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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서쪽을 향해 가는 길

몽생미셸 가는 길 244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꺄흐트레 곶(Cap Carteret)


아침이 되었다. 건지 섬으로 향하는 배는 오전 7시에 이미 출발한 뒤였다. 어제 하루의 여정이 너무 벅찼는지, 아니면 저녁식사가 너무 달콤했는지, 그도 아니라면 로제 와인의 취기에 혼곤한 잠을 잔 것인지 늦은 아침 눈부신 유월의 햇살이 유리창 안 깊숙이까지 점령한 뒤에야 잠을 깼다. 부스스 눈을 뜬 아침에 커피 한 잔! 테라스에서 달짝지근한 커피를 입에 대며 포구 쪽을 바라본다. 아침이라 누구 한 사람 오가는 이 없는 포구는 조용하기만 하다.


몇 척의 요트들만이 열린 바다 쪽으로 향한다.


가방을 꾸리고 리셉션에 키를 반납하고는 동네 한 바퀴를 산책하다가 우체통을 발견했다. 영국령 건지 섬이 가까워서인지 우체통 색깔도 영국처럼 빨갛다. 프랑스 우체통은 원래 노란색인데.


바흔느빌 꺄흐트레(Barneville Carteret) 빨간 우체통.


포구를 낀 동네가 아담하고 정겹다. 이런 곳에서 한 1년쯤 살아봐도 괜찮을 듯싶다. 맑은 공기에 상쾌한 분위기. 기념품 가게를 이리저리 찾아다닌다. 가게에 들어서는 뭘 살게 있는가 싶어 두리번거린다. 가게에 손님 한 명 없으니 우리 내외만 머쓱하기 짝이 없다.


가게는 포구 마을답게 배에서 입는 옷들로 가득 찼다.


안 사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다. 몇 가지 기념품을 골라 계산을 마친 뒤 드디어 바다를 옆에 끼고 서쪽으로 난 길을 따라 시골길을 달린다.


등 뒤로 남은 풍경


방향은 정해졌다. 라 우그(La Hougue) 지역의 라 아그 곶(Cap de la Hague)을 향해 달린다. 서쪽으로 바다를 끼고 달리는 길은 광활한 목초지를 지나간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 보면 아그 곶에 다다를 것이다.


코탕탱 북서쪽 바닷가 라 아그 곶(Cap La Hague),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곳이다.


멋진 하룻밤을 보낸 바흔느빌 꺄흐트레 포구는 점점 등뒤로 멀어져 가고 바다를 끼고 북서쪽으로 향한 지방도로는 어쩌다가 차 한 대 겨우 마주칠 만큼 한적하기만 하다. 들판에는 노란 가시금작화가 피어있다. 진초록 들판에 노란 가시금작화는 서툰 운전솜씨를 너그러이 달래준다.


바라보는 구릉마다 짙노란 가시금작화가 피어있다.


여행을 마친 뒤 파리로 돌아와서 아내와 티브이를 보던 어느 날, 시청하던 프랑스 텔레비전 3 방송 다큐멘터리를 보던 아내가 귀띔한다. “어? 코탕탱이네?” 아내의 말에 진의를 파악할 겨를도 없이 나는 그만 텔레비전 화면에 코를 박고 말았다. 코탕탱 구석구석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를 아내와 함께 시청하면서 2019년 6월 그 길고도 먼 여름날을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여행은 그런 것이다. 한 번 가본 곳이 그렇게 반가울 줄이야. 나는 티브이 화면 속으로 난 길을 자동차로 달렸다. 조수석에 앉아있는 아내는 지그시 앞유리창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때 우리가 마주한 바다는 거친 파도 하나 없는 잔잔한 바다였다. 고요한 바다였다. 인기척 하나 없는 바닷가에서 마주한 대서양은 한 여름빛을 띤 푸르고 차디찬 바다였다.


라 아그 곶(Cap La Hague)
그레빌르 아그에 자리한 방동 성벽 바위산(Rocher du Castel Vendon à Gréville Hague), © Aymeric Pic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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