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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자신 Jan 24. 2021

어리석다는 것을 들킬까 봐

벌거벗은 임금님- 우리가 거짓말을 하는 이유

올해 네 살이 된 첫째는 책 읽기를 좋아한다. 엄밀히 말하면 엄마나 아빠가 읽어주거나 AI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오디오북을 듣는 것이지만 말이다. 아이는 똑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반복해서 듣는 것을 좋아한다. 대여섯 번 많게는 열 번 정도 반복해서 들으며 이야기를 통째로 외우다시피 한 아이는 어느새 동화 속 주인공이 되어 (엄마, 아빠에게도 연기해야 할 등장인물을 정해주고) 연극 무대에 선 배우처럼 열연을 펼친다. 그렇게 아이와 함께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읽고, 듣고 마지막으로 연극 무대까지 마치고 나면 나도 어느새 잠시나마 그 이야기 속에 살다 온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나도 우리 아이만 했을 때부터 수없이 들어온 닳고 닳은 그 이야기가 새롭게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그렇게 엄마가 되어 다시 읽게 된 동화를 내 나름의 생각과 언어들로 정리해 두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 첫 번째 출발은 '의좋은 형제'를 읽고 쓴 "그녀를 울린 땅콩 한 봉지"이다. 눈물 나는 형제애를 다룬 동화를 읽으며 하나밖에 없는 언니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올랐고 언니와의 수많은 에피소드 중에서도 하필이면 뉴욕에서 있었던 '땅콩 사건'이 떠올라 글을 써 내려갔더랬다.(아래 링크 참고)

 https://brunch.co.kr/@mywing04/20

앞으로도 원작 작가들의 의도, 동화가 표면적으로 지향하는 교훈이나 주제가 어떠하든지 그저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내가 이 오래된 이야기들을 통해 떠올리게 된 생각, 에피소드 중심으로 글을 엮어 가볼 생각이다.

  



어느 날, 첫째가 잘못된 행동을 해서 자리에 앉혀 놓고 물었다. "OO아, 너 왜 그렇게 한 거야?" 그러자 아이가 대답한다. "어리석다는 것을 들킬까 봐." 엉뚱한 아이의 대답에 무슨 말이지? 한참을 생각했다. 잠시 후에 아이가 그렇게 대답한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최근 아이가 재밌어하며 자주 읽어달라고 했던 '벌거벗은 임금님'에 나오는 말이었다. 신하들, 임금님의 옷을 구경하러 나온 많은 사람들, 그리고 임금님 자신조차도 '어리석다는 것을 들킬까 봐' 보이지 않는 옷을 보인다고 거짓말한다는 내용을 아이가 기억하고 그대로 대답을 한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옷'이라는 설정 때문에 실제로는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은 임금님을 보고도 많은 사람들이 옷이 보이는 척 거짓말을 한다. 왜? 옷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면 자신은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모두가 옷이 보이는 척 거짓말을 하고 있는 사이, 한 소녀가 외친다. "임금님이 벌거벗었대요!" 이 소녀도 임금님의 옷이 어리석은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을까? 아마 소녀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녀는 임금님이 벌거벗은 것을 보고 '옷을 입지 않았다'라고 생각했지 임금님의 옷이 눈에 보이지 않는 자신이 어리석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대로 솔직하게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보이는 대로 이야기한 소녀 덕분에 거짓말을 하던 사람들도 용기를 내어 말하기 시작한다. 자신들의 눈에도 옷이 보이지 않는다고.


누군가를 어리석다고 판단하는 기준은 어디에 있을까. 똑똑한 신하들도 임금님의 옷을 확인하러 갔을 때 옷이 눈에 보이지 않자 옷을 만들고 있는 사기꾼들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의심한다. 만약 그들이 '나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라는 확신만 있었다면 사기꾼들의 거짓말에 속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을 속일 필요도 없었을 거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옷이 보이지 않음 = 어리석음'이라는 공식을 진실로 믿고 있는 상황 속에서 그 공식을 깨고 사람들의 비난을 감수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결국 그 두려움이 거짓말을 만들고 다른 사람들도 그 거짓말을 믿음으로서 또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게 되는 악순환이 생겨난다. 그래서 있지도 않은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옷' 하나 때문에 모두가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소녀는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이야기한다고 해서 자신이 진짜로 어리석은 사람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도 소녀에게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그녀는 오히려 진짜 어리석은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를 속이는 일.




나도 매일 이 질문 앞에 선다.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옷이 있습니다. 이 옷이 지금 당신 눈에 보이나요?' 진짜 그런 옷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옷이 진짜 있더라도 그것이 보이지 않을 때 보이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나에게 있을까. 어리석다는 것을 남에게 들키는 것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 그것을 감추기 위해 스스로와 세상을 속이려 드는 게 진짜 부끄러운 일인데, 그 부끄러운 일을 어쩌면 매일 되풀이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애초부터 허상에 불과한 “임금님 옷 테스트”에 굴하지 않고, 두려움 때문에 꾸며내거나 더하지 않는, 그런 진실된 눈을 가지고 싶다. 그래야 내 아들에게도 어리석은 걸 들키는 것보다 더 부끄러운 게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줄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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