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에 있는 A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 대만으로 수학여행 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검색해 보니 2학년이 228명이다. 절반의 학생만 가도 110명이 넘는 대규모 인원이다. 남편 회사에서는 우수 조합원 20명에게 대만 여행을 제공한다고 한다. 남편이 이 여행에 수행 직원으로 동행하게 되었다며 일정표를 보여준다. 학교 수학여행으로, 회사 포상 여행으로 대만이 선정되기 시작했다.
"대만이 제대로 뜨기 시작했구나!"
장가계가 뇌리를 스쳤다. 한때 장가계가 한국인 중년층의 여행지로 각광받은 적이 있었다. 부녀회, 동창회, 산악회 등 각종 모임에서 너도나도 장가계로 여행을 떠났었다. 나의 엄마와 아빠도, 옆집 할머니도, 친구 엄마도 다 장가계를 다녀왔다. 지방 소도시에 있는 고등학교 수학여행지로, 작은 조합은행의 포상 여행지로 대만이 선정되기 시작되었으니 앞으로 장가계처럼 국민여행지가 될 수도 있겠다 싶다.
우수조합원 포상 여행 일정표
"대만이 어디에 있어?" "대만, 그 작은 데가 볼 게 뭐 있다고..."
예전에는 외로울 정도로 대만 여행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없었다. 대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방문한 곳, 먹은 음식, 난처했던 일, 극복한 경험을 무용담처럼 늘어놓고 싶은데 들어줄 사람이 없었다. 외국 음식의 낯선 향에 민감한 남편은 대만 여행에 관심이 없었다. 대만이 어디에 있느냐, 볼 게 뭐 있다고 대만을 자꾸 가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대만이 젊은 층 중심의 자유여행지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당연하다. 가깝고, 친절하고, 안전하고, 맛있는 음식 많고, 물가 비싸지 않으니 짧은 여행일정으로 어린 자녀와, 친구와, 가족과 함께 여행하기 딱이다. 나도 딸아이와 대만에 여행 가면 돈 걱정하지 않고 넉넉하게 시켜 놓고 먹는다. 야시장에서 국수, 만두, 탕후루, 고구마 볼, 오징어 튀김 등등 이것저것 다 먹어 배가 불러도 주머니 사정은 여전히 넉넉하다. 늦은 시간에도 불안하지 않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대만에 대한 인기가 더 높아졌다. 팬데믹 기간에 드라마 상견니(想见你 네가 그리워)가 크게 인기를 끌어 초등학생도 다 알 정도가 되었고, 대만 한류 1세대 가수인 구준엽이 대만 사위가 되면서 대만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도 줄어들었다. 우리나라 주변국들과의 관계도 한몫했다. 중국과는 관계가 더욱 나빠져 비자받기도 어려워졌고, 일본은 개인 여행으로는 많이 가지만 방사능 오염수 방류 등의 문제로 학교나 회사에서 공식적인 여행지로 선정하기에는 부담이 있다. 대만에 대한 호감도 상승, 주변국들과의 관계 악화라는 상황이 맞물려 대만 여행 수요가 폭발했고 마침내 대만을 방문하는 여행객 1위 국가로 등극했다.
나 역시 2023년 2월 코로나 셧다운 기간이 끝나자마자 딸아이와 대만을 방문했다. 타이베이 어느 곳에서나 다양한 연령층의 한국인이 대만을 찾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타오위엔 공항의 공항철도에서는 한껏 여행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뜬 친구사이로 보이는 20대 여성 두 명을, 그리고 부모님을 모시고 온 듯 열심히 설명하는 20대 자매+부모님인 가족을 만났다. 용캉지에 망고빙수 가게에서는 중학생쯤 된 아들 둘과 부부로 구성된 가족을, 시엔차오똥 가게에서는 주도적으로 주문하던 씩씩한 남자 고등학생과 이모로 구성된 여행객을, 101 빌딩에서는 단체 여행객을, 발마사지 가게에서는 혼자 여행 온 남자 여행객을 만났다.
이제는 외롭지 않다. 대만 여행을 앞둔 지인들의 호기심 어린 질문도, 대만 여행기를 방문하는 독자도 많아졌다. 딸아이와는 수많은 대만 여행 추억이 쌓였고, 우리 모녀의 영향을 받아 남편도 며칠 전에는 두리안이 맛있어졌다는 놀라운 발언을 할 정도로 많이 변했다.
그런데 묘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나만 알고 있던 맛집이 유명해졌을 때의 기분이랄까. 나만의 동네 고수의 맛집, 이 맛집에서 사장님과 한두 마디 나누며 혼자 여유롭고도 만족스러운 식사를 즐기곤 했는데, 어느 날 방송에 소개되더니 줄 서는 집이 되어 버려 더 이상 나만의 식당이 아닌 모두의 식당이 되었을 때의 기분을 느끼기 시작했다. 뭐라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변덕스럽고 모순적인 감정이다.
그래도 대만이 사랑받는 지금이 좋다. 오래전에는 대만에 가면 한국에 관심이 없어 서러웠고, 한국에 오면 대만을 몰라 외로웠다. 지금은 대만에서는 안성탕면 덕분에 내가 사는 소도시 '안성'을 알 정도로 한국이 많이 알려져 좋고, 한국에서는 나만 알던 대만으로 수학여행을 가는 학교까지 생길 정도가 되어 비록 대만은 나를 모르지만 마치 '성덕'이 된 느낌이 들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