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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돌맘 Feb 04. 2022

8. 15일간의 여행

모처럼 온 가족이 모였다.

서울에서 휴가를 받아온 남편, 겨울방학을 하고 온 아이들과 모두 모여 왁자지껄 저녁식사를 하고 나서 분위기를 살폈다. 다음 주면 시작될 방사선 치료, 15회를 매일매일 정해진 시간에 가야 하니 뭐라고 얘길 하긴 해야 했다.


"엄마가 할 말이 좀 있어"

"... 뭔지 알아, 빨리 얘기해, 대충 눈치채고 있었어" 수술 전부터 내 컨디션을 수시로 체크하며 눈치를 보던 대학 졸업반 큰 애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답을 한다.

" I had Breast Cancer surgery and need to take Radiation treatment for preventing recurrence in the future."

영어로 말을 하니, 왠지 내 얘기가 아닌 남의 얘기 같이 생경하게 느껴졌다...

큰 애는 금세 우울모드로 분위기가 바뀌었고, 남편과 나는 최대한 밝게 아무렇지 않은 듯 짧게 얘기를 하고, 각자 할 일 잘하고, 엄마를 좀 도와줘야 한다고 얘기하고 마무리를 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 며칠 동안 큰 아이는 온몸으로, 우울함을 뿜어대면서, 입은 꾹 다물고 어쩌다 하는 말에는 가시가 잔뜩 돋친 상태로 나를 신경 쓰이게 했고, 결국 참다못해 아이에게 싫은 소리를 하고야 말았다. "너는 꼭 그렇게 엄마 마음을 불편하게 해야만 하겠니? 어쩜 그렇게 니 기분만 중요해!"

한바탕 해대고나니 기분도 컨디션도 안 좋아서 혼자 누워있는데, 큰애가 서투른 한글로 장문의 카톡을 보내왔다.

"엄마, 미안해, 그런데 나 너무 화가 났어. 왜 엄마한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야... 아빠 회사일도 그렇고... 엄마 아빠 다 너무 좋은 사람들인데, 왜 우리 가족에게 이런 힘든 일들이 계속 생기는 건지 너무 화가 났어. 한국에서 외국인학교 다니는 동안도 나 다 알았어, 우리 온 가족이 모두 많이 힘들었던 거... 그리고, 우리들 때문에 엄마 아빠가 미국-한국에 떨어져 있게 된 것도 속상하고, 그런데 엄마는 수술까지 하고... 그래서, 그랬어"


아이의 속상함과 그간의 속 끓임이 절절히 느껴지는 카톡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래도, 다독여야 했다, 상처 입은 아이의 마음을 내 치료 앞에 먼저 두고 살펴줘야 했다, 왜냐하면 나는 엄마니까...

 "엄마는 이만해서 감사한데 그렇게 생각하지 마, 그리고 착하고 좋은 사람들한테 좋은 일들만 일어난다고 누가 그래, 그렇게 생각하는 건 네가 하나님을 제대로 못 믿는 거야, 걱정하지 말고, 엄마 치료 잘 마칠 수 있게 기도해줘"  

옛날 엄마의 폐암 진단 때 내가 느꼈던 절망스러운 감정, 화나고 답답한 감정들이 떠오르면서 아이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까 생각하니 잠이 오질 않았다. 그래도, 감사해야 했다, 그리고 힘을 내야 했다, 수술은 끝났지만 앞으로 받아야 할 치료가 나에게는 남아있었다.


나의 상태를 요약해보자면,

Stage 1A - 1.7 mm, HG I/III, no LVI, no DCIS, E R8/8, pR 6/8, HER2 negative, 0/2 SLN, pT1a, pN0

세포 분화도, 암세포 성질도 나쁘지 않고, 여러 종류의 암 중에 호르몬 양성, 허투 음성, 림프 전이 없음


1.7 mm 암세포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도 나에게는 경이로운 일이었다. 그야말로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초기이고 크기가 작고 성격이 좋은 암이라고 해도, 이미 암 확진이 나온 이상, 유방암 표준치료, 바로 피해 갈 수 없는 방사선 치료와 호르몬 치료를 위해서 또다시 두 명의 선생님들과 만났다.

종양외과, 방사선종양외과 두 분의 선생님과 각각 한 시간이 넘는 상담을 이틀에 걸쳐 마치고, 모의 방사선 치료 스케줄을 잡아 CT 촬영 및 문신을 하고, 산부인과에서 한번 더 확인을 하고... 또다시 며칠을 고민하다가 마침내 12/20/2021부터 방사선 치료를 받기로 최종 결정이 되었던 12월 둘째 주는, 여전히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지만,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한껏 들떠있고, 오래간만에 동네의 모든 쇼핑몰에 사람들이 북적대는 2021년 연말의 분위기가 차고 넘치는 시기였다.

