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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MBY Dec 18. 2024

인간의 존엄이란

내가 한국을 좋아하는 백만 가지 이유





DENY - DEFEND - DEPOSE

 - 부인. 방어. 진술 -

최근에 뉴욕 맨해튼에서 대담한 총격사건이 있었다.

호텔 앞에서 복면을 쓴 남성이 쏜 총에 미국 최대보험사 유나이티드헬스케어 CEO가 사망한 사건이다.

탄피에는 위의 단어들이 새겨져 있었다.

보통 미국의 보험회사들이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기 위한 전략

DENY - DELAY - DEFEND를 풍자한 것이었다.


며칠 후 용의자는 체포되었지만

미국사회는 그를 'UHC 암살자(assassin)'로 부르며 미국 의료보험체계와 의료시스템에 대한

강력한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여담이지만 더욱 뉴스거리가 되는 것은

용의자의 집안(전형적인 미국 상류층), 학벌(볼티모어의 유명 사립고 수석졸업, 펜실베니아대 컴퓨터 공학 학사. 석사 취득), 빼어난 외모 등등.

심지어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크라우드편딩 사이트 '기브샌드고'에는 11일 현재 만조니를 위한 기부금이 3만 1000달러가 모였다고 한다.


26살의 전도유망한 청년이 인생을 걸고 해 낸 과업이 '살인'이라니.

왜 미국 사회는 그를 응원하는가.

그의 이름과 얼굴을 딴 굿즈가 팔리고

그를 신고한 맥도널드 지점에 대한 별점테러가 일어나는지.


국민건강보험으로 빵빵하게 보장받으며 살아온 외국인은

또 한 번 미국이라는 국가의 흥미로운 면을 보게 된다.

아. 그리고 또 하나.


26살 청년이 탄피에 글씨까지 새길 수 있을 만큼 총알(총알뿐이겠는가)을 구하기 쉬운 나라도 미국이다.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 대한민국 국민임에 안도하며 살아간다.







여기서부터는 2주 전에 쓴 <치과치료와 인간의 존엄>에 관한 글이다. 이 글을 쓰고 며칠 후에 사건이 일어났다. 나는 다행히 한국에서 보험을 가입하고 온 사람이라 루이지 만조니처럼 총알에 글자를 새기지 않아도 된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나를 닮아 치아가 약한 큰아이가

지난 11개월간 무사히 지내나 했는데

결국 작은 어금니가 깨어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


미국의 치과진료비가 크레이지 하다는 것은 익히 들었던지라

오죽하면 나는 흔들리지도 않는 둘째의 아랫니 두 개를 한국에서 미리 뽑고 오는

잔혹성을 발휘했다.

나의 무자비함을 변명하자면,

아이들의 치아를 어려서부터 돌봐주신 어린이 치과 의사 선생님의 권유 때문이었는데,

요즘 아이들은 턱뼈가 작아 유치와 영구치가 두 겹으로 자라는 경우가 많고

우리 둘째도 그 가능성이 농후하니

미리 뽑고 가는 게 좋다는 것.

생니 잔혹사로 우리 둘째는 미국에서 반년동안 사과를 앞니로 깨물지 못했다.

이것이 모두 미국 의료비에 대한 공포증 때문이었다.

여름방학이 끝나가던 어느 날 아이의 아랫잇몸에 하얀 밥풀이 보이던 그날 나는 환호성을 질렀다.

나의 죄의식을 날려 보내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결국 이번에는 첫째의 충치치료를 위해 치과 예약을 하기에 이르렀다.


미국은 한국과 매우 다른 의료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학교에서 수업을 들으며 상세하게 알게 된 것인데


우선 약값을 결정하는 구조가 아주 복잡하다.

보통 시장경제에서 일반적인 소비재 가격은 수요와 공급 곡선이 만나는 점에서 결정된다.

독과점을 방지하는 법률이나 정부의 규제, 보조금 제도가 시장가격 결정구조의 빈부분을 메운다.

