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생각은 다스릴 수 없는 거예요.

심리상담사의 아침편지

by 나무둘

생각 좀 안 나게 해 주세요.

심리상담 장면에서 많이 듣는 이야기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끊임없이 몰아치고 머릿속을 장악하고 있는 상태.

이를 즐길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누구나 어서 빨리 그 상태를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생각의 포로가 된 내담자들께 이렇게 이야기하고는 합니다.

그 생각을 건드리지 마세요.

그 생각이 나면 안 된다는 생각도 하지 마세요.


생각은 제멋대로 펼쳐집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생각을 조절할 수 있었다면

내가 원하는 행복하고 즐거운 생각만 했겠지요.

하지만 우리는 온갖 생각을 다하고 삽니다.

그중에는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는 생각도 있지요.


저 역시 그렇습니다.

가끔 고민할 거리가 생기면 아침부터 마음이 무겁고 머릿속에 온갖 잡념이 들곤 합니다.

그럴 때면 상담 중에 내담자들에게 했던 이야기를 떠올리곤 합니다.


생각을 건드리지 말자.

생각은 생각일 뿐.

그저 멀찌감치 떨어져서 바라만 보자.

잠시 후면 지나갈 것이다.


그러다가도 다시 생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듭니다.

이렇게 되면 어떡하지?

저렇게 되면 괜찮을까?

결국에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최후의 문턱까지 데려다 놓습니다.

생존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무시무시하지요.


그나마 심리학 공부를 하고 심리상담을 하고 이래저래 살아오면서

약간의 맷집이 생겨서 어느 정도 마음이 나락으로 가지 않게 하고는 있지만

마음이 휘청거리는 일은 늘 다시 생깁니다.


구렁텅이에 빠지려는 생각을 보며 반성합니다.

참 쉽지 않구나. 이런 걸 내담자들에게 방법이라고 알려주고 있다니.


마음을 다잡고 다시 한번 생각을 지켜봅니다.

불가능할 거야.

그렇게 한다고 되겠어?

앞으로도 지금과 비슷할 걸?

그렇게 되면 어떡할래?

결국은 네가 원하는 대로 안 돼서 망할지도 몰라.

별별 희한한 잡소리가 다 들어옵니다.

오 주님. 부처님.


다시 한번 생각하고 떨어지고 지켜봅니다.

생각은 내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바라볼 수 있을 때까지.


거 참, 생각은 참 이상한 것입니다.

그렇게 한참을 떨어져서 지켜보면 생각이 슬그머니 꼬리를 내립니다.

기세 등등하던 그 위력은 어디 가고 마치 하나의 사물처럼 무덤덤히 지나가지요.


그랬다가 내가 잠시 틈만 보여주면 생각은 나를 치고 들어옵니다.

거 봐, 뭐랬어? 그게 될 거 같아?


맙소사.

이 생각 놀음은 아마 평생 계속하겠지요.

생각을 지켜보고 서서

내담자들에게 했던 말을 나 스스로 잘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백기를 들고 항복합니다.


그래 생각아, 네가 이겼어.

난 너를 다스릴 수 없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 같아.

이제 알겠어.


생각은 뜻밖의 승리에 어쩔 줄을 몰라합니다.

원하지 않았던 타이밍에 거머쥔 승리에 생각은 몸 둘 바를 몰라합니다.

금메달을 딴 선수가 그 이상의 메달을 어떻게 따겠어요?

생각은 승리했는데도 괜히 여기저기 화풀이를 하고 싶어 하지만

내 마음은 걸릴 것이 없습니다.

그 생각의 과녁이 될 마음조차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항복입니다.

완전히.


아. 평화는 이렇게 찾아옵니다.

그 생각을 다스릴 수 없다고 인정하는 것.


오랫동안 많이 힘들어했다면

그 생각을 생각하는 것도 포기하고

그 생각을 다스리는 것도 포기하고

그 생각을 포기한다는 생각도 포기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만이 유일하게 가능하니까요.


이렇게 항복을 하면

그에게 승리를 주고 나는 평화를 되찾습니다.


당신은 어떤 생각 때문에 괴로워하나요?

그 생각을 멈추고 다스리고 싶나요?

만일 다스리려는 의도조차 포기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오늘 당신도 나도

승리하지 못하더라도

아니 승리를 내주더라도

승리보다 값진 마음의 평화를 얻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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