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비의 투자 방향
사교육의 효과적인 도움을 받으려면 자존심을 내려놓고 주변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으며 소신 있게 학생의 수준에 맞는 수업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주변에서 모두 달려가고 있는데 잠시 멈춰 거꾸로 길을 되짚어가는 일은 불안하고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삶의 순간 속도를 재는 인생을 살고 있지 않습니다. 과정과 결과가 모두 중요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매 순간 충실하게 채운 하루를 모으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고 싶습니다.
앞만 보고 달려간 결과가 실망스러울 땐 달려온 길 전체가 허무해집니다. 하지만 제 속도에 맞춰 꾹꾹 밟고 즐기며 걸어간다면 그 길의 끝에서 실패를 겪더라도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추억할 거리가 있고 다른 길을 이어서 걷는 힘을 얻을 것입니다.
당장의 위상에 집착하지 말고 전체를 관망하며 아이가 오래 즐겁게 걸을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는 건 어떨까요?
제게는 무리한 선행 학습의 거듭된 실패 속에서도 투자 성과가 컸던 사교육 경험이 있습니다. 다른 것들과의 차이점은 잘 가르치기로 유명한 학원이나 강사의 수업이 아니라 수강생인 제게 초점을 맞춘 수업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도움이 된 사교육
제가 투자 이상의 효과를 본 사교육은 바로 '마인드 맵' 교육으로 유일하게 스스로 원해서 직접 접수하고 수강했던 수업입니다.
중학교 3학년 때 마인드 맵을 적용 해 공부한 어떤 외국 아이가 지능도 덩달아 높아졌다는 이야기를 학교 수업 시간에 듣고 처음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학원 위치와 비용을 알아내고 부모님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당시 다니고 있던 다른 학원보다 수강료도 비싸고 거리도 멀었지만 혼자 지하철을 30분 정도 타면서도 주말마다 2,3개월 동안 열심히 다녔던 기억입니다.
교육과정도 좋았고 당장 모든 과목 공부에 실제로 적용했다는 점에서 가장 유용했습니다. 이후 고등학생, 대학생, 수험생 시절의 학습과 그 이후 업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도 마인드맵에서 배운 기본 구조를 활용하며 살았습니다.
이것은 스스로 선택한 수업이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열심히 참여함으로써 가장 큰 수익을 얻은 투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누구보다도 학생이 가장 본인의 수준을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위치에 대해 잘못 판단하고 착각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해도 여전히 부모님이나 선생님보다는 가장 자신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요령을 깨우치면 어느 과목에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정확한 도움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이미 수천 시간의 수업을 들은 경력이 쌓여 있기 때문에 한두 시간만 들어도 자신에게 도움이 될 수업인지 어느 정도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본인의 판단에 자신이 없어 부모님이나 주변 친구, 선생님의 말에 쉽게 흔들린다는 겁니다.
게다가 단순히 친구가 좋아서 같이 학원을 다니고 싶은 경우도 많습니다. 이럴 땐 아무리 내용이 좋은 수업이라도 친구의 달콤한 유혹에 가려 제대로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내 판단에 대한 확신
고3 대입 준비 당시 유명한 논술 특강을 듣게 됐습니다.
첫 수업만 몇 시간 걸렸는데 한 시간은 이론 수업을 듣고 한 시간은 논술을 쓰고 나머지는 그 자리에서 바로 첨삭을 받는 순서였습니다. 대치동에서 가장 잘 나가고 있던 국어 강사는 수업을 못 따라오는 사람은 즉시 환불해 주겠다고 자신 있게 약속하며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그 말에 일단 들어보자고 열심히 수업을 듣고 논술을 작성하는 것까진 좋았는데 첨삭이 문제였습니다.
학생 수가 꽤 되니 아마도 대학교 아르바이트생을 몇 명 고용해 첨삭을 해줬던 것 같습니다. 한참을 줄 서서 기다리다가 첨삭을 받고 수정해 오라기에 다시 앉아 들여다봤습니다. 맞춤법이나 일부 표현, 문장의 주어 서술 호응 정도만 지적할 뿐 가장 중요한 논술 구조와 내용에 대한 의견이 빠져 있었습니다.
수정 후 재첨삭을 받아도 제가 혼자 쓰고 다시 읽어 보며 수정하는 것과 큰 차이 없는 첨삭에 실망했습니다. 수강료가 상당했는데 대부분은 이 첨삭 비용에 해당할 거란 생각에 망설임 없이 환불했습니다.
그리고 대신 그 돈으로 인근에서 지금의 메가스터디 대표가 강의하고 있던 논술 특강을 신청했습니다. 나중의 결과를 놓고 봤을 때 시간과 비용 대비 훨씬 나은 선택이었습니다. 차액은 어머니께 돌려 드렸는데 용돈으로 그냥 쓰라고 주셨는지 가져가셨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의미 없는 지출을 방어했다는 데 의의를 둬 봅니다.
이런 판단을 앞 글의 선행 수업을 받을 때 내렸으면 좋았겠지만 중학생이 혼자 판단하기에는 너무 어렸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때 제 수준을 솔직히 밝히고 부모님도 욕심을 거두셨다면 사교육비 낭비를 막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선행 실패 경험으로 위축되거나 미리 포기하는 일 없이 학교 수업을 자신 있게 듣고 더 나은 성과를 얻었을 것입니다.
학교 공부만으로 부족할 때 수준에 맞는 사교육 수업을 적절히 병행하는 것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과가 뛰어나고 유명한 학원이라고 모든 학생에게 맞는 것은 아닙니다.
학생들도 자존심이 있기에 친구들에게 뒤처지기 싫고 혼자 모른다고 말하기 부끄러워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무리한 욕심을 내거나 자신의 수준을 감출 수 있습니다. 또는 끄덕이는 옆의 친구들을 따라 대충 알아들은 것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부모님은 알아채기 힘들고 눈먼 돈이 사교육비로 지출되기 쉽습니다.
수능 만점자들 50%의 사교육비 수준은 매월 0~50만 원이고, 66.7%가 6개월~1년의 선행학습을 해두었다고 합니다.(출처 : 김도윤 <1등은 당신처럼 공부하지 않았다.>)
그런데 수능 만점 학생들보다도 더 많은 사교육비를 쓰고 선행학습을 하고 있다면, 그러고도 납득할 만한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면 현재 상황을 의심하고 조정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적절한 수업을 찾기 위해 때마다 자녀를 직접 평가하고 수준을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학생에게 필요한 건 주위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내 수준을 인정하며 적절한 도움을 찾는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님 역시 자녀의 수준은 정확히 파악하기는 힘들어도 학생이 용기를 내도록 여유롭고 신뢰 가득한 환경을 조성해 주시는 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사교육 정보를 입수하고 평가하는 관심을 덜어내 자녀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학생이 자신의 수준을 가늠할 때 오류를 줄이도록 인식을 바꿔주고 자신에 대한 평가를 솔직히 말할 수 있는 너그러운 분위기, 친구들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의 속도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저는 학생들의 이런 판단 오류를 줄여주고 본인의 결정에 자신을 갖도록 돕고 싶습니다. 하지만 매년 새로 만나고 헤어지는 교사와 학생의 관계 속에서 지속적인 영향과 변화를 유지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가장 강력하고 지속 가능한 영향력을 갖고 계신 부모님들께 기대고자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어떻게 이를 도울 수 있을지 차례대로 제가 배우고 경험한 것을 나누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