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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자신 Apr 13. 2021

노는 법을 잊어버렸습니다.

엄마는 어떻게 놀아야 할까요?

  아들의 하원 시간. 차량에서 내리자마자 아들과 나의 눈치작전이 시작된다. 반갑다고 안아주는 엄마 품에서 엉덩이를 살짝 빼고 몸을 틀며 자신의 목적지를 알리는 아들. 그런 아들의 입에서 '놀이터'라는 말이 나오기도 전에 '~ 오늘은 바람이 너무 세게 부네! 얼른 집에 들어가서 맛있는 아이스크림 먹자.' 하고 선수를 치는 엄마. 아직까진 아들이 대부분 엄마의 작전에 슬쩍 넘어가 주어 집에 들어올 때가 많지만 놀이터를 향한 아들의  간절한 마음을 매일같이 거절하기는 어려워 일주일에 한두 번은 아들 손을 잡고 꿈에도 소원인 그곳, 아파트 놀이터로 향한다.


추운 겨울에는 아이들이 잘 보이지 않더니 날이 조금씩 풀리면서 놀이터에 먼저 와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 제법 보인다. 아들과 나는 일주일에 한두 번 갈까 말까인 곳이지만 먼저 와서 놀고 있는 아이들 대부분은 하루의 일과 인양 거의 매일 놀이터에 나오는 모양이었다. 이제 막 걸음마에 접어든 둘째를 유모차에 태우고 아들과 함께 놀이터에 들어서니 아이들 엄마와 할머니로 보이는 어른 세 명이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우리 아들보다는 두세 살 많아 보이는 아이들 네 명이 놀이터를 점령하고 있었다. 우리 아이는 형, 누나들과 함께 놀고 싶어서 근처를 기웃거리지만 형, 누나들은 크게 관심이 없는 눈치다. 대신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할머니 두 분 중 한 분이 놀이터에 있는 아이들 모두에게 막대 사탕을 나눠주고 우리 아들 손에도 쥐어준다. 형, 누나들이 놀이에 끼워 주지 않아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던 아들의 얼굴에 금세 미소가 번진다. 감사하단 인사와 함께 사탕 껍질을 까서 아들 입에 넣어주자 형, 누나들과 똑같은 사탕을 먹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위안을 얻은 듯 아들은 아주 만족스러운 얼굴로 놀이터를 뛰어다닌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아들은 형, 누나들 틈에 끼여서 모래놀이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둘째가 타고 있는 유모차를 천천히 밀면서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내 어린 시절이 문득 떠오른다. 우리 가족은 연립주택에 살았는데 집 근처에는 마땅한 놀이터가 없었다. 그 당시 우리 동네 유일한 아파트 안에 어린이 놀이터가 있긴 했지만 친구 없이 혼자 갈 만한 곳은 아니어서 자주 가지는 못했다. 대신 우리 집 뒷산을 조금만 올라가면 운동기구 몇 개와 등나무 아래 큰 평상이 하나 놓여 있는 조그만 체육공원이 하나 있었는데, 해가 길어지는 여름날 저녁이나 주말 오후가 되면 과일이나 음료수를 싸들고 엄마, 언니와 함께 자주 그 뒷산에 올랐다. 그곳이 바로 우리 자매의 놀이터였다. 운동신경이 좋아서 기계체조를 잠시 배우기도 했던 언니는 공원에 있는 철봉에 매달려 재주(?)를 부렸고 나는 그런 언니를 따라 철봉과 구름다리를 오르내리며 놀았다. 가까이 사는 친구들 몇 명과 함께 뒷산에 오른 날에는 두 명, 세 명 편을 갈라 잡기놀이를 하기도 했다. 실컷 뛰어놀다가 지치면 등나무 평상에 앉아 집에서 싸가지고 온 과일을 먹거나 음료수를 마셨다. 언제나 그곳에 있으면 마법처럼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아들과 놀이터에 있으면서도 자꾸 핸드폰 시계를 들여다보는 지금 내 모습과는 사뭇 다른, 놀이터의 주인공이었던 그 시절의 나.


놀이터란 공간은 참 신기하다. 처음 보는 아이들도 금세 친구가 되어 함께 모래놀이를 하고 술래잡기를 한다. 놀이터는 “노는 곳”이기 때문에 이 곳에 모인 아이들은 모두 몸도 마음도 무장해제되어 있다. 반면 아이들을 데려온 부모들은 대부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더 놀고 싶다는 아이들을 달래서 집으로 데려가기 바쁘다. 놀이터에 놀러 온 건 아이들이지 어른들은 아니니 말이다. 어른들은 얼른 집에 가서 해야 할 일이 많다. 저녁밥도 차려야 하고, 아이들을 먹인 다음 씻기고 재울 준비도 해야 한다.


때로는 육아에 지친 부모들이 실컷 놀 수 있는 '어른이 놀이터'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제 노는 법 조차 잊어버린 어른들이 일상의 모든 근심 걱정일랑 훌훌 던져버리고 아주 제대로 놀다갈 수 있는 그런 곳 말이다.  하지만 우리 어른들은 사실 놀이터라는 물리적 공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어른으로서 감당하고 책임져야 하는 많은 일들 사이에서 제대로 놀고 쉴만한 여유가 없어서 자연스레 노는 법도 잊어버리게 된 건 아닌가 싶다.


혹자는 자녀들과 놀아주는 것이 아니라 진짜 함께 노는 부모가 되라고들 하는데, 그것도 모든 부모에게 다 적용이 되지는 않는 것 같다. 물론 즐거워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느끼는 것이 부모라지만, 어찌 인간에게 즐거움이 그것뿐이랴? 부모들도 아이들이 즐겁게 놀 수 있게 도와주는 것뿐 아니라 부모 스스로도 즐거운 놀이시간을 가지고자 적극적으로 애쓸 필요가 있다. 평소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행복하고 즐겁기 위해서는 더더욱 말이다. 자, 그럼 나도 이제 어떻게 하면 엄마가 아닌 '나'로 돌아가 조금 더 재미나게 놀 수 있을지 궁리를 좀 해봐야겠다. 그러고서 오늘은 오랜만에 아들이랑 놀이터에도 들렀다 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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