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첫 관계를 맺은 지 6개월 정도 지난 어느 날 오전 내내 차 과장이 자리에 없었다. 차 과장은 업무 이외의 일로 자리를 비우지 않기 때문에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 나타난 차 과장은 집에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다며 파트장과 나에게 꾸뻑 인사를 하고는 집에 들어가 버렸다. 불안한 느낌이 엄습해 왔다.
퇴근할 시간이 다 되어 감사팀 이 차장으로부터 텔레파시가 왔다.
“최 상무님 괜찮으시면 감사팀에 잠깐 와주실래요?”
감사팀 이 차장은 나의 2년 후배로서 개인적으로도 잘 아는 사이인데 나보고 오라가라 할 직급이 아니었다. 차 과장이 나와의 관계에 대해 뭔가 말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 대화도 없었고 육체적 접촉도 없었다. 텔레파시는 내가 끝까지 잡아떼면 증거가 되지 못한다. 우리가 텔레파시로 관계하는 동안에는 특별히 강력한 배리어를 쳐 놓았기 때문에 엿본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나는 급박한 순간이었으나 정신을 더욱 바짝 차렸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인정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감사팀으로 걸어갔다. 감사팀 이 차장이 나를 맞아주며 나를 조사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상무님 요즘 회사에서 업무시간 중에 부적절한 일을 너무 많이 하셨더라고요.”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다소 화난 목소리로 목청을 높였다.
“상무님이 부하 여직원과 육 개월 동안 하루도 안 빼놓고 텔레파시 섹스를 나누었다는 증거를 입수했습니다.”
등 뒤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나는 내 마음을 읽히지 않기 위해 배리어를 치면서 의연하게 대응했다.
“이봐 누가 그런 모함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회사 임원이기 이전에 독실한 크리스천이야. 그런 행동은 절대 하지 않아.”
“차 과장도 다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3개월 감급의 징계를 맞고 현장관리로 전배될 것 같습니다. 상무님도 인정하세요. 상무님은 징계를 맞으시더라도 워낙 능력이 있으시니까 전무 승진은 어렵겠지만 그래도 당분간 근무하실 수 있습니다.”
“차 과장이 얘기했나? 차 과장이 나를 모함한다는 생각은 안 해 봤어?”
“차 과장이 얘기한 게 아닙니다. 그랬다면 차 과장이 징계를 받을 이유가 없죠. 차 과장은 증거를 보여주기도 전에 스스로 인정했습니다.”
“무슨 증거를 가지고 있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하지도 않은 일을 인정할 생각은 조금도 없어.”
감사팀 이 차장은 도저히 말이 안 통한다는 듯이 머리를 흔들면서 입을 열었다.
“증거는 지금 즉시라도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증거를 보시게 되면 상무님은 무조건 즉시 회사를 나가셔야 합니다. 이 증거의 존재를 알게 된 후 일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저도 상무님께 개인적으로 이러고 싶지 않습니다.”
도대체 뭘 가지고 그러는 건지 궁금해졌다. 회사를 나가더라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뭘 가지고 그러는 건지 보기나 하자. 근데 만약 별 증거도 안 되는 걸로 나를 협박하는 거라면 나도 가만있지 않을 거야. 나를 적으로 만들면 감사팀도 무사하지 못할걸?”
이 차장은 옆에 놓여 있는 박스에서 노트북처럼 생긴 조그만 단말기를 하나 꺼냈다. 전원을 켜면서 말을 이어 갔다.
“이 장비의 존재는 극비 사항입니다만 상무님이 하도 인정을 안 하셔서 보여드립니다. 이 장비는 텔레파시 레코더 (Telepathy Recorder)입니다. 어떠한 배리어를 한 텔레파시라고 해도 목표만 지정해 놓으면 저장할 수 있는 장치입니다. 텔레파시 종류에 따라 음성파일이나 텍스트로도 저장되고 사진이나 동영상으로도 저장됩니다. 상무님과 차 과장의 관계는 동영상으로 저장되어 있습니다. 무려 150시간에 달합니다.”
이 차장은 영상을 틀었다. 텔레파시 레코더는 나도 그때 처음 본 것이었다.
나와 차 과장이 나오는 동영상이 이어졌다. 물론 일반 동영상과는 달리 몽환적이고 그로테스크한 화면이었지만 나와 차 과장의 얼굴은 정확히 인식할 수 있었고 부적절한 관계를 하고 있다는 것도 명확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래 맞아. 매일 텔레파시 섹스를 했어. 인정할게. 그래서 어쩔 거야. 이제 나를 회사에서 내쫓을 셈이야?”
“물론 상무님 억울하신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정신적이라고 해도 너무 수위가 높았고 장기간 지속되었습니다. 이제는 퇴사하시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네요. 혹시라도 이 장비의 존재에 대해 누설하시거나 그 외 다른 해사행위를 하신다면 이 영상을 형수님께 보여드릴 수도 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나는 생각으로만 부적절한 관계를 갖은 거야. 어떤 육체적 관계도 없었다고! 그럼 우리 회사에 야한 생각하는 사람은 모두 징계받아야겠네?”
“음욕을 품는 것만으로도 간음을 한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때 나는 익숙한 성경구절 하나가 떠 올랐다.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태복음 5:27 ~ 28)’
독실한 크리스천인 내 앞에서 성경을 논하다니 정말 굴욕적이었다.
“아주 대단한 예수 제자 나셨네! 아주 대단한 예수 제자 나셨어! 내가 이런 더러운 회사 그만두고 만다!”
나는 사원증을 책상에 던져 버리고 조사실 밖으로 나왔다. 억울함과 창피함이 섞여 눈물이 났다.
‘그러는 니들은 얼마나 깨끗해!’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