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서는 소위 썸네일 뽑는 게 중요하다지만, 비단 유튜브뿐 아니라 책을 쓰는 작가들 사이에서도 썸네일 뽑는 일, 즉 제목 정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듣기로는 작가가 글을 쓰면서 미리 정해 놓은 제목이 있더라도 편집자나 출판사 관계자들의 의견으로 인해 원래 제목이 엎어지고 바뀌는 경우가 허다하단다. 글을 읽는 독자보다 책을 내고 싶어 하는 예비 작가들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는 추세에, 쏟아지는 책들 속에서 독자의 간택을 받기 위해서는 더더욱 제목이 중요해질 수밖에.
'제목'은 글쓴이와 읽는 이의 첫 만남이다.
그것이 긴 글이든, 짧은 글이든 우리는 일단 제목에서 받은 첫인상을 가지고 읽기를 시작한다. 읽기를 마쳤을 때의 감상이 내가 제목을 보며 기대했던 것과 일치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둘 다 나름 의미가 있다. 제목에서 주는 의미와 느낌 그대로가 내용에 잘 들어가 있는 글은 내 취향에 가까운 글일 수 있겠고 반대의 경우는 내가 평소 가지고 있던 생각을 뒤집거나 흔들어 신선한 자극을 줄 수 있으니 말이다.
책 읽기를 좋아하고, 글쓰기도 언젠가는 업으로 삼고 싶다고 여길 만큼 좋아하는 나지만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로 여전히 읽기와 쓰기는 어렵다. 너무 좋아해서, 그것을 잘 해내고 싶은 욕심이 커질수록 힘이 들어가고 불안해지기 마련인데 지금의 내가 딱 그렇다. 어떻게든 뭐 하나는 해보자고 노트북 앞에 앉기는 했는데,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 막막하고 그저 이렇게 앉아 있다고 해서 어제보다 더 나은 글이 나오겠나? 하는 염려와 걱정이 앞선다.
그런데 이런 불안과 싸우는 나만의 방법이 딱 하나 있다.
떠오르는 글 제목을 먼저 쓰고, 그 제목이 내 머릿속에 떠오르게 된 이유를 곰곰이 물으며 따라 나오는 생각들을 자연스럽게 정리해 보는 것이다. 정말 신기하게도 이 방법은 99% 효과가 있다. 직관적으로 떠오른 한 줄의 제목에 기대어 글을 써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글 한 편이 완성된다. 물론 그것이 좋은 글이냐 아니냐는 또 다른 문제이지만, 적어도 한 줄 제목이 나에게 주는 힘은 크다. 반짝거리는 커서 앞에서 머뭇거리던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채워지지 않을 것 같았던 백지의 공포를 이겨내게 한다.
문장의 세계는 너무나 신기하다. 짧은 하나의 문장이 담고 있는 세계는 그 문장을 이루고 있는 글자 개수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던져주는 수많은 의미들과 그 문장이 쓰이거나 쓰일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시제까지 포함하고 있다. 제목 한 줄, 그 한 문장에 깃든 거대한 세계로 인해 차례차례 다른 문장들이 불려 나오고 그것이 문단을 이루어 결국 한 편의 글이 탄생하는 것이다.
책 속에 얌전히 누워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문장들. 주의를 기울여 그것을 읽어내기 전까지는 고요한 적막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상상력을 자극하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짧지만 강력한 제목 한 줄이 어떤 이의 마음을 울리는 순간, 멈춰있던 활자들에 생명이 주어지고 그 속에 담겨있는 이야기가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한 줄의 문장은 쓰는 이에게도, 그것을 읽는 이에게도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한다.
한창 한글 공부를 재밌어하다가 어느 순간 흥미를 잃어버린 아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유신아, 엄마나 아빠가 읽어 주는 이야기를 듣는 것도 참 재밌지만 네가 스스로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되면 정말 놀라운 세계가 펼쳐질 거야. 이 작은 책 한 권에 들어 있는 이야기가 너를 아주 먼 곳으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재미있는 곳으로 데려다 줄지도 모르거든!"
아들이 오롯이 내가 경험한 그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스스로 읽는' 것의 즐거움을 깨닫는다면 너무 기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읽기의 즐거움과 함께 쓰기의 즐거움도 깨달아 자신 안에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잘 정리하고 기록할 수 있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내 안의 불안과 싸우다 보니 어느새 글 한 편이 완성되었다.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읽어 보면 어설프기 짝이 없는 글일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불안에 맞서 한 줄, 한 줄 써 내려가다 보면 약해지고 흐릿해졌던 나의 쓰기 근육도 조금씩 살아나지 않을까. 그래서 어제보다는 조금 더 나은 글을 써낼 수 있지 않을까. 그 과정 중에 놓여진 이 한 편의 글도 나에게는 소중한 기록이자 증거가 될 것이기에, 불안해하지 않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