타이밍도 참... 어쩜 이럴 때 나는 방사선 치료를 받게 된 걸까 마음이 잠시 울적했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병원의 친절한 방사선 치료사 선생님들은, 매일 아침마다 나를 반갑게 맞아주고, 아이들 소식과 내 학교 스케줄, 크리스마스 계획과 기타 등등을 물어주며 긴장을 풀어주었다.

모의치료 날, 무시무시한 기계를 보고 압도되어 기가 눌린 나를 위해서, 기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자기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나를 지켜보고 있으며,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자세히 알려주고 보여주고, 아무 걱정도 말라고 다독여줬다. 20초씩 두 번, 방사선을 쏘는 시간은 총 40초, 그 40초를 15일 동안 받는 것이 나의 방사선 치료계획이었다.


2021년 12월 20일부터 시작된 치료는, 크리스마스이브와 섣달 그믐날 두 번의 금요일은 병원이 닫는 관계로 쉬고, 2022년 1월 11일 끝났다. 마지막 이틀은 함께 하지 못했지만, 온 동네 도로가 살얼음이 얼어 스케이트장 같이 되어 사고가 곳곳에 있었던 날도, 폭설로 아침시간 집에서 나갈 수가 없어 오후에 갔어야만 했던 날도, 남편은 나를 태우고 매일 아침 병원으로 향했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기도하며 가슴을 졸이는 남편도 병원 입구조차 들어올 수가 없었고, 제아무리 친절하고 실력 좋은 의사 선생님들도 방사선이 나오는 치료실에서는 두꺼운 유리벽 너머에서 다른방에서 나를 지켜봐야만 했다. 치료실에서 선생님들이 나가고, 불이 꺼지고, 기계가 위치를 바꿔가며 돌아가는 40 동안, 나는 하나님 말고는 의지할 분이 없었다.  영원한 멘토이신 B목사님의 말씀처럼,  순간만큼은 마음이 더할 나위 없이 가난해졌고, 일생을 통해 처음으로 그야말로 '하나님과 독대하는' 귀한 경험을   있었다.

올겨울 들어 가장 추웠던 1월 11일, 드디어 15회의 치료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종양외과 선생님이 치료 부위를 확인하고 나서 , "Finally, all done! Congratulation!" 해주며, 치료사 선생님들, 담당 간호사 선생님까지 모두 복도에 나와서 박수를 쳐주고 입구에 늘어서서, 그동안 너무너무 애썼다고, 코로나가 아니면 우리가 모두 한번씩 허그해주는데 아쉽다고, 이제 ‘치료받으러’는 두 번 다시 이곳에 오지 말라며 인사를 건넸다. 한 달 후 외래 약속을 잡고 병원문을 나서니 공기는 엄청나게 차갑지만, 너무나도 깨끗한 겨울 공기와 파랗게 쨍한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끝났구나, 이제 돌아가자 집으로...' 혼자 하는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나서는 기분이 들었다.


다른 암환우들의 긴 치료과정을 생각하면, 내가 감히 15회의 방사선 치료를 놓고 힘이 들었다, 두려웠다 말할 수 없음을 안다.  그러나, 이역만리 미국 땅에서, 나 혼자서 의사 선생님들에게 영어로 설명을 들으며, 혹시 내가 놓치는 말이 있는 건 아닌지, 제대로 의사전달이 된 건지 늘 긴장을 했어야 했기에 지내온 지난 15일의 시간은, 내 평생을 통해서 가장 길고, 외롭고, 무엇보다도 “마음이 가난해지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붙잡을 수 없는, 오로지 나와 하나님뿐 그 누구도, 그 어떠한 것도 공존할 수 없는, 마음이 한없이 가난해지는 그 시간, 하나님께서는 나를 위해 온 가족들이 함께 모여 따뜻한 연말을 보낼 수 있게 허락하셨고, 방사선 치료 15일 동안 아무런 부작용 없이 무사히 버틸 수 있게 해 주셨고, 최고의 타이밍으로 어수선한 코로나의 상황 속에서도 큰 이변 없이 예정대로 치료를 마치게 해 주시고, 무엇보다도 아무도 옆에 있을 수 없는 무섭고 외로운 방사선 치료실에서도 나를 꼭 붙잡고 계셨다. 내 평생 가장 안전하고 마음이 편했던 15일간의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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