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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 베르제흐 공연장 그림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84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마네가 화폭에 담은 홀리 베르제흐(Folies Bergère) 공연장의 오늘날 모습.



17장-8
(1882)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홀리 베르제흐 공연장 바(Un bar aux Folies Bergère)」, 1881-1882.


마네는 속도감과 기술적 진보에 따른 증기기관차에 이끌려 홀딱 빠진 뒤로는 프랑스 철도청을 통하여 기관차에 올라타 좀 더 가까이에서 기관사들을 묘사할 수 있도록 허가를 받아내려고 안간힘을 쓰기까지 했다. 커다란 검은 입을 벌린 화덕 아궁이라든가 화덕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꽃 같이 증기기관차 내에서 불을 지피는 광경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이를 묘사하고 싶었던 탓이다.


마네는 열악한 환경에서 고된 노동을 하는 기관사들의 모습을 담은 그림을 그려보고자 꿈꿨던 것이다. 그러나 계획은 조용히 소문으로만 묻힌 채, 중도에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졸라가 그에 관한 이야기를 글에서 잠시 피력했을 뿐이다.


마네 곁을 한시도 떠난 적이 없는 프랭이 살그머니 지인들에게 소식을 알렸다. 이번에는 마네가 확실하게 위중한 것 같으니 친구들이 우정 어린 태도를 보여줄 때라는 것이다. 돌아가면서 마네에게 모습을 비치는 것이 친구로서의 도리라는 것이었다.


마네는 통증으로 말미암아 하루 종일 아무 하는 일없이 멀건이 앉아있던 「벤치」를 마침내 화폭에 담았다.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벤치(Le Banc)」, 1881.


베르사유 집 정원은 마네의 인생에 있어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그야말로 고역의 고된 장소였다. 또한 그 순간과 그 공간은 매사에 적극적이면서 생기발랄하게 모든 일에 덤벼들던 영혼마저 자유롭던 한 사내가 하루 종일 하는 일 없이 앉아있는 곳이라고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곳이었을 따름이다.


마네는 풀밭에서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황소」를 화폭에 담기도 했다.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황소(Taureau)」, 1881.


황소가 자신을 쳐다보는 것이 마치 일반 대중이 자신을 경멸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에 대해 스스로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여기고 싶은 마네 스스로의 의지에 따른 착각에 빠져든 탓이었다. 마네의 그림은 그처럼 이중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마네는 작업을 할 만큼 건강이 호락호락한 상태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을 그리다 보면 건강이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 매달렸다.


수잔과 모친인 으제니는 더는 어떻게 해볼 방도가 없었다. 마네는 아내는 물론 모친에게조차 도저히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못되게 굴었을 뿐 아니라, 아주 노골적으로 싫은 내색까지 비쳤다.


대체 어떤 진절머리 나는 일이 있었길래 그가 허세를 부렸던 것일까? 마네는 예전과 같이 산책을 나가고 싶었고, 그림을 그리고 싶었으며, 성공하여 이름을 찬란히 드높이고 싶었다. 더군다나 이제는 콩쿠르에서 열외의 대상인 초대작가라는 영예까지 안았으니 한 번 멋지게 대규모 전시회를 개최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홀리 베르제흐 공연장 바텐의
거울에 비친 풍경



마네가 「홀리 베르제흐 바텐」을 제작한 것은 이제까지 미술전람회에 출품하려고 제작한 대형 크기의 걸작들과 궤를 같이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 첫 번째에 해당하는 작품이 20년 전에 제작한 「튈르리 정원에서의 음악회」라면, 두 번째 작품은 10년 전에 제작한 「오페라에서의 가장무도회」였다.


에두아르 마네, 「오페라에서의 가장무도회」, 1873(왼쪽)과 「튈르리 정원에서의 음악회」, 1862(오른쪽).


이로써 마네는 광기의 시대에 딱 어울리는 가장 자유분방하면서도 가장 경박하고도 가장 흥겨운 분위기를 띤 일련의 풍속 시리즈를 모두 완성한 셈이 된다.


작품이 발표될 때마다 세간에 충격을 준 것은 세 작품 다 그림 속 장면들에 은연중 암시되고 있는 ‘성매매’ 때문이다. 그렇긴 하지만 성을 거래하는 장면은 그림 속에 분명하게 묘사되어있지는 않다. 단지 그림 속에 등장하는 남녀를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을 통하여 그와 같은 사실을 읽을 수 있을 따름이다.


마네는 드디어 그림을 통하여 부르주아들을 상당히 불쾌하게 만드는 법을 나름 터득하게 되었다. 그건 바로 그들의 비루함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것이었으며, 그들의 더럽고도 추잡한 성매매를 만천하에 드러내 보이는 일이었다. 그들이 여자들을 마치 물건처럼 어떻게 취급하는 지를 적나라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은? 마네는 여자들을 아주 소중한 인격체로 대했다. 여인들에게 상냥한 태도를 보이면서 그녀들에게 잘해주는 것만이 자신의 취향이라고 생각한 듯이.


인물들을 생생하게 묘사하려면 오랜 시간 동안을 작업에 전념해야만 하는데, 마네로서는 그럴만한 처지가 못되었다. 하는 수없이 홀리 베르제흐의 바텐에 근무하는 가련한 여종업원을 살살 꼬드겨서 아틀리에로 데리고 오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술집의 여종업원은 가련하게도 자신도 그림 속 모델로 포즈를 설 수 있다는 단 하나의 희망만으로 마네의 화실에까지 오고야 말았다.


