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큐 Apr 23. 2024

전구의 수명을 줄여라(빛 관련 읽을거리)

파리에 모인 전구업체들의 담합


1901년 불을 켠 이후 지금도 불이 들어오는 백열전구가 있습니다.

센티니얼 라이트라 불리는 이 전구는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주 리버모어시 리버모어-플레전턴 소방서 천장에 있어요. 

리버모어 소방서 센티니얼 라이트

점등 100만 시간을 돌파하며 지난 2015년엔 기네스북에도 등재됐고, 불이 켜진지 120년이나 됐으니 신문과 방송 등에도 꽤 많이 소개됐죠. 나름 지역 명물 역할을 하면서 불이 켜진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사이트도 있습니다. 재밌는 건 이 전구를 비추는 웹캡들이 전구의 수명은 아직 다하지 않았는데, 벌써 여러 개 수명을 다했다는 겁니다. 언제 죽나 지켜보다 지켜보는 사람들이 먼저 죽어나간 꼴입니다.  


'전구 음모 이론'(The Light Bulb Conspiracy)

프랑스에서 제작한 대큐멘트리 제목이에요. 앞서 언급한 센티니얼 라이트를 소재로 하고 있죠. 계획적 구식화 또는 계획적 진부화라고도 부르는데요. 현대에 생산되는 제품들은 원래 더 긴 수명을 가지고 있지만 제조사가 더 많은 소비를 일으키기 위해 계획적으로 수명을 줄인다는 말입니다. 최근 이슈로는 아이폰의 고의 성능저하 논란이 같은 게 바로 계획적 진부화의 대표적 사례일 겁니다. 

아이폰 고의 성능저하 관련 기사

1924년 파리에 모인 조명업체들

필립스, 오스람, 제너럴일렉트릭 등 세계적인 조명업체들이 1924년 파리에 모입니다. 

이들은 당시 전구 수명을 늘리는 경쟁을 치열하게 벌였죠.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계속 수명이 긴 전구가 개발되고 모든 사람이 수명 긴 전구를 사용하면 아무도 전구를 사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라고 말이죠. 


이들은 파리에서 모임을 갖고 '피버스'라는 국제 조명업체 카르텔을 조직해요. 그리고 '조명의 수명은 1000시간 이내로 제한한다'라는 합의를 합니다..  


계획적 진부화의 또 다른 대표 사례는 나일론이에요. 나일론은 1935년 하버드의 연구원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는데요. 듀폰사가 이를 활용해 나일론 스타킹을 내놓거든요. 나일론 스티킹은 인기를 끌어요. 진창에 빠진 자동차를 이 나일론 스타킹에 묶어 끌어내는 콘셉트의 광고를 내보내는 등 가늘지만 질긴 나일론의 특성을 부각시켰죠.  출시 첫날 78만 켤레, 첫해 6,400만 켤레가 판매됐다니 정말 빅히틉니다. 하지만 너무 질긴 나일론 스타킹은 한번 사면 재구매가 안 되는 제품이었어요. 이걸 깨달은 제조사는 결국 나일론을 너무 오래가지 않도록 약하게 만드는 '계획적 진부화'를 실행하죠. 


산업혁명과 대량생산 그리고 계획적 진부화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 인류는 어쩌면 조금은 부족한 삶을 살았죠. 인간의 노동력으로 만들 수 있는 물건에 한계가 있었으니까요. 물건의 종류도 그렇고 특히 인간의 노동력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수량의 한계는 더 뚜렷했으니까요. 하지만 산업혁명이 이런 것들을 완전히 바꾸어 놓죠. 에너지 지원만 있다면 지치지 않는 증기기관이라는 동력이 만들어졌고, 이를 활용한 다양한 기계장치들이 등장한 했으니까요. 이른바 대량생산의 시대가 시작된 겁니다. 상품 가격은 떨어지고 다양한 편리한 물건들이 쏟아집니다. 인류는 드디어 물건이 남아도는 풍요의 사대로 접어듭니다. 다만 무제한 생산되는 물건들을 소비할 인간, 즉 인구의 증가 속도는 한계가 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죠. 공급이 늘어난 만큼 수요도 늘려야하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두 가지 방식을 사용하는데요. 하나는 앞서 살펴본 제품의 수명주기를 일부러 줄이는 것. 또 하나는 필요치 않은 물건도 소비하게 하는 과소비를 조장하는 것이죠. 


광고와 신용카드 

옷장에 입을 옷이 있지만 소재가 다르고 디자인이 예뻐서 또 한벌의 옷을 구입하죠. 잘 굴러가는 나의 차는 운전대를 잡고 길거리로 나오는 순간 주변의 다른 차들과 비교되며 미래의 교체대상이 됩니다. 광고를 통해 우리는 지속적으로 소비 자극을 받아요. 심지어 돈이 부족하면 돈을 먼저 내주겠다는 카드 회사들도 있죠. 힘들면 몇 개월에 걸쳐서 나눠서 갚으라는 인심(?)까지 쓰는 회사들입니다.


왜 이럴까요? 지금의 경제시스템은 소비에 근간을 두고 있기 때문이죠. 소비가 줄면 난리가 납니다. 기업들의 실적이 감소하고 경제성장률이 떨어집니다. 어떻게든 막아야 해요. 중앙은행들은 기준금리를 낮춰주고 심지어 정부가 나서서 돈(재난지원금)을 직접 나눠주기까지 합니다. 소비가 줄지 않게 말입니다.


다만 이렇게 소비를 계속 늘리고 반복하는 건 언제까지 가능할까요?

1~2년 쓰면 버려야 하는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가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죠?

기후 이변이 이제 그만 지구를 파먹으라고 말하고 있는데 말이죠. 


<전구음모 이론, The Light Bulb Conspiracy)

https://youtu.be/BWJC5ieUAe4?si=qxoijWXnqMLFtc0z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