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11화
제1부 1-6
성지
알 킬할 도성
1232년 만성절 전날
나팔소리가 온 도시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갑자기 모여든 주민들로 성채 안이 난장판이 되었다. 여자들은 두려움에 울부짖으면서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애원했다. 아이들 역시 여자들의 다리에 매달려 두려움에 가득 찬 눈빛을 하고 있었다. 불안에 사로잡힌 건 남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사내들은 성벽 아래 해자를 향해 횃불을 집어던지면서 어둠 속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횃불은 대부분 외호 안으로 떨어지기도 전에 꺼져버리고 말았다. 쿠비르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약탈자들이 도성을 함락시키고자 했다면,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간단히 화살을 날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밤하늘을 뚫고 날아온 화살들은 도성 안을 아비규환의 상태로 만들어 놓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 순간 여자들은 발을 구르면서 울부짖을 것이고 아이들은 순라 길 아래쪽으로 몸을 던질 것이 분명했다. 도성은 함락되기도 전에 파괴되고 부서질 것 역시 뻔한 이치였다.
몸집이 마르면서 키가 큰 사내, 거기에 검고 물결치는 기다란 머리를 늘어뜨린 채, 헐렁하면서 기다란 투니크 차림을 한 남자 한 명이 쭈그리고 앉아있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벌떡 일어섰다.
사내는 군중을 압도하리만큼 큰 체격이었다. 이맘(회교 국가의 지도자) 크하타니는 팔을 뻗어 웅성거리는 군중을 잠재웠다. 그러더니 열렬하고도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모여 있는 군중을 꾸짖었다.
“형제들이여, 전능함은 힘이요 용기다. 우리에게 축복이 있을지어다. 자 성벽 아래 해자로 내려갈 자 어디에 있는가!”
크하타니는 군중을 다루는 솜씨가 서투른 사내였다. 그는 이슬람 형제들에게 설교할 때마다 마치 무엇인가 홀린 사람처럼 예언자의 계율을 트림하듯 끼워 넣었다. 어떠한 질문도 허용치 않으면서 반대 의견 또한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에 대한 소문도 무성하여 어떤 이들은 그가 유대인들이 길거리에서 거두어들인 고아들 중 한 명이었다는 말까지 떠돌았다. 그때부터 그는 증오의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모세의 자손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에게 적대적인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따라서 도성을 관할하고 있는 시 당국은 오래전에 그를 추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의 명성은 날로 높아만 갔고 도성 구석구석까지 스며들었다. 쿠비르는 그의 말을 중단시킨 뒤에
“문은 오로지 하나밖에 없다. 만일 우리가 문을 열어준다면 엄청난 위험이 따를 것이며…….”
이맘은 고개를 으쓱거리며 반대파를 일거에 쓸어버렸다.
“개들은 오로지 두려움에 떨뿐이다. 예언자 마호메트를 진정으로 섬기는 자들은 용감한 자들뿐이로다.”
모욕을 당한 쿠비르는 칼자루를 콱 움켜쥐었다. 소동이 발생하면서 그의 행동을 자제하게 만들었다. 발치에는 젊은이들이 자신의 가슴을 후려치면서 연이어 전사들의 노래들을 목청껏 불러댔다.
“성벽 아래 해자로 내려갈 용감한 자가 열두 명이나 되는구나.” 크하타니는 소리 지르듯 외쳤다.
그러자 수많은 사람들이 성문 쪽으로 달려갔다. 이어 성문을 닫아건 육중한 쇠막대기 걸쇠가 풀리면서 캄캄한 밤을 향해 성문이 활짝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