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미셸 가는 길 239화
[대문 사진] 라 깡브의 독일군 묘지
바이유에서 이지니로 가는 13번 국도 도로변에는 라 깡브(La Cambe)라는 마을이 있다. 이곳에는 특이하게도 노르망디 상륙 작전 당시 사망한 독일군들의 묘지가 있다. 자그마치 21,200명에 달하는 시신이 매장되어 있는 이곳은 독일 묘지 관리 위원회가 돌보고 있기는 하지만, 고향땅이 아닌 타국 프랑스에 이렇게 엄청난 숫자의 병사들이 묻혀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반면에 상륙 작전 당시 사망한 미군은 3분의 2에 해당하는 60퍼센트가량이 가족의 요청으로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나머지 3분의 1만이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등장하는 꼬유빌 쉬흐 메흐(Colleville sur Mer) 미군 묘지에 묻혀 있다.
독일군 묘지의 가장 큰 특징은 묘지에 묻혀 있는 병사들의 나이가 겨우 18세에서 20세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2025년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러시아와의 전쟁에 끼어든 북한 역시 어린 병사들을 총알받이로 내몰아 우크라이나 전선에 투입하면서 수많은 젊은 병사가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이 또 무슨 해괴한 현상이란 말인가?
푸틴이나 히틀러나 다를 바 없다는 것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확인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변죽을 울리는 김정은의 해괴한 전쟁 논리 또한 한몫한다. 시리아의 독재자가 러시아로 도망치고, 오늘날 러시아는 이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세계 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나라가 되었다. 푸틴은 잊어서는 안 된다. 우크라이나는, 우크라이나의 진창은 나폴레옹의 군대도, 히틀러의 군대도 궤멸시킨 진흙밭이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소비에트연방(소련)에서 러시아로 나라명이 바뀐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러시아는 소비에트 연방에서 탈퇴한 나라들의 명운을 쥐었다 폈다 했다. 자원, 겨울에도 얼지 않는 항구, 크림반도의 황금의 땅, 서유럽으로 이어진 가스관 등 전쟁 요인으로 러시아가 꺼내든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전쟁을 피할 수 없는 것은 이들만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불똥이 튀길 판이다. 대륙간 탄도미사일 개발과 실험도 부족하여 나날이 으르렁대다 못해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향해 똥풍선까지 날리고 있는 북한 김정은의 꼬락서니는 이를 충분히 증명하고도 남는다. 거기에 독일 통일 방식 대신 베트남 통일 방식을 채택하고자 설치는 진보 좌파 세력의 난동 역시 도를 넘어서도 한참 넘어섰다.
라 깡브의 독일군 묘지는 비록 적군이지만 전쟁을 통해 어린 나이에 희생당한 병사들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한 공간일 것이다. 이 어마어마한 숫자의 독일군들이 노르망디 상륙 작전 당시 일거에 죽음을 당했다는 것이 아이러니한 일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죽음은 비통하고 비참한 것이다.
히틀러가 미리 항복했다면 그 많은 병사들이 일거에 죽음을 당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당시 상황으로 비춰봤을 때 그건 거의 어불성설이다. 원폭이 투하되기 전에 일본 천황이 항복을 했다면? 그것 역시 상상조차 가당치 않다. 인간은 뽕을 빼야만이 무릎을 꿇는 법이다. 광기에 사로잡힌 이들은, 심지어 조폭들까지도 죽을 만큼 얻어터져야 정신을 차리고 무릎을 꿇는다.
스필버그의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보자. 라이언 일병을 구하기 위해 특별히 편성된 밀러 대위 수색대원들에게 포로가 된 독일군 병사는 밀러 대위가 풀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독일군에 다시 합류하여 밀러 대위를 죽이지 않는가 말이다.
프랑스 사회학자들이 이야기하는 ‘적군의 인권’은 적어도 스필버그의 영화에서는 가당치 않은 일임을 시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전쟁터에서 적은 사살해야만 하고 포로로 잡은 적은 포로수용소에 가둬두어야 한다. 전쟁터에서 어설프게 풀어주어 오히려 아군에게 총을 겨누는 반전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제네바 협정에 따라 포로를 처리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밀러 대위는 왜 독일군 포로를 풀어주었을까?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면, 라이언 일병 구하기(Saving Private Ryan)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1998년에 제작한 미국 전쟁 영화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이 영화는 노르망디 전투 초기의 혼란 속에서 형제들이 모두 전투에서 사망한 군인을 찾는 임무를 수행하는 미군 병사들을 특징으로 한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매우 사실적으로 재구성한 것도 이 영화의 강점 중 하나다.
