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24화
[대문 사진] 마네, 스테판 말라르메, 1876
13장 10
(1873-1874)
마네와 말라르메는 서로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급속도로 가까워지면서 진한 우정을 나누는 사이가 됐다. 시인은 무엇보다 그림에 홀려 화가에게 이끌리게 된 것이지만, 매일 여 보란 듯이 새로운 넥타이로 갈아 매는 것이 전혀 낯설지 않은 마네의 재치라면 재치가 두 사람이 빠른 기간 내에 서로 친밀해지게끔 만든 요인이었다.
말라르메는 무던한 성격을 지닌 남자가 쏟아놓는 항상 유쾌한 반전으로 끝나는 독설에 빨려 들어갔을 뿐만 아니라 한껏 멋을 부린 자태만큼이나 세련된 예술에 현혹되어 마네가 사용하는 용어들마저도 너무나 새로운 어휘들인지라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지경이었다. 더하여 숨이 멎을 것만 같은 마네의 우아함에 이끌린 탓에 그를 질투하는 대신 오히려 마네를 극찬하는 쪽으로 기울어져갔다.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 생활을 다시 시작한 말라르메는 매일 저녁마다 마네의 아틀리에에 들러 쌀쌀한 날씨에 홀로 지내는 적적함을 달래곤 했다. 아마도 추운 겨울날 퐁 드 유럽을 찾은 유일한 방문객이었을 것이다!
말라르메는 훗날 마네에게 무한한 경의를 표했다. 마네는 말라르메에게 정신적으로 크나 큰 영향을 끼친 건 물론이고, 신을 숭배하게까지 만들었다. 마네의 신은 보들레르를 통해 접신하게 된 그들만의 숭배의 대상이었다. 이들이 숭배한 건 다름 아닌 시(la poésie)였다. 시는 그들이 창조한 모든 새로움의 원천이었다. 보들레르는 그럼으로써 마침내 두 사람에 의해 제 자리를 찾게 되었다. 그것도 제일 첫머리에.
이후로 만남이 잦아지면서 놀랍게도 두 사람은 마치 오래전부터 알았던 사람들처럼 지냈다. 어제까지만 해도 두 사람은 서로 모르는 사이였으나 하루 종일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사람들처럼 아틀리에에서 만나면 즐겁고 유익한 대화를 끊임없이 이어나갔다. 더군다나 말라르메는 운 좋게 로마 가에서 교편생활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마네의 아틀리에 하고는 몇 미터 되지 않는 거리였다. 말라르메의 아파트는 모스크바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마네가 이제까지 우애를 나누던 절친한 예술가들 가운데 어느 누구 한 사람 마네의 화폭에 등장한 이는 없었다. 하지만 마네는 이 새로운 우정을 나누게 된 말라르메를 모델로 하여 보들레르를 화폭에 담았듯이 인물화를 그리고자 시도했다. 인물화를 그리기까지에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말라르메의 깊은 이해와 신뢰가 한몫했으나 그들 서로 간에 얽혀있는 또 다른 요인도 작용했다.
마네가 단정한 옷차림에 넥타이를 매길 좋아한 것처럼 그의 사유 또한 지나칠 정도로 허세 부리기를 좋아하는 취향도 없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허세 부리는 것도 하나의 재주이자 수완이라면 수완이듯이, 마네는 매일 말라르메에게 넥타이를 고르라고 한 다음, 말라르메가 고른 넥타이에 이름까지 붙인 뒤에 넥타이를 호명하면서 말라르메가 고른 자신의 넥타이를 그에게 선물하기까지 했다.
그건 사실이었다. 그가 사둔 넥타이들은 다름 아니라 친구들에게 줄 선물이었던 셈이다. 시를 짓듯이, 매번 넥타이에 관한 이야기들을 쏟아놓을 수 있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였다. 그건 마치 마네가 함께 살아갈 수는 없을지라도 젊은 여자들을 만나는 걸 즐기는 것처럼 흥미진진한 일이기도 했다.
말라르메는 언제든 기억 속에서 떠올리려고 마네가 묘사한 표정이나 태도 하나하나를 일일이 기록해 두고자 맘먹었다. 깨어지기 쉬운 아취에 가슴을 에는 듯해 말라르메는 그걸 마음속 깊이 새겨두고만 싶었다.
마네가 그림 그리는 걸 지켜보면서 말라르메는 마네의 세련된 멋쟁이 모습에 감춰져 있는 야수적인 면을 발견하기도 했다. 마네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 때에는 격분하여 화폭을 찢을 듯이 달려들곤 했다. 심지어 마네는 말라르메에게 고백하기를 매번 새로 그린 그림들이 수영할 줄도 모르는 자신을 물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든다고 털어놓았다. 일부러 이를 잊으려고 노력해도 그 같은 느낌은 반복될 뿐이고, 결국 자신은 어느 순간 또다시 그와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고 만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두 사람 다 공통적으로 아주 하찮은 것에 매달리는 특징이 있었다. 두 사람 다 무엇이든지 귀중한 것이라 여긴 탓이었다. 더군다나 말라르메는 가십거리를 다루는 잡지에 미스 사탄이란 가명을 사용하여 여염집 부인네들의 옷차림을 논한 기사를 기고하기도 했다. 말라르메가 그런 유의 것을 좋아한 것만큼은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