의약품의 경우는 예외적으로 많은 국가들이 이를 공공재로 여기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정부 당국,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약가결정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미국에는 약값을 결정하는 player가 수요자, 공급자(제약회사) 그리고 민간 보험회사와 로비스트, 그리고 공공보험(메디케어)으로 복잡하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군수품 비리나 공천비리 혐의 기사에서나 보는 로비스트라는 직업이 미국 약값 결정과정에서 등장하다니.

이해당사자가 복잡하게 얽혀 결정된 미국의 약가는 실로 놀랍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인슐린을 사용하는 미국의 당뇨 환자들.

여기서는 제법 단순한 건선 치료제조차도 한국의 네댓 배를 지불해야 한다.

비싼 약값에 더해 공공의료보험의 공백은 결국 환자의 주머니를 탈탈 털어간다.



시장경제원칙에 충실한(?) 미국.

인간의 합리성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일까.

아니면 정치의 불합리를 최대한 이용하는 것일까.

미국은 결국 세계에서 약값이 가장 비싼 나라. 를 선택한 듯하다.

제약회사들은 주주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 엄청난 투자를 감행하고

우여곡절 끝에 출시된 신약은 그 값을 제대로 받아야

주주와 투자자들에게 응당의 대가를 돌려줄 수 있기에

말 잘하고 잘 생기고 순발력 좋고 똑똑한, 드라마에 나올 법한 로비스트들과 힘을 합쳐

시장 수요공급 곡선을 화끈하게 왜곡시킨다.

그 모든 과정에 입법부의 철벽지원과 정부당국의 눈감아주기가 적절히 배합된다.


공공의료보험을 확고히 유지하고 있는 대한민국에 경의를 표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국민건강보험이지만

그래도 인간의 존엄에 조금은 더 가까운 체계가 아닌가. 생각하며 수업에 집중했다.



실제로 나의 화상영어 선생님의 어머니는

당뇨를 앓고 계신데. 미국의 1/3 가격에 판매되는 인슐린 처방을 위해 캐나다와 국경을 접한 주로 이사를 감행하셨다고 했다.

일 년에 수십만 혹은 수백만의 미국인이  '의약난민(drug refugee)'를 자처하며 캐나다나 멕시코의 국경을 온오프라인으로 넘는다.


교수님의 다음 강의는 메디케어, 메디케이드, 오바마케어 등 <미국의 의료보험제도>였는데

그 수업에서도 나는 묘한 국뽕을 느끼며 미국 보험회사들의 자본력과 영리함에 혀를 내둘렀다.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제도는

이해당사자가 복잡하게 얽히고, 그중 한 집단이 강력한 파워를 가지기 전에

설계되고 추진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정책입안자의 역할이 중요하고 대통령이나 의회에 50년 앞을 내다보는 유능한 리더들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했다.

역설적이게도 선진국이라 여기는 “미국" 의료체계를 공부하면서 말이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Sicko에서 이런 장면이 있다.

『릭은 토목절단 작업을 하던 중 가운데 손가락과 넷째 손가락이 잘렸다. 병원에서 접합수술에 들어가는 비용을 확인해 본 결과 가운데 손가락은 6만 달러, 넷째 손가락은 1만 2000달러라는 얘기를 듣고 결국 가운데 손가락을 포기하게 된다.』

이것은 의료선진국이라 불리는 미국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참혹한 현실이다.


덴젤 워싱턴이 주연한 영화 존 Q에서는

아들의 심장이식 수술을 보험으로 보장받지 못한 아버지가 인질극을 벌이는 비극적인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나에게도

말로만 듣던 살인적인 약가와 냉혹한 민영의료보험 시스템을 경험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미국의 언빌리버블 한 의료시스템 컨베이어에 드디어 나도 올라타게 되었다.