마네는 여자 목에 검은색 리본목걸이를 걸어줌으로써 「올랭피아」에서 처음 등장시킨 검은색 리본을 다시 한번 환기시켜주고 있다. 그림 맨 앞에 정물화처럼 그려 넣은 과일들 하며, 화병에 꽂혀있는 꽃송이들, 또한 공연장 술집 대리석 바텐에 줄줄이 놓여있는 술병들은 마네의 재능을 한껏 빛내주는 요소들이다.


더군다나 레옹으로 하여금 거울을 들고 등 뒤의 풍경을 비춰 보이도록 한 까닭에 가장자리가 도금으로 장식된 커다란 거울에 비친 홀리 베르제흐 2층 공연장의 모습과 함께 커다란 샹들리에까지 차곡차곡 빼곡하게 그려 넣을 수 있었다.


또한 허공에서 그네를 타는 여자 곡예사를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고 있는 관객들도 묘사했다. 마네는 그림 속 여자 곡예사가 초록색 구두를 신고 있는 모습은 물론 그네 줄 막대기까지 생생하게 묘사했다.


앞으로의 미술전람회 수상메달을 거머쥘 만한 걸작으로 손색없으리 만큼 정치하고도 세밀한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마네는 진정 그림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에 대해 도통한 듯이 보인다.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홀리 베르제흐 공연장 바텐(Un bar aux Folies Bergère)」(부분), 1881-1882.


공연장 발코니의 테이블에 팔꿈치를 하고 앉아있는 흰색 블라우스를 입은 여인은 메리 로랑이고, 그녀 뒤에 베이지색 옷차림을 한 여인은 잔느 드 마흐시다. 파리 화류계의 소문난 여자들을 그려 넣음으로써 그림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다.


“홀리 베르제흐는 매혹적으로 화장을 짙게 한 상냥한 여자들을 돈 주고 살 수 있는 곳일 뿐 아니라 갖은 방법으로 더럽고도 추잡한 매수가 횡행하는 파리에서 유일한 곳이다. 온갖 정체 모를 음료와 여자들이 상품으로 거래되는 곳.”


리셰 거리에 위치한 건물은 항상 문이 약간 열려있어서 온갖 구경거리가 쉬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실내 커다란 홀에 있는 아가씨들이 언뜻언뜻 모습을 비춘다. 이곳은 추악하면서 동시에 고상한 풍경이 함께 공존하는 곳일 뿐 아니라, 번쩍거리는 호사스러움과 저질스럽게 끈적대는 음악 또한 함께 어울리던 곳이다. 이곳에 들어서면 그야말로 음란하고도 음탕한 감정을 품지 않을 수 없던 곳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마네는 음란한 생각을 품은 음탕한 화가였다는 말인가?


누가 봐도 되게 못생긴 얼굴에다 뿌루퉁한 표정마저 짓고 있는 쉬종은 홀리 베르제흐의 여종업원이 틀림없다. 그녀는 혼자서 화가의 아틀리에로 갈까 봐 그녀를 지키고 있는 의심 많은 사내를 동반해서야 겨우 아틀리에로 가서는 포즈를 취할 수 있었다.


그녀가 무슨 짓을 할까 봐 감시하는 기둥서방 같은 사내는 아틀리에에 도착하자마자 아틀리에를 이모저모 살폈다. 하지만 아틀리에는 수상한 구석은 전혀 찾아볼 길 없었고,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풍경만이 펼쳐져 있을 따름이었다. 대체 뭐 하는 장소이길래 이 창고 같은 아틀리에 여기저기에 그토록 잘 차려입은 신사들과 아름다운 여인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일까?


부자들은 악랄하며 변태적이기까지 하다! 사내는 쉬종을 내치지 않았다. 그림 속의 그녀는 좌중 한가운데에서 무슨 생각인가에 골똘히 빠져있다. 세상 한복판에서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자신의 고독을 표상한 것이리라.


처음으로 거울에 비친 엄청난 풍경의 효과에 스스로 놀란 마네는 이를 적당히 비틀어서 표현했다. 쉬종의 등 뒤에 있는 거울 속엔 그녀 앞에 앉아있는 마네의 모습이 당연히 비쳐야 함에도 그렇질 않다. 마네는 원근법을 적당히 변형하여 거울에 비친 풍경을 묘사했을 뿐이다. 다시 이야기하면, 그만의 방법을 통해 관람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풍경을 화폭에 담은 것이다. 이는 마치 바텐에서 일하고 있는 여종업원에게 음료를 주문하기 위해 바텐으로 다가와 거울에 비친 풍경을 엿보는 관람자의 시선과 동일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마네가 홀리 베르제흐(Folie Bergère)의 바(Bar) 여종업원인 쉬종(Suzon)을 그린 인물화. 1881.


거울에는 그처럼 화려함으로 치장한 파리 여성들(Parisiennes)의 온갖 아름다운 자태가 분출하듯 선명하게 떠오르고 있다.


오랫동안 앉아 그림을 그릴 수 없었던 탓에 모델과의 짧은 회합을 수없이 이어간 덕분에 완성한 그림은 아주 고된 작업일 수밖에 없었다. 마네는 이를 너무 힘겨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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