영화는 극찬을 받았으며 여러 상을 수상했다. 또한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두어 전 세계적으로 4억 8,180만 달러를 벌어들여 1998년 두 번째로 높은 수익을 올린 영화가 되었다. 미국 영화 예술 과학 아카데미(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s)는 스필버그가 제작한 이 영화를 아카데미상 11개 부문에 후보로 올렸고,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의 두 번째 아카데미 감독상을 포함해 5개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1999년 5월에 개봉된 비디오 판은 4,4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2014년, 영화는 ‘문화적, 역사적, 미학적으로 중요한’ 영화로 인정받아 미국 국립 영화 보관소(National Film Registry)에 등재되어 의회 도서관에 보존되었다.
영화를 보면 첫머리에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미국 퇴역 군인이 이제 노인이 되어 프랑스의 꼬유빌 쉬흐 메흐(Colleville sur Mer)에 있는 미군 묘지를 방문한다. 노병은 가족과 손주들을 데리고 묘비 앞에 멈춰 서서 감정에 북받쳐 무릎을 꿇고 전쟁에 대한 기억을 회상하기 시작한다.
1944년 6월 6일 아침, 연합군의 유럽 상륙 작전 중 노르망디 전투 첫날, 미군이 ‘도그 그린(Dog Green)’ 구역에 상륙한 오마하 해변에서 레인저 중대의 지휘 책임자인 존 H. 밀러(John H. Miller) 대위는 부하들을 이끌고 살아서 오마하 해변을 빠져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독일군이 언덕 꼭대기에 있는 참호 속에서 기총 소사를 가함에도 불구하고 미군은 끝까지 싸워 나갔고 격렬한 전투 끝에 독일군의 요새를 돌파하고 적의 방어 진지를 소탕하는 데 성공한다.
동시에 우리는 영화를 통하여 라이언이라는 이름을 가진 형제가 한 가족에 4명이나 되며, 이 가운데 3명이 전투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숀 라이언은 오마하 해변에서, 피터 라이언은 유타 해변에서 사망했다. 다니엘 라이언은 태평양 전쟁 중 뉴기니에서 사망했다.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막내인 제임스 프랜시스 라이언(James Francis Ryan) 일병은 101 미국 공수 사단의 일원으로 적진 한가운데 있는 코탕탱(Cotentin)에 낙하산을 타고 들어간 뒤, 일체 소식이 감감한 상태다. 라이언의 네 아들 중 세 명의 사망을 알리는 편지는 동시에 그들의 어머니에게 전달될 참이다.
이러한 사건을 알게 된 워싱턴 주둔 미 육군 참모총장 조지 C. 마셜 장군은 라이언 일병 구조 수색대를 편성하기로 결정한다.
임무는 밀러 대위에게 맡겨졌다. 7명(호바스 병장, 라이벤 일병, 카파르조, 멜리시와 잭슨, 의무병 웨이드, 통신병 업햄 상병)으로 구성된 분대를 이끄는 밀러의 임무는 라이언을 찾아 그가 아직 살아 있다면 안전하게 미국으로 송환하는 것이었다.
라이언 일병 수색대는 노르망디 보까쥬(bocage)[1]를 통해 라이언을 찾아 나서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연합군의 진격에 저항하려는 독일군과 무작위 전투를 벌인다. 그들은 수색 과정에서, 그리고 임무를 완수하는 동안 두 명의 동료(카파르조와 의무병 웨이드)를 잃은 후, 밀러와 그의 부하들은 씁쓸함과 함께 환멸마저 느끼게 된다. 라이언의 목숨을 구하는 것이 그들의 목숨을 걸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들은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이다.
처음에 뇌빌(Neuville)에서 ‘제임스 라이언’이라는 병사를 찾았지만, 수색대가 찾은 병사는 라이언 일병과 단지 이름만 같은 병사임을 알게 된다. 나중에 라이언을 안다는 지나가는 군인들로부터 정보를 수집한 밀러 대위는 라이언이 라멜(Ramelle) 마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도착한 밀러와 그의 부하들은 라이언의 그룹이 참여한 매복 공격에서 독일 탱크를 파괴한 후 우연히 라이언과 조우한다.
