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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로하스 Polohath Dec 08. 2020

마스터 클래스

클래식을 답답(?)해 하는 건 일반인들 뿐만이 아니다. 클래식 음악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이나 클래식을 하겠다고 전공자의 길로 들어선 학생들이나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일반인들은 클래식이 어렵고 무겁고 진지하고 지루해서 답답하다. 클래식을 하는 사람들은 내 이름을 걸고 앨범 한 장, 독주회 한번 하기 위해 하루에 8시간 이상 피나는 연습을 해도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천재들의 세계 앞에서 좌절하고, 그렇게 노력해도 청중은 여전히 클래식을 멀리 하는 문화가 답답하다.




유튜브 방송 또모는 참으로 기특한 프로그램이다. 아마도 시작은 클래식 음악인으로서의 답답합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일반인들에게 음대생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클래식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 우리만의 우아하고 진지한 문화가 아니라는 것을 피력하고 싶은 소망 같은 것에서 시작하지 않았을까.

그들의 솔직한 소망에 대한 결과는 놀랍다. 구독자가 45만 명을 넘어서 곧 50만 명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그 안에서 시청자들은 순박하고 소탈한 예술가들과 접한다.

 

음대 오빠, 음대 언니라는 선입견에 의례히 포함되는 깐깐하고 콧대 높고 우아하고 고급스러울 것 같은 환상은 없다. 어려운 곡이 안 풀려서 좌절하는 모습과 전형적인 입시곡에 단련된 모습, 교수님께 혼날까 걱정하는 모습, 한껏 진지하게 연주해놓고 뜬금없이 이 곡을 들으면 사이다가 마시고 싶다는 감상평을 내놓는 모습은 그 나이 또래 다른 전공과목의 대학생들과 다를 바 없다.


나는 피아노 한다고 미국까지 와서는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에 전혀 다른 과로 전공을 바꿨다. 그럼에도 부전공은 음악이었기에 (순전히 학점 쉽게 따려고 쓴 꼼수였지만) 기본적으로 들어야 하는 수업이 있었고 실기 시험도 봐야 했다. 벼락치기로 실기 준비하느라 연습실에서 피아노 치다가 졸다가 먹다가 또 피아노 치다가 자다가 했던 기억이 있다. 샤방샤방한 음대 여학생 같은 건 어디에도 없었다. 나 같은 날라리도 저랬으니 전공하는 학생들은 모두 연습에 지쳐 거지 중에서도 상거지 꼴로 다녔다. 클래식이라고 절대 우아하지만은 않은 것이다.




마스터 클래스라는 형태의 수업이 있다. 그중에서도 명망 있는 음악인을 초빙해 공개적으로 레슨을 받는 수업은 직접 악기를 연주하며 배우는 학생과 청중으로 참여해 수업을 보는 사람 모두에게 귀한 시간이다. 대가의 연주를 보고 듣기만 하다가 그가 학생에게 설명하고 시범을 보이는 모습을 통해 그가 연주 이면에 어떤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게 되는 기회인 것이다.

그래서 마스터 클래스를 보는 것은 언제나 재미있고 신선하고 보고 나면 뭔가 내 안에 좋은 기가 들어온 것처럼 든든하다. 반대로 배우는 학생은 기가 다 빠진다. 대가에게 직접 레슨을 받는다는 엄청난 기회를 잡은 것이 감격스러우면서도 수업이 끝나고 나면 말 그대로 너덜너덜해진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본인의 연주가 계속 지적당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스승이 설명하는 것을 바로 흡수해서 그대로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손이 떨리고 그동안 자랑했던 내 실력이 실상은 거품이었다고 까발려질까 봐 두려운 시간이기도 하다.

또모에서 피아니스트 임동민과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의 마스터 클래스 편을 기획했다. 임동민과 한수진만으로도 감동이었지만 희생양(?)이 된 학생들의 결단과 용기가 더욱 감동적이고 아름다웠다.

동생인 임동혁과 나란히 쇼팽 콩쿠르 공동 3위를 차지한 임동민의 수업은 달리 설명이 필요치 않다. 직접 영상을 보라고 추천할 수밖에.
19년 전에 쳤던 에튜드를 막힘 없이 연주하는 실력과 짧은 수업 시간의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하나의 주제를 선정해 전반적인 곡의 느낌을 바꾸어버리는 명철함이 놀라웠다.

영상에 달린 수많은 댓글들이 더욱 재미있다. 상당히 많은 댓글에서 무섭다는 말이 나왔다. 임동민의 존재만으로, 그가 의자를 미는 모습, 그가 말하는 모습만으로도 무섭단다. 그런 것이다. 천재에게서 받는 기란 것은.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사랑스럽다"라고 말하겠다. 연주할 때는 그 누구 못지않은 카리스마를 발휘하지만 평소의 그녀는 따뜻하고 부드럽고 사랑스럽다. 스승으로서의 임동민은 어느 정도 예상이 됐었는데 한수진은 워낙에 소녀 소녀 여자 여자 한 스타일이라 스승으로 섰을 때의 모습이 어떨지 매우 궁금했었다.

역시 영상을 직접 보라고 추천할 수밖에 없겠다. 나의 미천한 글솜씨로는 표현이 어렵다. 조곤조곤 설명할 땐 한수진 특유의 천진난만하던 눈웃음이 바이올린을 잡고 시범을 보이는 순간 갑자기 섬찟할 정도의 광기 어린 눈빛으로 변한다. 그런 것이다. 천재에게서 받는 기란 것은.


클래식이 친근함의 영역으로 한 발짝 더 들어설 수 있도록 또모와 함께 하는 음대생들, 그리고 세계 무대에서 앞다투어 모셔가겠다고 줄을 섰을 텐데도 후배들과 시청자들을 위해 기꺼이 출연해준 임동민과 한수진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클래식은 멀리 있지 았다.

어려울 거라는 선입견만 버리면 그 무엇보다 친근란 쟝르다. 심지어 트랜디하기까지 하다.


해시태그 이전에 샾이 있음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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