물론 나는 한국에서 유학생을 위한 보험을 가입하고 온 상황이라 막연히 낙관적인 전망을 가지고 병원 문을 열었다.  

그리고 우리는 드디어 치료를 받았다.

아이의 치아는 다행히 영구치가 1년 후면 자라 나올 예정인, 작은 어금니였고

신경치료는 어른들의 그것과 달리 뿌리를 살리는 제법 간단한 것이었다.

한국인 덴티스트가 운영하는  그 치과는 무척 규모가 크고 분업화가 잘 된 곳이었다.

나의 사정을 잘 아는 한국인 상담자가 나의 비용부담을 최소화하고 보험보장을 잘 받을 수 있는 치료방식을 안내해 주었다.

한국어를 잘 못하는 선생님은 한국어를 잘하는 간호사? 간호조무사? 의 순차통역을 적절히 활용해 나에게 아이의 치아 상태와 치료계획을 설명했다.

한국 어린이 치과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기 위해 작은 방으로 가서 커다란 기계 앞에 서야 했던 것과 달리

아이는 베드에 누운 상태로 엑스레이 사진을 찍었다.

간호사님은 방사선 노출에 예민하지 않은가. 생각도 했다.

전반적으로 마음이 놓였다.


여러 개의 치료실안에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누워서 선글라스를 낀 채 입을 아- 벌리고 있었다.

예약시간이 오면 새로운 사람들이 로비에 가득 앉아 있었다.

미국에서는 머릿니 약을 처방받기 위해 어전트 케어게 가본 게 다인 나는

한국식 미국치과를 관찰하며 묘한 즐거움을 느꼈다.


즐거운(?) 현장체험(?)을 마친 후

한국어를 못하는  오피스 직원이 건넨 진료비 영수증에는 650$ 이 찍혀있었다.

보험청구를 위한 상세한 진단서는 메일로 보내준다는 안내와 함께.

하늘로 승천하는 환율 때문에 미국은행 잔고가 부족했던 나는

한국 신용카드를 내밀었다.

그리고 사인을 요청하며 내민 카드단말기에 찍힌 금액은

986,000원.



내 눈을 의심했다.

카드사 수수료까지 더하면 근 백만 원을 일시불로 결제하고 나오면서

땡큐. 시유.라고 인사를 해야 하는가. 잠시 갈등했다.



방금 전까지 기분이 좋았던 거 같은데.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자동차 시동버튼을 누르면서 아이들에게 말했다.

- 오늘부터 과자 사지 말자. -

그리고 이미 다 자라 빈자리를 야무지게 메운 둘째 아이의 아랫니를 들여다보며

작년 겨울, 생니를 두 개나 뽑고 엉엉 울던 아이에게 미안했던 마음이 싸악. 사그라들었다.


나는 한국의 의료시스템을 찬양한다.

부족한 부분은 보완하고 상황이 달라지면 잘 수정하면 된다.

한국은 인간의 존엄을 돈과 바꾸지 않는 애민의 의료체계를 갖춘 나라다.

의료선진국 어느 동네에 충치 때문에 잠을 설치는 누군가는 거라지에서 뺀치를 찾아 생니를 뽑겠지.

그것은 기술의 부족함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자본과 기술이 필요 이상으로 풍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그것은 의지의 차원이다.

손가락마다 다른 가격이 매겨져 한 개를 포기해야 하는 차등화된 인간의 존엄성.

그 버려진 손가락의 존엄을 마지막까지 지켜주는 대한민국이기를.


새삼 국민건강보험가입자인 내가 자랑스럽다.








인간의 존엄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존엄을 지키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존엄을 지키며 살 수 있나.


젊은데 잘생기고 공부도 잘하며 집안도 좋기까지 한 그 남자는

무엇을 위해 한 인간의 존엄을 부수어야 했을까.

존엄을 위해 존엄을 파괴하는 현장.

창과 방패.


거대한 모순의 수레바퀴 아래서

다시 한번 정신을 다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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