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좋은 것도 많다 2
한국은 편리하고 깨끗하고 안전하다.
미국처럼 다인종, 다민족으로 구성된 나라에 비하면
문화나 정서가 동질하고
그래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대체로 큰 불편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다들 성실하고, 약속도 잘 지킨다.
가끔 보면 이렇게 좋은 나라인데 왜 다들 힘들까. 그런 질문을 하게된다.
미국에서 살면서 아주 가끔씩 내 나라에서보다 편안한 기분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 대표적인 공간이 도서관이다.
나는 책읽기를 좋아할 뿐만아니라
한창 책을 읽어야하는 나이의 자녀를 키우고 있기에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서점과 도서관을 자주 갈 수 밖에 없다.
미국에서는 일주일에 두세번씩 찾는 공공 도서관이지만
한국에서는 아이들을 데리고 도서관에 가는 횟수는 1년에 10번도 된지 않았다.
대신 우리는 동네에 있는 큰 서점 두세군데를 주1회가량 가곤했다.
요즘 서점들은 도서관과 카페가 혼합된 형태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아서
우리는 주말이면 서점으로 소풍을 가곤했다.
미국에서도 서점은 중고책을 함께 판매하고
예쁜 굿즈들이 많이 진열되어있으며
독서모임이나 작가와의 만남같은 행사도 종종 하는.
지역의 커뮤니티센터 같은 곳이다.
그리고 미국에는 아직 터줏대감 동네서점이 살아있다.
그래서 서점마다 각자의 색깔에 맞는 큐레이팅을 경험할 수 있다.
다 좋은, 서점에 가면 돈을 쓰게된다.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아무리 중고책이라해도 한번 방문하면 우리돈으로 1.5~2만원 정도는 쓰게되고
거기다 스티커 한두개 까지 구입하면 3만원은 거뜬하다.
미국은 책 값도 한국보다 두배가량 비싸고.
스티커는 3배가량 비싸서
서점에서 매주 책을 읽는 것은 부담이 큰 취미생활이다.
미국의 공공도서관은 형편이 넉넉치 않은 우리 가족에게 천국 같은 곳이다.
특히 여름철.
아이들이 길고 긴 방학을 맞이하면 (보통 6월에서 8월까지 두달 넘는 기간)
나는 아침부터 도시락을 싸서
아이들과 동네 공공도서관으로 향한다.
가디건은 필수다.
빵빵한 에어컨디셔너와 방대한 도서들이
향긋한 커피향과 함께 우리를 맞아준다.
도서관의 창은 온통 푸른 녹음으로 가득하고
열람실에는 젊은이과 어르신들이 다양한 모양의 의자와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거나 컴퓨터로 일을 하고 있다.
한켠의 개인용 유리 박스 안에는 아빠와 아이 혹은 2,3명의 친구들이 들어 앉아
숙제나 토론을 하고 있다.
어린이 열람실은 언제나 시끌시끌하다.
아이들이 한쪽에서 블럭을 쌓거나 현미경으로 무언가를 보며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고
더러는 나지막한 책꽂이 사이를 뛰어다닌다.
책을 검색하는 컴퓨터 앞에는 언제나 낮은 발 받침대가 놓여있고
아이들은 그 위에 올라서서 뭔가를 검색한다.
어린이 열람실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나 울음소리가 떠날 순간이 없다.
그리고 누구도 그런 소음을 신경쓰거나 불편해하지 않는다.
도서관 구석에는 매일 만나는 해그리드 같은 남자분이 빈백에 누워 잠을 자고있고
할아버지들도 빈백에 기대어 책을 읽는다.
오후에는 중고등 학생들이 청소년 열람실에서 공부를 하거나 프로젝트 준비를 한다.
그 공간에는 <어른들은 접근금지> 라고 붙어있다.
도서관의 사서들의 표정은 활기차고
그들은 언제나 무엇을 도와줄까. 질문을 던진다.
마칠 시간에 찾아가 뭔가를 물어도 긴 시간동안 답을 하고
퇴근시간을 잊은 듯 웃는다.
그래서 나는 어느 날 부터
혼자서도 도서관에 간다.
컴퓨터 하나 들고.
지난 주말에 빌린 책도 가지고.
오전 내내 학교 숙제도하고 점심도 먹고 또 책도 읽는다.
도서관 입구에서 판매하는 공정무역 커피는 지역의 발달장애인들이 주문을 받는다.
나는 고소한 라떼를 한 잔하며 도서관 주변을 설렁설렁 걷기도 한다.
스타벅스 커피보다 맛있고. 또 좀더 저렴하다.
다음달 어느 주말에는
도서관 앞 광장에서 딸아이가 직접 만든 핸드메이드 카드를 판매하기로 예약이 되어있다.
비영리 목적의 판매는 도서관의 허가를 받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그 카드를 판매한 수익을
지역 아동들의 식사를 마련하는 단체에 기부하기로 했다.
주말에는 동네 여자 아이들이 발레와 책읽기를 병행한 수업을
도서관 안의 커뮤니티 룸에서 받고
이민자들을 위한 영어 만들기 수업도 열린다.
미국의 공공 도서관은 조용한 사색의 공간이 아니다.
독서를 하지만 적당히 시끄럽고
공부도 하지만 꽤나 자유분방하다.
손주들을 데리고 온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동네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사서들은 제법 큰 목소리로 방문객들을 응대한다.
마치 내가 10년 전에 스타벅스를 찾았을때 받았던 느낌.
아늑하고 편안하지만
적당한 소음이 있고
향긋한 커피향이 나던 공간.
요즘은 추락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때는 커피숍을 문화공간으로 여기게 했던 스타벅스가
더 크고 저렴한 버전으로 내 곁에 찾아온 것이다.
하루중에 가장 좋아하는 시간을 등교시간이라 한다면
동네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단연코 공공도서관이라고 말하겠다.
다른 동네 도서관도 별반 다르지 않기에.
나는 여행지에서도 늘 그 동네 도서관을 찾아간다.
적어도 나에게는
미국 동네 도서관이 스타벅스를 이겼다.
문화를 만들어내는 공간.
누구의 눈치도 보지않고
책의 질감을 느끼고 냄새를 맡으며
하루종일 뒹굴며 게으르게 지낼 수 있는 곳.
한번에 50권씩 빌려가도 수 없이 자동 연장을 해주는 곳
돈없는 엄마가 유일하게 아이들에게 마음껏 골라! 라고 호기를 부릴 수 있는 곳.
발레리나가 꿈인 7살 아이가 무료로 발레 수업에 참여할 수 있는 곳.
큰 가방에 원없이 담은 책을 낑낑대며 들고 나오면서
아이들에게 당부한다.
얘들아. 이중에 3분의 1만이라도 읽고 반납하자꾸나.
그리고 그 안에는 내가 빌린 책들도 열권이나 서걱대고 있다.
아. 저기 앞에 해그리드 아저씨가 보인다.
"Hello"
이제 서로 낯익은 사이에 짧은 인사를 나눈다.
아저씨가 멀어지자 아이들이 소곤대며 말한다.
"엄마 그래도 저 아저씨는 디게 고급진 노숙자 같아. 도서관에서 살다(?)니."
해그리드 아저씨도 나처럼 스벅보다 도서관이 좋은 거겠지.
화장실도 넓고 깨끗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