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3화
프롤로그 1
프랑스 파리
사크레 쾨르 대성당
지금 현재
굴착기가 내는 소음은 거의 살인적인 수준이었다. 일개미 떼들이 떼를 지어 이동하듯 수많은 공사장 인부들이 우르르 이리저리 몰려다니다 그것마저 사라지자 적막감이 감돌면서 바실리카 대성당은 새로이 어둠이 지배하기 시작했다.
인부들이 다시 움직였다.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먼지가 바닥을 층층이 두껍게 덮어가면서 조각상들을 씌워놓은 검은 플라스틱 덮개들 위에까지 수북이 내려앉고 있었다. 어느 곳에도 불 켜진 양초들은 보이지 않았다. 전기로 밝힌 조명등조차 어느 한 군데 불을 밝힌 곳이 없었다.
신마저 자신의 집을 버린 듯 고요하고 적막하기만 했다. 여기저기 벽토에서 떨어져 나온 부스러기 덩어리들이 한데 뒤섞여 불경하게도 무더기로 쌓여갔다. 바깥으로부터 흘러 들어온 미세한 한 줄기 햇살이 때가 낀 얇은 막으로 덮여있는 색유리창을 뚫고 실내로 스며들었다.
성수반들은 버려진 오아시스처럼 물이 바싹 마른 바닥만을 드러내고 누에고치 모양으로 얼룩덜룩한 플라스틱 용기로 감싼 성당 오르간의 관들조차 이제 더 이상 천상의 곡조를 쏟아낼 것 같지는 않았다. 석회에서 풍기는 시큼한 곰팡이 냄새가 향 대신 실내를 가득 채워가면서 바실리카 대성당 전체를 성소를 더럽히고 있는 하찮은 석관묘 덩어리로 탈바꿈시켜가고 있었다.
제의실에서 가구 서랍을 하나씩 열어젖히던 루딜 신부는 자신도 모르게 버럭 고함을 내지르고 말았다. 오목한 장식과 쇠줄이 쳐진 가죽으로 장정된 작은 성서 위에 손을 올려놓고 기도하려 했으나 황망하게도 원래부터 제자리를 지키던 성서가 눈에 띄질 않았다. 작은 크기의 미사용 성서는 옛날 자신이 본당 신부로 있던 시에라 레오네 본당 신자들이 선물한 것이었다.
크림 빛 전등갓을 씌운 낡은 램프의 불빛에 비친 얼굴은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정성을 다해 만든 세공품이 불빛 너머로 넘실거리는 듯했다. 신부는 시커먼 때로 얼룩진 가죽 소파에 몸을 파묻고는 실내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망연자실함에 빠진 지도 어언 15분이나 되었다. 아무리 기억을 짜내도 성스러운 책을 어디에 놔뒀는지 생각나질 않았다. 그러자 슬금슬금 짜증마저 일었다.
공사가 시작되었을 때 자신은 공사장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말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게다가 자신의 일들을 앗아간 채, 그저 망연히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참담하게 지켜봐야만 하는 것도 아주 불쾌한 일이었다. 대주교가 친히 내린 명령이었다. 천만다행이었던 것은 성당지기가 성당과 붙어있는 사제관 열쇠를 두 벌씩이나 보관해 두었다는 점이다.
루딜 신부는 자신이 주임 사제로 책임지고 있는 성당임에도 불구하고 맘대로 성당을 드나들지 못한 채, 성당 안에서 인부들이 일을 끝마칠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도둑이라니, 그것도 자신이 관장하고 있는 교회에. 그것 참 대단하군!
사탄의 무리들이 벌인 공사는 확신컨대 2주 후면 모든 일이 끝날 것이 확실한데도 앞으로도 계속될 것만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바실리카 대성당은 폐쇄되어 신자들이나 관광객들은 일제히 발걸음을 돌렸다. 공사장으로 돌변하고 말다니! 순간 사크레 쾨르 성당이 지어진 이후로 단 한차례도 없었던 사건이 발생한 것이란 데 생각이 미쳤다.
사건이 발생한 것은 10개월 전이었다. 순례자들의 행선지를 루르드로 변경하면서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매일 되풀이되는 성무일과의 하나인 기도를 드리기 위해 수녀들만 모여 있던 성당 내부로 한 무리의 정복 차림을 한 경찰들이 들이닥친 것은 이른 새벽 4시 무렵이었다.
경찰들은 교회 안으로 무단 침입한 이들을 소환했다. 그들은 루딜 신부에게 조사에 방해가 되니 성당을 떠나 줄 것을 요청하였다. 바실리카 대성당은 경찰청장의 명으로 폐쇄되었다.
3일이 지난 다음에야 성당으로 돌아온 루딜 신부는 대주교와 문화유산 보존 작업을 담당하는 건축가의 예방마저 받았다. 생각건대 십중팔구 둥근 원형 천장에 갑작스레 균열이 일어나면서 긴 띠를 이루며 틈이 벌어진 탓에 그들이 들이닥친 것 같았다. 작품 때문이었을 거라는 점에는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코앞에 닥친 새로운 달에 시작될 긴급 공사로 말미암아 바실리카는 폐쇄되고 말았다.
몇 달간은 아무 소식이 들려오질 않았다. 그러다 2주 전에 대주교가 바티칸 조사관들과 함께 바실리카 대성당을 폐쇄하러 찾아왔다. 새롭게 제기된 건축물 감정에 따르면 둥근 원형 천장이 지속적으로 균열이 발생할 위험에 처해있다는 것이다.
루딜 신부는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하느님께 순종하기로 한 처지임을 감안하면, 또한 교계에 따른 신분에서 의혹을 스스로 잠재울 도리밖에는 다른 방책이 없었다. 성직자의 입장에서 그는 옆에 붙어있는 베드로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기도하면 그만이었다. 수도회에 소속된 수녀들 또한 그곳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일이 그와 같이 풀려나가기를 바란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진귀한 보물처럼 생각하던 성서가 사라진 것만큼은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루딜 신부는 얼굴 위를 흐르는 식은땀을 손수건으로 훔쳐 가면서 초조함으로 가득 찬 노기를 스스로 가라앉혀갔다.
그때 갑자기 뇌리를 스치는 기억이 전광석화처럼 불똥을 튀겼다. 다시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던 차에 성서가 바로 거기, 금고 옆에 놓여있었다는 기억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주임 사제이자 본당 신부인 그는 제의실을 나섰다. 조용히 문을 닫고는 성당 신자석으로 향했다. 성당 안은 마치 참해가 휩쓸고 간 듯 황폐한 모습 그 자체였다. 그가 어둠에 묻혀가는 성당 안의 공사판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머릿속에 떠올린 것은 유린과 황폐 이 단 두 단어뿐이었다. 그때 구약성서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하느님은 도성을 지옥 속에 빠뜨리고
인간들 위로 뻗은 손을 거둬들였네.
그러자 인간이 지은 건축물들이
모두 무너지고 말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