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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휴 Apr 27. 2023

6학년이 된 느린아이

(feat. 13살)

아이가 6학년이 되었다. 학원도 안 다니고 여전히 가정학습 중인데 이제 내년이면 중학생이니 나역시 마음이 급해졌다. 그런데 내 마음과는 달리 우리아이는 6학년이 되어도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딱히 없어 보였고 여전히 게임과 유튜브에 빠져 시간을 보냈다. 나는 아이에게 한 자라도 더 공부를 시키고 싶어했지만 이제 체격도 크고 머리도 커진 녀석은 소위 말하는 싸가지 없는 단어의 나열로 내 성미를 돋울뿐 엄마의 눈을 속이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기에 급급했다. (공부를 시키려고 하면 갑자기 운동을 하겠다며 집밖으로 나가곤 했음) 아이는 발달이 늦은 아이답게 사춘기도 또래보다 늦었는데 (발달이 늦긴하지만 할 건 다함. 일단 가장 먼저 5학년을 기점으로 머리에서 특유의 냄새가 나기 시작하고 얼굴에 여드름도 생기고 골격이 약간 달라지며 체형에도 눈에 띄는 변화가 생긴다) 

6학년 1학기때 나는 정말 많이 아이와 싸웠다. 여름방학을 지나며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남편때문이었는데 남편은 집에 들어와서 (나와 아이가 싸운 후의)냉랭한 공기를 못 견뎌했다. 아이가 공부를 안해도 좋으니 집안 분위기를 좋게 해달라는 남편의 부탁에 나는 결정을 내려야했다. 학원을 안 가는 아이의 특성상 나는 많은 과목을 학습지로 커버하고 있었는데 그러다보니 매일매일 학습지 숙제를 쳐내느라 (하는게 아니라 해내는 수준이긴 했음) 일주일은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고 학습지에 30만원정도를 투자하는 금액은 사실 적지 않기는 했다. 당장 학습지를 끊으라는 남편의 이야기에 솔직히 내 마음은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가정의 평화가 우선이었기에 당시 10여개에 가까운 학습지 수를 정말 꼭 필요한 2가지로 줄이고 (그 와중에 한달간은 학습지 없이 보내기도 했음) 서점에서 필요한 문제집을 사서 보충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나는 아이 공부에서 손을 떼자 갑자기 남아도는 시간을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다. 그래서 이것저것 뒤적이다가 네이버에서 한 공고(?)를 보게되었다. 무슨 영어회화 모임이었는데 끌리듯 나는 그 모임에 가보기로 했다. 


50-60대 아줌마들이 영어회화를 한다길래 나는 자신있게 신청을 했다. 내가 영어회화를 네이티브만큼 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또래중에서는 괜찮게 하는 편이었기에 (또 마음 한켠에 아줌마들이 영어회화를 하면 얼마나 잘하겠어~ 하는 마음역시 없진 않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참석한 모임에서 나는 실로 충격을 받고 말았다. 대부분의 멤버들이 영어권 국가에서 산 경험이 있었고, 더듬거리지 않고 하고싶은 말을 유창하게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결국 초급멤버로 가기로 결정을 했는데 그 까페모임의 전체리더격인 언니로부터 초급모임의 대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모인 사람들이 내가 애초부터 아는 사람들도 아니었고 나 역시 딱히 뛰어난 실력도 아닌데 (뛰어났으면 중급으로 갔겠지!) 어떻게 모임을 진행하라는 것인지 겁이 났지만 다른 분이 2번정도는 모임진행을 도와주실테니 그 이후 맡아서 하라고 했다. 회비를 걷지않고 유료모임도 아니라서 처음엔 신천지나 혹 이상한 모임이 아닐까를 의심한 적도 있었지만 어쨌든 6개월이 넘은 지금도 모임을 잘 하고 있긴하다. 영어회화 모임을 시작하면서 나한테는 몇 가지의 큰 변화가 있었는데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아들과 사이가 무척 좋아졌다는 점이다. 연령대가 나보다 높은 분들이 많다보니 자녀들이 장성한 경우가 많았고 그분들은 내게 피와 살이 되는 조언을 해주셨다. 아이교육때문에 골머리를 앓고있던 내가 시야가 넓어지도록 해주셨고 무엇보다 아이만 바라보다가 내 공부에 집중을 하게되니 아이에게 잔소리하는 일도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또 영어스피킹에 치중하는 모임이다보니 교재 본문을 외워오는 것이 숙제였는데 (중고등학교때도 영어본문을 외워본 적이 없는 내게는 너무나 도전적인 과제였다) 일주일에 1번씩 영어본문을 외우는 일은 자연스럽게 아들에게도 스며들었고, 나의 영어공부는 우리 가족 모두에게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가장 고무적인 사실은 스피킹 연습을 했는데 리스닝 파트가 엄청나게 늘었다는 사실이다. 일주일에 1번 한다고 뭐가 얼마나 늘겠어~ 싶지만 꾸준함은 역시 강력한 힘이 있었다. 


