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찰나
'어머 엄마가 계모 같아'
울고 있는 아이를 안고 슈렉과 사진을 찍는 찰나 일본 오사카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내 귀에 선명하게 들린 일 한국어다.
상황은 이렇다.
유모차를 타던 시기였기에(24개월) 아이는 유모차에서 잠이 들었고 이 틈을 타 오빠는 해리포터 기차를 타고 싶어 했다. 오빠를 기다리던 와중에 아이는 잠에서 깼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빠와 슈렉, 피오나 공주가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아이는 슈렉을 보자마자 울기 시작했고, 평소 내가 슈렉을 좋아하는 걸 아는 오빠는 (아니면 본인만 놀이기구를 타고 왔으니 사진이라도 남겨주고 싶은 마음이 컸을지도 모르겠다) 나와 아이를 슈렉 옆으로 밀어 넣고 사진을 찍어주었다. 아이는 슈렉과의 거리가 완벽하게 가까워지자 자지러졌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누군가에게 계모의 모습을 한 엄마였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상황들을 그 순간만을 놓고 판단하며 살고 있을까?
그 즐거움이 가득한 유니버설에서 내가 애정 하는 미니언즈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자는 아이에게 연신 부채질을 하며 해리포터 기차에 몸을 실은 남편을 온화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던 나의 모습을 보았다면 적어도 계모라는 말을 하지는 못했을 거다.
사실 그 말을 허공에 쏘아 올리고 간 사람은 본인이 그 말을 했었는지 자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 사람의 추억 속에서 회자될 만큼 중요하게 기억될 순간은 아니었을 거라고 짐작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날 유니버설에서의 기억에서 빵 부스러기만큼의 아주 작은 지분을 차지했을 수는 있겠다.
'계모' 사건 이후로 나는 모든 순간을 상황만을 두고 판단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물론 쉽지는 않다. 어떤 사건이 내 시선에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깊은 지각을 요하는 순간 피곤해지기 때문이다. 보이는 대로 믿어버리는 것 - 내 생각대로 판단해 버리는 것 - 간편하고 편하다.
그러나 이제는,
길바닥에서 울부짖는 아이를 등지고 서서 하염없이 휴대폰을 보는 엄마를 보고도 쉽게 생각하지 않는다.
울고 있는 아이를 안고 커피 한 잔을 꼭 사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엄마를 보며 찡그리지 않는다.
아이를 가운데 두고 언성을 높이는 부부를 보며 뒤돌아 나직이 비난의 말을 흘려보내지 않는다.
그저,
'나름의 이유가 있겠구나.' 생각한다.
#테리지노가 사는 집 새벽에 마이아사우라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