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명상했다. 동쪽을 향해 앉아 눈을 감고, 붉게 비치는 햇빛을 느끼면서, 왜 불안은 사라지지 않지? 보이지 않는 마음을 들여다보려 애썼다. 거기에 대체 뭐가 있을까, 뭐가 이렇게 수신되나, 위층에서 엘리제를 위하여를 치는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도 없는 낮이면 띵똥땡똥 두드리던 피아노 소리. 요즘엔 왜 안들리나 궁금했는데 그 피아노는 여전히 여전히 거기 있구나. 이웃은 여전히 거기 있었구나 그런 안도감.
얼마 전, 퍼포먼스를 하면서 빨간 실을 이었다. 나무에서 사람에게 안테나에서 또 나무에게 사람과 나무는 실을 감고 안아주었다. 저절로 눈이 감겼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행위가 뭔지 모르겠지만, 왜 사람들이 저기 서서 나를 보고 있고, 왜 카메라가 나를 찍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정말 거기서 떠돌이 행성을 생각했다. 이건 저쪽에서 온 메시지다. 이제는 아무 것도 수신하지 않는 낡은 안테나에다 시를 써서 걸어두는 동안, 붉은 실을 감아두는 동안, 나는 저 멀리서 움찔움찔 오는 외로움을 받아적느라 정신을 집중해야 했다.
누군가 텔레비전을 보느라 이 안테나를 툭툭 쳤을 거다. 식구들이 옹기종이 밥상에 둘러 앉아 안테나가 수신해주는 노래를 듣고 뉴스를 듣고 공포에 떨며, 또는 흥얼거리면서 한 순간을 살았을 것이다. 그 식구들은 어디로 갔을까. 이 안테나는 빈집 옥상에 남아 그렇게 덩그러니 행성의 목소리를 수신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의 안테나들은 어디에 있을까. 식당에 일하러 간 엄마를 기다리면서 보았던 쓰리랑 부부를 수신해주던 그 안테나는,. 재난인지도 모르고, 태풍이 오면 종일 텔레비전이 나와서 마냥 설레였던 그 여름날, 폭우를 맞으며 견디던 그 안테나는 어디로 갔을까. 한 방에 누워 서로를 찔러대던 가족의 숨소리가 안테나보다 더 정확하게 수신됐던 그 시절, 우리가 갖고 있던 안테나는 어디에 있을까.
사과를 깎아 반쪽을 먹었다. 울퉁불퉁한 사과였는데, 얼마 전에 소제동 트럭에서 구입한 사과. 멍들고 못 생겼는데요? 사과 봉지 앞에서 내가 망설이니까, 이런 게 더 맛있는 거야 햇사과야 햇사과. 하면서 주인내외가 건네주었던 사과.
달고 부드러운 사과를 씹으면서 오늘 창밖의 안개를 보았다. 샤워를 하고, 십분 정도 걸어 도서관에 갈 거다. 거기서 틀어박혀 밀린 일을 할 거다. 한 사람의 목소리를 반복해서 듣는 것, 거기에 툭툭 끼어드는 나의 목소리와 내가 계획한 모든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는 사실을 깊숙하게 인지한다. 이 채록을 풀면서 나는 더, 더, 생기는 의문을 접는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꼬리에 꼬리를 물면, 이야기는 끝이 없을테니,
점심엔 엄마랑 토스트 가게에 가야지, 엄마는 토스트를 좋아하니까, 아마 엄마는 햄치즈 토스트를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을 테니까, 그리고 엄마는 집으로 돌아와 내가 냉장고에 남겨 놓은 사과 반쪽을 먹겠지. 맥심 커피를 마시고, 갈색 커피자국이 바닥에 동그랗게 남아 있는 커피잔을 거실 탁자에 놓아두고, 또 바쁘게 버스를 타고 어딘가로 가겠지. 그리고 밤이 되면, 돌아오겠지, 버스를 타고, 그리고 저녁에 만난 시큰둥한 나를 향해 말하겠지 엄마 친구 딸이 임신했다. 퇴근시간엔 버스에 사람이 많다. 도시에서 도시로 넘어오는데 시내버스를 타고 서서 왔다. 이건 신기한 경험이다. 얼굴에 꿀 좀 바를래? 너희 외삼촌 건강 상태가 더 안 좋아졌다. 니네 아빠는 또 술을 먹는단다. 이모 아들이 여자친구랑 헤어진 거 같다. 그런 나는 관심을 갖지 않는 얘기들을 하면서, 나의 리액션을 기다릴 거다. 응 그래. 그랬어? 가 전부인 나의 리액션을 또 기다릴 거다.
시를 보내야 하고, 채록을 풀어야 하고, 또 이것저것 할 일들이 있다.몸은 게으른데 마음만 바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럴 시간도 없다. 정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어제는 완벽한 타인을 봤는데, 정말 우리 모두는 완벽한 타인이다. 배우들의 감정연기가 영화의 최고 장치였다. 자기 전에도, 자면서도 아침에도, 영화의 장면이 떠올랐다.
이달에는 행사가 있다. 17일에는 김수영 문학기행에 참가하고, 24일에는 제주에 간다.
https://blog.naver.com/untitledbookshop/221390639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