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그 허무함에 대하여
처음엔 알지 못했지
정신없이 끓기만 했으니까
수증기를 따라 흩어지고
그렇게 영영 사라질 줄 몰랐지
바다 깊숙이 쓰레기를 가라앉히듯
묻어버리면 영영 나조차 잊을 줄 알았지
비도 오지 않는 긴긴날이
모든 걸 말려버리면 바닥이 보일 텐데
그때는 몰랐지
내가 만든 바다가 그렇게 얕을 줄
묻어야 할 쓰레기가 그렇게 많을 줄
다시 쓸 수도 없이 망가졌더라
그래도 버리지 못하고
그럭저럭 써야 하더라
비도 오지 않는 긴긴날이
모든 걸 말려버리면 단단하던 땅도 갈라질 텐데
그때는 몰랐지
갈라진 틈 사이로 하나둘씩 사라질 줄
틈이 좁아 줍지도 못할 줄
처음엔 알지 못했지
정신없이 끓기만 했으니까
결국, 다 타버릴 줄
재만 남아 나뒹굴다
바람에 다 날려버려 사라질 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