밀러와 그의 부하들과 함께 라멜 마을로 돌아온 제임스 라이언은 밀러 대위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리를 이탈하여 귀국하기를 거부한다. 결국 밀러는 독일군이 곧 도착할 예정이며, 그들이 이 전략적 목표인 마을을 공격하겠다고 위협하는 상황에 처하자 어쩔 수 없이 미군 방어부대와 함께 다리 방어를 돕기 위해 라멜에 머물기로 결정한다.
미군은 2대의 타이거 탱크와 2대의 마르더 탱크를 비롯하여 50여 명의 보병으로 구성된 제2 에스에스(SS) 기갑 사단의 요소로 구성된 독일군에 맞서 라멜 다리를 방어할 준비를 마친다.
거의 탄약이 바닥난 상태에도 불구하고 다리를 방어하기 위한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미군은 독일군에 큰 손실을 입힌다. 특히 2대의 타이거 탱크 중 하나를 작동 불능 상태로 만들어 ‘접착식 폭탄’으로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이 상황에서 마침내 라멜을 수비하던 미군은 적군에게 수적으로 압도당하기에 이른다. 치열한 공방전 중에 잭슨 일병과 멜리시 일병이 전사하고, 호바스 병장마저도 죽음에 이르고 만다. 두려움에 꼼짝 못 하게 된 업햄 상병은 싸움을 피하고자 어디론가 자취를 감춘다.
해결책이 바닥나 초조해진 밀러 대위는 최후의 수단으로 다리를 폭파하려고 시도하지만, 밀러와 그의 부하들이 이전에 생포했다가 풀어준 독일 포로 병사의 총에 맞아 부상을 당한다. 독일군 병사는 밀러 대위가 풀어주자마자 이동 중인 독일 전투 부대에 다시 합류한 상태였다.
다리의 폭발물에서 기폭 장치를 회수하려던 밀러 대위는 두 번째 타이거 전차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힘없이 지켜보고만 있는다. 부상으로 인해 움직일 수 없는 밀러 대위는 필사적으로 탱크를 향해 권총을 발사하지만, 독일군 탱크는 마침내 다리에 도달하고 만다. 그러나 갑자기 탱크가 폭발하면서 밀러는 하늘에서 기총 사격을 가하는 아군 P-51 무스탕 전투기를 발견하는데, 이 전투기가 라멜 마을 부근을 비행하다가 적군의 탱크를 발견하고 이를 파괴한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군의 기갑 부대와 증원군이 도착하여 남은 독일군을 패주 시킨다. 독일군이 퇴각하자 업햄 상병은 은신처에서 나와 밀러를 쏜 독일 병사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지만, 남은 잔당들은 도망치고 만다.
라멜의 미군 중 유일한 생존자인 라이언과 라이벤 병사는 다리 바닥에 쓰러져 죽어가는 밀러 대위와 마주한다. 라이벤이 의사를 찾아 달려가는 동안 라이언은 무릎을 꿇고 죽어가는 밀러를 지켜보면서 그가 자신의 귓가에 대고 뭔가 이야기하는 것에 귀 기울인다. 밀러 대위는 라이언 일병에게 당부하듯이 말한다.
반드시 살아서 어머니 곁으로 돌아가게나.
그리고 멋진 삶을 살게나.
밀러 대위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는 끝내 눈을 감는다.
라이언이 숨진 밀러 대위의 시신을 지켜보는 동안 장면이 바뀌어 세월이 라이언의 얼굴에 더해지기 시작하고 그는 다시 늙은 퇴역 군인이 되어 꼬유빌 쉬흐 메흐 묘지에 있는 밀러 대위의 무덤 앞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런 다음 제임스 라이언은 곁으로 다가온 아내에게 자신이 밀러 대위의 말처럼 멋진 삶을 산 사람이었는지, 또한 ‘좋은 사람’이었는지를 묻는다. 무덤을 바라보면서 그 무덤이 자신의 남편을 살려준 밀러 대위의 무덤임을 확인한 라이언의 아내는 남편이 한 말이 무슨 뜻인지를 이해하고 순순히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라이언은 밀러 대위의 무덤을 향하여 엄숙히 경례를 바친다.
마지막 시퀀스는 영화의 초반부처럼 미국 국기인 성조가 하늘에 휘날리는 장면이다.
[1] 프랑스 전역에 펼쳐진 보까쥬(bocage)는 숲과 농지가 뒤섞인 구릉 지대를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