 실상을 지루하게 묘사하든 묘사하고 있지 않든 당대 문학계에서는 새로운 시도였음은 명백하다.
그러나 앙드레 지드 같은 소설가는 그의 이러한 대담한 시도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이에 실망하다 못해 분격한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권에 해당하는 원고 「스완네 집 쪽으로(Du Côté de chez Swann)」를 그라세(Grasset) 출판사에서 자비로 출판한다. 그의 소설을 읽은 비평계에서 폭풍 같은 호응이 불길처럼 일어나자 앙드레 지드는 슬그머니 자신이 프루스트의 소설 출판을 거절했음을 후회한다면서 자신이 책임편집을 맡고 있는 갈리마르(Gallimard) 출판사의 전신인 NRF(La Nouvelle Revue française)에서 제2권 「꽃피는 아가씨들 그늘에서(À l'ombre des jeunes filles en fleurs)」를 출판한다. 그리고 프루스트는 그 해에 이 소설로 공꾸르 상을 수상한다. 이 만화 같은 일련의 사건 속에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탈고되고 온전한 출판을 앞둔 시기에 탈진한 천식 환자 프루스트는 영광의 순간을 앞두고 안타깝게도 짧은 생을 마감한다.
프루스트가 노르망디 칼바도스 지방의 해안을 처음 방문한 것은 1885년 로슈 누아르 호텔(Hôtel des Roches Noires)에서 할머니와 함께 머무는 동안 찾은 트루빌에서였다. 이후로 트루빌에 매우 애착을 느낀 프루스트는 여러 번 이 해안을 찾곤 했다. 어린 시절 친구였던 스트라우스 부인을 찾아가기도 하는데, 스트라우스 부인은 트루빌 고지대에 위치한 르 끌로 데 뮈리에흐(Le Clos des Mûriers) 저택에서 살고 있었다.[4]
프랑수아 자비에 에보(François Xavier Ebaud)에 따르면, “작곡가 조르쥬 비제(Georges Bizet)의 미망인이기도 했던 마담 쥬느비에브 스트라우스(Madame Geneviève Straus)는 19세기말 파리에서 살롱을 개최하곤 했다. 그때 살롱을 드나들던 작가들로는 클레망소, 에밀 졸라, 기 드 모파상, 에드가 드가, 로베르 드 몽테스키에, 자크 에밀 블랑쉬, 마르셀 프루스트 등이 있었다.
1893년 그녀와 그녀의 남편 에밀 스트라우스(Émile Straus)는 트루빌의 전망 좋은 고지대에 르 끌로 데 뮈리에흐(Le Clos des Mûriers)라는 빌라를 지었다. 그 후 파리의 그녀 집에서 열리던 문학예술가 살롱은 여름 동안 문을 닫았고, 스트라우스 부인은 2년 전 트루빌을 발견한 아들 자크의 친구인 마르셀 프루스트를 트루빌로 초대”했던 것이다.[5]
프루스트는 친구 자크 베니에르(Jacques Baignières)의 초대를 받아 금융가 아르튀르 베니에르(Arthur Baignières)와 그의 아내 샤를로트(Charlotte)가 트루빌 고지대에 위치한 레 프레몽(Les Frémonts)에 있는 저택에 여러 번 초대받아 갔다. 이 기막힌 전망을 즐길 수 있는 곳에 자리한 저택은 나중에 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많은 장면이 등장하는 라 하플리에흐(La Raspelière)에 집을 장만하도록 영감을 주기도 한다.
젊은 프루스트는 점차 트루빌의 풍경과 저택의 우아함에 매료되어 갔을 뿐만 아니라 아르튀르 베니에흐(Arthur Baignières)의 친구이기도 한 화가 폴-에밀 블랑슈(Paul-Emile Blanche)가 연필로 스케치한 뒤 1년 뒤에 유화로 그린 초상화에서 보듯, 청춘의 싱그러움과 함께 예리하고도 섬광을 발하는 사고를 발휘하기 시작한다.
병에 시달리면서 1906년부터 프루스트는 점차 트루빌과 멀어져 갔다. 1911년부터는 오직 파리에 은둔한 채 칩거하면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탈고에만 전념했다.
파리에서 칩거하던 프루스트는 늘 노르망디 해안을 그리워했을 뿐만 아니라 그랜드 호텔에 머물렀던 꺄부르에서 몇 번의 여름을 보내기로 결정했지만, 트루빌은 항상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만 했다. 그는 스트라우스 부인에게도 계속 편지를 보냈으나 1913년 이후에는 건강마저 허락하지 않아 영영 트루빌을 찾진 못했다.
1973년 트루빌 시당국은 마담 스트라우스(Madame Straus)의 집으로 이어지는 거리를 마르셀 프루스트 거리(Avenue Marcel Proust)라 명명했다. 그리고 그가 거닐던 백사장에는 마르셀 프루스트 벤치까지도 설치했다. 이는 프루스트를 기억하는 여행자들을 위한 배려일 것이다. 나는 지금 그 벤치에 앉아 프루스트를 떠올려본다. 손에는 파리 프낙(Frac) 서점에서 구입한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새롭게 펴낸 플레이아드 총서 『프루스트 전집』이 들려 있다.
진정한 탐험은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 곳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여행하는 것이다.
프루스트의 믿음이었다.
[1] 아놀드 하우저(Arnold Hauser),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현대편』, 백낙청, 염무웅 공역, 창작과 비평사, 1993, 서울, 241쪽. 헝가리 태생의 마르크스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예술 비평가인 아르놀트 하우저(Arnold Hauser)는 사회 구조가 문학예술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Sozialgeschichte der Kunst und Literatur) 』에서 기존의 비평적 토대와는 완전히 절연한 유물사관에 입각해서 조이스와 프루스트의 소설을 날카롭게 진단한다. 그 점에서 두 소설가에 대한 그의 평가는 충격적이다. 더 부연하면, 백낙청, 염무웅 이 두 사람의 공동 번역자는 영어 판 원서를 우리말로 번역한 것으로 짐작된다. <창작과 비평사>에서 펴낸 이 책은 번역서임에도 불구하고 1974년 초판 발행 이후 1993년 26쇄를 기록할 정도로 많은 독자들에게 널리 읽힌 책이다.
[2] 위의 책, 240쪽.
[3] 같은 책, 240-241쪽.
[4]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게르망트 공작부인(Duchesse de Guermantes)의 캐릭터 모델 중 한 명인 마담 스트라우스는 처음엔 작곡가 조르쥬 비제(Georges Bizet)와 결혼했고 이후에 부유한 변호사 에밀 스트라우스(Émile Straus)와 결혼했다. 그녀가 파리와 트루빌에서 연 살롱에 마르셀 프루스트가 드나들었다.
[5] 어린 시절부터 마르셀 프루스트의 작품과 세계에 열정을 쏟았던 의학 박사인 프랑수아 자비에 에보(François Xavier Ebaud)는 특히 쥬느비에브 스트라우스(Geneviève Straus)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인용문은 기억을 토대로 한 그의 진술에 따른 것임을 밝혀둔다. 도빌 프란치스코 수녀회 미술관(Les Franciscaines Deauville) 홈페이지 기사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