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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리지 Nov 13. 2020

그는 N극이었고 나는 S극이었다. (2)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마음이 서운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아침 7시에 집을 나섰다. 그리고 밤 9시가 넘어서야 집에 돌아가는 일이 허다했다. 하루 8시간의 워라밸이 지켜지는 나로서는 매일 야근에 치이는 그가 측은하고 안쓰럽게 느껴졌다. 핸드폰도 제대로 볼 시간이 없다고 했다. 그의 답장을 기다리는 일은 나에겐 즐거운 고통이었다. 난 목소리로나마 늦게 퇴근하는 그에게 힘을 불어넣어주고 싶었다.


    -잠깐 전화할까?

    -너무 피곤해서. 다음에 하자.


서운할 뻔했지만, 그래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더 힘든 것은 그였으므로. 서운해지려는 내 마음을 나무라며 그의 입장에서 생각하자고 다짐했다.


주말에 만나면 그는 항상 피곤에 찌들어 있었다. 낮 3시쯤 만나서 간단히 데이트를 하고 저녁을 먹자마자 집에 가고 싶어 했다. 평일엔 하루 종일 그의 퇴근을 응원하며 언제 올 지 모르는 카톡을 기다리던 나에게 주말은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고 영혼의 교류가 일어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급속히 피곤해지는 그의 체력 탓에 그조차 여의치 않았다.  


그래,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짧다면, 최대한 농축해서 밀도 있게 쓰자. 그 시간 안에는 최대한 많이 표현하고 많이 사랑하자. 나는 감정 표현에 거침없는 편이다. 마음은 꼭 언어로 표현을 해야지,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어떻게 알아차리냐-  는 주의였다. "사랑해."  " 보고 싶어."  "네가 너무 좋아." 그렇지만 그는 감정 표현에 서툴렀다. 오글거려서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마음이 서운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는 그런 나를 철없는 아이 같다고 여겼다.


말도 해봐야 느는 거라며, 뭐든 처음이 어렵지 계속하다 보면 쉬워진다고 겨우 설득하고 우겨서 "나도 사랑해."라는 한 마디를 들었을 때 행복에 겨워 그를 꼭 껴안았다. 서로에게 맞춰가는 첫걸음을 뗐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모른 척하고 싶었던 것 같다. 떨렸던 목소리와 불편하게 일그러져 있던 그의 표정을.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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