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국양제(一國兩制), 한 나라에 두 개의 제도라고? 그게 가능해?"
1995년 무렵이었던 것 같다. 전공 수업 시간에 일국양제에 대해 처음 들었다. 국민학교 다닐 때 해마다 반공 포스터를 그렸던 나로서는 한 나라에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두 개의 제도를 운영하겠다는 아이디어에 큰 충격을 받았었다. 국토 면적이나 인구면에서 중국이 압도적이기 때문에 가능한 발상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부러질지언정 굽히지 않는 꼿꼿한 선비의 자세가 이상적이라고 부지불식 간에 배웠던 나로서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대단히 실용적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몇 십 년이 걸리더라도 서서히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뤄내고야 마는 중국 정치가 두렵다는 생각이 더 크지만 말이다.
홍콩은 1997년 7월 중국에 반환되었다. 그해 여름 북경에서 한 달간 머물고 있었는데 북경 전역에 홍콩 반환을 축하하는 빨간 현수막이 나부끼고, TV를 틀면 축하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가 넘실거렸다. 1842년 아편전쟁의 패배로 영국에 조차 되었던 홍콩이 150여 년 만에 반환되는 역사적인 현장에 내가 있었던 것이다.
홍콩의 분위기는 이와는 달랐다.과거 공산당을 피하여 홍콩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다수 있었는데, 이들을 포함한 각계각층에서 자유 침해, 경제적 침해에 대한 우려가 컸다. 많은 홍콩인들이 영국, 캐나다 싱가폴 등지로 이민을 떠났다. 홍콩인들의 요구와 영국의 이익을 위해 1982년부터 시작된 홍콩반환 협상에서 영국은 조차를 연장하고자 했다. 그러나 중국은 '일국양제' '대륙의 사회주의를 홍콩에 강요하지 않겠다'라며 영국의 조차 연장을 거부했고 마침내 홍콩은 특별행정구로서 중국의 일부가 되었다.
홍콩 특별 행정구 기본법에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홍콩 특별 행정구는 사회주의 제도와 정책을 시행하지 아니하며, 원래의 자본주의 제도와 생활 방식을 유지하고 50년 동안 변동하지 아니한다." 즉 반환 당시의 정치, 경제 시스템을 50년 동안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이다.
50년 동안! 사회주의는 영원히 적용하지 않겠다고 하기는 했지만, 50년이 되는 2047년 이후 중국의 태도는 어떻게 변화할까? 하지만 2047년까지 기다릴 것도 없이 중국은 당초 약속과는 달리 교묘하게 자신의 영향력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서서히 움직였다. 홍콩 시민들은 정치적으로 자유를 빼앗기고 있다고 느꼈고 경제적으로도 힘들어졌다.
2009년 '반분열국가법 홍콩 조항'을 신설해 시위 등 국가에 반하는 행동을 금지 하였으며, '홍콩 국가 보안법'(우리나라에서 폐지 여론이 높은)을 발표하고 학교에서 교육하였으니 영국식 자유 하에서 살아온 홍콩 시민들로서는 견디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중국대륙에서 대거 이주한 중국인들로 인해 안 그래도 비싼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아 정작 홍콩인들은 교외로 밀려나게 되었다. 일자리도 중국인들과 경쟁해야 했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 경제적 위기에 대한 불만 등이 합쳐서 2014년에 일명 노란 우산 혁명으로 불리는 홍콩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일국양제'를 처음 들었을 때 발상의 전환에 놀랐었지만, 이후 홍콩의 사례를 지켜보면서 눈앞의 먹이를 사냥하기 위한 사자, 그것도 계획에 따라 수십 년간 서서히 움직이며 기회를 노리다 마침내 사냥에 성공하고야 마는 사자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중국의 치밀함과 끈기에 감탄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낀다.
이 사자가 지금까지 대만을 노려보며 사냥에 성공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1949년 12월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가 공산당과의 내전에서 패하여 대만으로 옮겨 왔다. 이후 한국에서 6.25 전쟁이 발발했고, 미국이 한국에 파병하면서 대만에 공산세력 확산을 막았을 뿐 아니라 중국 역시 한국 전쟁에 참전하면서 대만 수복의 기회를 놓쳤다.
이후 지금까지 휴전이나 정전에 관한 언급을 양쪽 모두 하고 있지 않다. 중국은 대만은 나라가 아니라 중국의 '일국양제'에 적용되는 하나의 성(省), 즉 대만성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미 대만성이기 때문에 정전이나 휴전 협상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의 중국'임을 강조함과 동시에 대만을 나라로 보는 개인의 행위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해 왔다. 트와이스의 대만인 멤버인 쯔위가 방송에서 대만국기를 노출했다가 중국의 항의로 크게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홍콩, 대만, 중국계 캐나다인의 발언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지금은 어느 누구도 '나는 홍콩인입니다." "나는 대만사람입니다."라는 발언을 하지 않는다.
최근 '5년 내 대만 통일설'이 파다하다. 지금까지 힘을 키우며 기다려 온 중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중국 전문가들을 발언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나는 대만이 중국의 일부가 아닌 지금의 대만이었으면 좋겠다.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동성결혼을 법제화 시킨 개방적인 대만, 학교에서 이주민 부모의 언어를 가르치는 다양함을 인정하는 대만의 매력을 지켰으면 좋겠다.
홍콩에 세 번 방문했었다. 하지만 2015년 딸아이와의 홍콩 여행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홍콩에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나의 중국어를 듣고 대륙에서 온 관광객으로 판단한 홍콩 사람들은 나에게 몹시 불친절하게 대했다. 중국인들에 대한 반감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오해에서 비롯한 불친절이긴 했지만 여행 둘째 날부터 중국어는 한 마디도 하지 않을 정도로 몹시 불쾌했다. 홍콩 여행의 즐거움이 있어야 할 자리에 중국에서 온 택시 기사의 불친절함과 홍콩으로 몰려든 중국 관광객으로 인한 피로가 쌓였다.
"대만이 마침내 중국과 통일이 되면 홍콩의 전철을 밟겠구나"라는데 생각이 미치면 마음이 아프다. 나의 동해대학교 어학당 라이(賴) 선생님과 가족, 치엔(錢) 선생님과 가족, 당골 조식 식당의 사장님, 친구 쯔치, 이제는 대만에 정착한 인도네시아 친구와 가족이 중국이 아닌 자유로운 대만에서 지금까지 그랬던 것 처럼 앞으로도 쭉 잘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