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미셸 가는 길 242화
[대문 사진] 바흔느빌 꺄흐트레 포구
늦지 않은 시각에 포구에 도착했다. 다행히 여름이라 해가 늦게 지고 달려오는 도중에 하늘도 맑게 개어 저녁식사를 하기에는 아직도 이른 시각이다. 정말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때맞춰 도착했다.
예약해 둔 호텔 <해양 호텔(Hotel La Marine)> 직원도 친절하기만 하다. 호텔은 산뜻한 분위기에다 객실마저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의 더블룸, 널따란 테라스가 나 있어 분위기가 한층 고조된다.
이렇게 넓은 테라스를 가진 시골 호텔을 가본 적이 없다. 마을도 처음이지만, 널따란 테라스가 딸린 바닷가 호텔방도 처음이다. 호텔 건물도 높지 않아서 좋다. 여름철이면 꽤 많은 손님들이 찾아올 텐데 객실이 그리 많지 않은 걸 보니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는 모양이다.
호텔 주인장은 호텔과 레스토랑을 3대째 이어오는 셰프 로랑 세스네(Laurent Cesne).
1962년생이니 나이가 지긋한 편이다. 이곳 바흔느빌 꺄흐트레(Barneville Carteret)에서 태어난 시골뜨기이지만, 프랑스에서는 알아주는 요리사이다. 1986년부터 미슐랭으로부터 별을 받고 있으니 시골에서는 대단한 요리사라 해도 결코 칭찬이 넘치지만은 않겠다.
의학을 전공하던 이가 요리사가 되었다. 호텔을 운영하는 부모로부터 가업을 물려받은 탓일까? 아니면 요리에 남다른 취미가 있어서였을까? 요리사로서의 최고 과정이라 할 수 있는 쏠리유(Saulieu : Côte d' Or)의 베르나르 롸조(Bernard Loiseau)의 문하생이 된 그는 최고의 타이틀을 거머쥐고 노르망디로 금의환향했다.
1986년 <해양 호텔(Hôtel de la Marine)>의 주방을 인수한 로랑 세스네는 점차적으로 요리계에서 명성을 얻어 갔다. ‘요오드(iode)를 사용한 레시피’를 개발하고 홍보하는 것은 물론 이 방면에 관한 요리책을 펴내기도 했다.
그가 만든 음식에 대하여 요리 평론가인 질 푸들로브스키(Gilles Pudlowski)는 “육지와 바다의 최고 요리를 만들기 위해 과학적인 레시피와 진정한 손재주를 가지고 임하는 것은 물론, 여기에 자신의 음악과 움직임을 각인시키고 있다”고 극찬한다.
르 프티 퓌테(Le Petit futé)는 “요리사의 창의성 그리고 현지 풍미와 미식 특산품의 거장”임을 칭송한다.
셰프 로랑 세스네는 르 포엥(Le Point) 잡지에서 ‘노르망디 남부의 요리의 왕’이자 ‘바다의 마에스트로’까지로 묘사된다.
나는 이제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호텔 저녁 식당에서 그가 요리한 저녁을 아내와 함께 들 참이다.
솔직히 이곳 바흔느빌 꺄흐트레에 오기 전까지 셰프 로랑 세스네에 대해 잘 몰랐다. 그러나 저녁 식당 테이블에 앉아 그가 만든 음식을 대하는 순간 놀랍고도 경이로운 느낌에 사로잡혀갔다.
보통 훌륭한 식당은 셰프가 호텔 주인장을 겸한다. 프랑스의 고성 호텔은 대체로 그 호텔 식당의 주인장이 주인인 경우가 많다. 나는 이곳 프랑스를 여행하면서 그런 경우를 여러 번 목격했다. 로랑 세스네 역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호텔과 식당을 경영하면서 직접 요리에까지 뛰어든 진정한 장인 정신의 소유자인 셈이다.
그가 만든 요리를 전식, 본식, 후식 세 단계에 걸쳐 곁에 나란히 앉은 아내와 함께 음미해 본다. 전통요리만 고집하는 건 아니니 퓨전 음식도 입맛에는 찰지다. 아내도 모처럼 감동한 표정이다. 맛있다기보다는 멋진 음식, 그에 가까운 로랑 세스네의 요리를 맛보는 시간은 길어만 간다. 어느새 포도주를 다 마셨다. 해물요리와 잘 어울리는 코트다쥐르의 방돌(Bandol) 산 로제 와인이 얼음을 가득 채운 통 안에서 다 비워진 모양새다.
맛있다기보다는 멋진 음식
근사한 저녁, 근사한 식당, 근사한 식사! 이 셋의 조화는 노르망디 한 작은 포구의 밤을 근사하게 물들여간다. 여행 중에 맛보는 달콤함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게다. 깨끗한 시트가 감싼 호텔 방 분위기도 그렇고 널찍한 테라스에서 마주한 밤공기도 시원하기만 하다.
레스토랑 안을 이리저리 찬찬히 훑어본다. 모두가 다 전형적인 백인 프랑스인들이다. 유색 인종은 우리 부부 두 사람밖에는 없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우리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를 묻지 않는다. 좋은 식당이다. 인종을 묻지 않는 식당이 훌륭한 식당이다. 동양인이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식사를 하든 말든 자신들의 식사와 담소에 열중하는 프랑스인들은 언제 봐도 보기 좋다. 자유 평등 박애의 나라 식당 분위기답다.
식사 후에 아내와 함께 산책을 한다. 어둑어둑 해지기 시작한 밖은 바다 쪽으로부터 상큼한 소금기 어린 바람이 불어온다. 참 먼 길을 에둘러 돌아왔다. 이곳 코탕탱 서쪽 바닷가까지.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날 수만 있다면 빅토르 위고가 망명을 떠난 영국령 건지(Guernesey) 섬으로 향하는 배를 탈 수 있으리라. 하지만, 늦게 일어나면 7시 배를 놓치면, 라 아그(La Hague)를 거쳐 셰르부르(Cherbourg)로 향해야만 한다.
물새들이 떼 지어 난다. 건지 섬이 저 멀리 배로 1시간쯤 가면 나타나리라. 양쪽을 오가는 물새들인가 보다. 사람 사는 곳엔 어디나 새가 허공을 난다.
바다 쪽에서 고깃배 한 척이 들어온다. 마을에 사는 어부일 터이다. 그가 낚은 세상을 볼 수는 없지만, 어부의 저녁 역시 풍요로울 것이 틀림없다. 흡족한 아내의 표정을 흘깃거리는 중에 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소금기 묻은 바람이 아내의 어깨를 가볍게 감싼다.
유월의 밤바람이 차갑게 하강하기 시작한다. 참 온화한 하루였다. 유월의 햇빛 가득한! 이제 평온한 밤이 깃들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