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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레첼리나 Apr 16. 2024

독일의 자연을 걷다

독일 Rennsteig 하이킹 여행기

독일에는 아주 오래되고 아름다운 하이킹, 둘레길 코스가 많이 있다. 내가 살았던 독일 동쪽 튀링겐(Thüringen) 주에도 Rennsteig이라는 아름다운 하이킹 코스가 있다. 약 170km 길이로 Thüringer Wald(튀링겐 숲)와 Frankenwald(프랑켄 숲) 북쪽을 가로지르는 코스이다. 나는 남편과 이 코스를 두 번에 나눠서 걸었었다. 첫 번째는 중간부터 목표점 끝까지 약 80km를 걸었고, 두 번째는 한국 귀국 전 마지막 여행으로 중간부터 처음 시작점까지 약 80km 걸었다. 이 코스는 비교적 걷는 사람이 적다. 아마 다른 하이킹 코스보다 덜 알려져서 일 것이다. 나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던 경험이 있었고, 그 경험이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에 남편과 Rennsteig길을 걷기로 결심했을 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걷기 시작하자마자, 이 길이 나에게 깊은 위로와 추억을 선물해 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Rennsteig 코스를 걸을 때는 "R"이라는 표시를 보고 걸으면 된다. 하루에 15에서 20km 정도로 주로 울창한 숲 속 길을 걷게 되는데, 길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자주 표지판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이 코스 안에 여러 하이킹 코스가 섞여있고 표지판도 친절한 편은 아니기 때문에 잘 보고 가야 한다. 이런 길을 걷다 보면 길을 안내해 주는 표지판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내가 잘 가고 있는지, 잘못된 길을 가고 있지는 않은지 의심이 들 때가 종종 있다. 분명 표지판을 보고 잘 따라왔어도 말이다. 의심이 최고조에 달할 때쯤이면 표지판이 갑자기 나타난다. 그제야 나는 안심을 하고 다시 걷게 된다. 물론 잘못된 길을 가기도 한다. 그럴 때면 어쩔 수 없지만 왔던 길을 다시 천천히 되돌아가 표지판을 놓치진 않았는지 어느 갈림길에서 잘못 왔는지 생각하며 되짚어가야 한다.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갈 때면 인생이라는 길에서는 항상 옳은 선택만, 잘한 선택만 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독일은 날씨가 참 변덕스럽다. 하루에도 해가 쨍쨍하게 떴다가, 먹구름이 금세 끼고, 비도 부슬부슬 자주 내린다. 4일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음에도 독일의 날씨는 역시나 변덕을 부렸다. 해가 뜨면 화창하고 기분이 좋았다가, 먹구름만 껴도 금세 밤이 된 것처럼 어둡고 무서웠다. 특히 숲 속 길을 걸을 때면 나무들이 다른 얼굴을 한 것처럼 섬뜩하기까지 한다. 살다 보면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들이 있다. 길을 오래 걷다 보면 날씨가 꼭 그렇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냥 나한테 주어져서 내가 감내해야 하는 것들 같은 거다. 그래도 감내할 수 있는 건 나한테 공짜로 주어지는 선물 같은 따사로운 햇살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선물은 너무 아름다워서 나한테 과분하게 까지 느껴진다. 하늘이 공평하다고 느끼는 순간들이다.



오래 걸어야 할 때는 중간중간 쉬어 가야 한다. 물도 마시고 빵 도시락도 먹어야 한다. 쉴 때는 신발을 벗는다. 땀에 젖은 양말을 바람에 말려줘야 물집도 안 나고 발이 조금이나마 쉴 수 있다. 자연 속에서의 휴식은 편안하다. 고개를 들어 하늘도 보고, 나무도 보고, 바람에 부대끼는 나뭇잎 소리, 새소리도 듣는다. 몸은 힘들지만 정신이 맑아지는 진정한 쉼을 느낀다. 이렇게 쉬어야 다시 걸을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너무 힘들어 더는 못 걷겠다 싶다가도 조금 쉬고 나면 그래도 조금은 걸을 힘이 생긴다. 또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있으니 끝까지 걸을 힘이 생긴다.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쉼이 필요하다. 더 잘 살아가기 위해, 가끔은 몸과 정신을 가만히 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 


걷는 구간 사이에 마을들이 있다. 걷기 전에 미리 어디 마을에서 숙박을 할지 생각하고 예약을 한다. 보통 이런 마을에는 하이커들을 위한 호텔, 펜션들이 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에 도착하면 먼저 샤워부터 한다. 상쾌한 상태로 호텔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맥주와 맛있는 저녁식사를 한다. 독일 음식은 맛없기로 영국만큼이나 유명하지만, 오래 살다 보면 독일의 음식이 맛있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때가 바로 지금이다. 하이킹하고 먹는 독일 음식은 정말이지 꿀맛이다. 고기와 감자 그리고 맥주. 이 황홀한 저녁을 만끽하게 위해 힘들게 걸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정말이지 세상 행복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호텔에서는 아침도 제공해 준다. 독일의 아침은 다른 유럽의 나라들과 비교하면 진수성찬이다. 다양한 빵 종류, 치즈, 살라미, 햄, 삶은 계란, 과일, 시리얼, 주스, 커피 등등 독일 사람들은 아침을 푸짐하게 먹는다. 우리는 다시 걸어야 하기 때문에 아침도 푸짐하게 먹고 점심에 먹을 빵 도시락도 싼다. (보통은 호텔에서 제공하는 아침을 포장하면 안 되지만, 하이커들을 위한 호텔에서는 예외적으로 눈감아준다.) 아침에는 몸이 특히나 더 힘들다. 그 전날도 하루종일 걸었기에 근육은 뭉쳐있고, 발에 물집도 나있어서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기도 어려운 상태다. 그래도 우리는 오늘도 걸어야 함을 안다. 그리고 길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걷는다. 



자연은 그 안을 걸을 때에만 가장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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