나와 감정싸움을 하지 않게된 아이는 즐겁게 학교를 다녔고 6학년부터는 늦게까지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많아 벌써 수업시간에 집중을 잘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생겨났다. 담임선생님과의 면담시간에서 우리 아이가 없으면 수업진행이 힘들다는 이야기에 나는 의아해했지만 곧 선생님께서 우리 아이는 활력이 넘치고 (학원을 다니지 않아 빨리 잘 수 있었음. 아무리 늦어도 10시반에는 취침함) 질문에 대답도 잘해서 (6학년이 되면 담임선생님 말씀에 아이들이 잘 반응을 안해요!) 다행이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나는 그 이후 아이에게 수업시간에 집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가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학원에 치이지 않아 자신이 나름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한 아이의 협조로 (똑같은 상황이었는데 1학기때는 불안해 했다면 2학기때는 행복해 했다는 것이 차이점) 2학기에는 우리가족 모두 비교적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랬던 나도 6학년 겨울방학을 앞두고 다시금 진지한 고민에 빠질 수 밖에 없었는데 하루가 다르게 핸드폰에 울리는 학원광고(모집)문자들을 보다보니 예비중1로써 어떻게 해야할 지 고민하는 시간들이 있었다. 

6월초쯤에 내가 아이를 진학시키고 싶었던 이우학교에서 학생모집기간이 있어 우리는 서류준비에 한참 시간을 쏟았었다. 하지만 아이의 의지가 아니라 우리 부부의 의지가 더 강하다보니 아이는 서류전형에서 떨어지고 말았고, 결국 녀석의 중학교 진학은 집근처에 있는 중학교로 결정이 되었다. 2학기에 나는 아이가 진학할 중학교의 교과서를 구해 읽어보기 시작했는데 확실히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교과 시스템이 완전히 달랐고, 수학과 영어는 교과서만으로는 공부가 불가능해 참고서도 구비했다. 참고서로 열심히 공부하다가 겨울방학을 앞두고 나는 아이와 둘이 예습을 하기로 결정했다. 수포자인 내가 과연 중학교 수학을 가르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없는것은 아니었지만 어차피 지나야 할 과정이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내가 가르칠 수 없는 부분만큼 아이 역시 힘을 냈다. 나는 솔직히 학창시절 수학을 아주 잘하진 못했다는 것을 고백했고 아이도 엄마를 의존했던 것에서 벗어나 더 열심히 공부해서 내가 모르는 부분까지 가르쳐 주기도 했다. (나는 연산에 강한만큼 도형파트가 어려운데 우리 아이는 신기할 정도로 도형에 대한 이해가 빨랐다) 또한 아무리 영단어를 외워야 한다고 이야기해도 귓등으로도 안 듣던 아이가 실제 교과서에서 모르는 영단어가 많이 나오자 아무래도 단어를 좀 알아야겠다며 단어쓰기를 시작한 것도 고무적인 부분이었다. 나 역시 선행에 대한 욕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의 건강과 행복이며 엄마랑 사이가 안 좋은 아이가 공부를 잘하는 경우는 없다는 선배엄마들의 조언에 마음을 다잡았고 그 걸과 아이는 멋진 모습으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돌이켜보면 사회성이 떨어지는 모습에 이 녀석이 과연 친구는 잘 사귈까 고민했던 시절도 있었고, 남들보다 한글을 늦게 떼서 과연 초등학교에 잘 적응할 수나 있을까 걱정하던 시절도 있었고, 수학을 유달리 이해하지 못해 초1때부터 수포자가 되는 건 아닌지 고심하게 만든 때도 있었지만 결국 아이는 무던하게 잘 초등학교 생활을 했고 멋지게 자라주었다. 여드름에 고민하는 아이를 위해 내 화장품을 나눠주고, 결국 무슨 폭포수터지듯 여드름이 올라오자 청소년에 걸맞은 여드름용 화장품을 사서 건네준 결과 아이는 중학생이 된 지금도 비교적 깨끗한 피부를 유지하고 있다. 졸업식때 머리를 커트하러 갔다가 드라이로 살짝 컬을 넣어준 자신의 머리에 만족해 난생처음 파마를 해 본 이후, 본인 스스로도 잘 어울린다고 느꼈는지 그 이후 파마머리를 유지하고 있기도 하다. 현재는 솔직히 공부하려고 학교를 가기보다는 예쁜 옷을 입고 (교복이라 특별히 잘 입기도 어려운데 어쨌든 한끝차이라도 멋지게 입으려고 노력 중) 가려는 마음에 주말내내 월요일을 기다리기도 한다. 아이가 즐거운 마음으로 학교를 다니는 것만도 감사하는 내게 나를 오래 알아왔던 친구들은 내 변화(?)를 의아해하기도 한다.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허무하게 죽어가는 (세월호도, 이태원 사건도 그랬고 미국의 총기사고 사건도 그렇다) 아이들을 보면서 하루하루 별일없이 무탈하게 살 수 있음이 얼마나 축복인지를 깨닫는다. 늘 행복한 일상의 연속일때는 갖지 못한 것을 원망하면서 살기가 쉽지만 그럴수록 초심을 잃어서는 안 되겠다. 아이가 어렸을 때 내가 입버릇처럼 했던 말 "너는 클수록 잘 될거야"가 실제로 이루어지는 걸 보면서 나는 요즘 아이가 앞서나가지 않아도 "너는 돈은 잘 벌거야"를 말해준다. 말의 힘은 내 생각보다 훨씬 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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