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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MBY Dec 11. 2024

회사원에게 행복이란





나는 알고 보면 회사원이다.

지금은 주부. 학생. 학부모. 여행자. 그리고 민망하지만 작가.로 살고 있지만

불과 1년 전 이맘때의 나는 회사원이었다.

내 역할의 6할이 회사원이었고, 나머지 4할을 아내, 엄마, 며느리, 알코올 소비자, 쇼핑 중독자로 살아왔던 거 같다.



회사에 다닐 때는 늘 이맘때 <트렌드 코리아0000> 요 책을 읽었다.

트렌드를 알아야 대화에 낄 수 있고

트렌드를 알아야 기획을 할 수 있고

트렌드를 알아야 홍보도 할 수 있으니까.


먼 미국땅에서도 나는 대한민국 트렌드가 궁금했던지

ebook으로 기어코 트렌드보고서를 읽는다.

요즘 소비자들은 더 이상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소확행'은 가고 '아보하'가 뜬다나

아보하.

하와이에 가서 꽃을 던져야 할 것 같은 좋은 느낌이 든다.

- 아주 보통의 하루 -


보통사람 찍어 주세요

할 때 그 보통.

워낙에 별의별 일들이 많아서 그런지

사는 게 워낙에 드라마 같아서 그런가

별 탈 없이 지나는 게 너무 어려운 시대가 온 것인지.

그래서 사람들은 더 이상 형이상학적인 '행복' 대신

추상적이긴 하나 왠지 손에 잡힐 거 같은 '보통'을 선택한 듯하다.




다시 회사원 이야기로 돌아와서.



회사를 다니는 나는 늘 메이크업을 빡세게(?)한 후, 다림질이 잘 된 위아래 세트 정장을 입었다.

잠을 잘 때는 늘 미간을 찌푸린 채 싫어, 저리 가 같은 잠꼬대를 해댔고(남편의 증언에 따르면),

주말에는 퉁퉁 부은 얼굴로 11시 즈음 집 근처 빵집으로 달려가 커피를 한잔 드링킹하고

오후 4시까지 아이들과 내내 자전거를 타거나 온 동네를 뛰어다녔다.

주 3회 이상은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3 이상을 기록했을 듯하고

낮시간에는 회의와 메일의 수렁 속에서 허우적댔다.

오전 8시 출근하고 퇴근은 빠르면 7시 반

주 2회 혈중 알코올 투입은 내 업무의 연장이었기에 나의 하루 최저 근무시간은 평균 잡아 10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회사를 무척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회사를 좋아하지 못했던 이유는 여러 가지였으나 다행히 내 일은 그저 한 가지 이유로 좋아했기에

나는 성실한 회사원이었다.



그런 회사원이

학생으로 신분을 변신해서 미국에 왔다.

잠깐이지만 회사에 가지 않아도 되는 것만으로도 나는 다 괜찮았다.

영어를 못해서 자괴감이 들어도

아이들을 남편 없이 케어하며 허둥거려도

학교숙제로 밤을 세도

자동차 경고등이 들어와도, 여행지에서 각종 실수를 해대도, 집 천장에서 물이 줄줄 세도

다 괜찮았다.

회사 다니는 것보다는 낫잖아.

그 마음으로 1년을 무사히 버텼다.



그렇게 회사원이 회사원이 아닌 채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중에

지인의 추천으로 어떤 심리상담사의 오픈채팅방에 초대되었다.

나는 거절을 못하는 병에 걸린 사람이고

사람들이 뭔가를 추천하거나 초대하면

웬만해서는 거절을 못한다.

그래서 나는 뭔지도 모르는 채팅방에 끌려(?) 들어가

며칠 동안 눈팅을 했다.


서른 명 남짓 있는 채팅방에

많이 배운 상담사님이

하루에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에 사람들은 진지하게 답을 한다.

서른 명이면 스무 개 정도의 답이 달린다.

모두가 진지하다.

개인적인 이야기들이다.

세계각국에 살고 있고 연령도 성별도 직업이나 성격도 모두 다르다.


나는 모르는 사람들에게 본명을 걸고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수줍어서

그냥 좀 얍삽하다 싶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기만 했다.

하지만 하루 한번 올라오는 질문에 나도 모르게 반응하고 있긴 했다.

하루종일 시간이 날 때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고 있었다.

숙제처럼.



그러던 어느 날

'당신을 행복하게 했던 것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이 올라왔다.

역시나 나는 유령이 되어 진심 어린 답변들을 읽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남편. 아이들. 강아지. 가족. 대부분 어떤 생명체로부터 행복을 얻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하루 내내 나에게 행복을 준 존재에 관해 생각했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다소 철학적인 질문을 하루종일 내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다.


그리고 도달한 결론은.

나에게 행복은 충만한 감정. 에 가장 가깝고

그래서 나를 충만하게 하는 것은

두 아이들. 그리고 일상에서 만나는 자연.이었다.



남편에게 미안하지만

내 평생에 처음으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살면서 어른사람에게서 행복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감사한 마음. 설레는 마음. 불타는 마음. 애틋한 마음. 편안한 마음. 그리운 마음. 등등

각종 좋은(?) 마음을 다 섭렵했으나.

이상하게도 행복한 마음을 느껴본 적이 없다니.

나는 좀 놀랐다.

그리고 대체 왜 내가 (어린) 아이들에게서, 혹은 바람. 나무. 햇살. 호수 같은 녀석들한테서 느끼는 감정을

왜 어른사람한테서 못 느끼는가.

깊은 고민에 빠졌다.

특히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서 집요하게 내 마음을 추궁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나는 불안이 큰 사람이라 그렇다.


나는 바람. 나무. 햇살. 밥 짓는 냄새. 이런 것들에게 바라는 것이 없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도 아직은 바라는 것이 없다.

그저 사랑을 준다.

그 존재 자체로 감사하고. 내가 준 것을 돌려받고 싶다거나.

혹여나 나무나 바람이 나를 떠나면 어쩌나.

햇살이나 바다의 윤슬이 나를 싫증내면 어쩌지.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나를 가득 채우게 한다.

내일부터 저 아름다운 하늘이 쭈그러지면 어쩌지.

지금 저 멋진 파도가 나를 덮치면 어쩌나.

저 푸른 나무가 쓰러지면서 나를 깔아뭉개면 어쩌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저 그 순간에 그들이 존재하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아무것도 원하지 않으며 내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에게 행복은 곧 불안이 없는 상태. 였다.


스마트한 챗 GPT도 행복은 주관적인 관념이라고 하니까 나에게 행복은 곧 불안이 없는 상태.라고 정의 내리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왜 회사를 그렇게도 두려워(?)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사람에게서 행복을 못 느끼는 경계선 불안증(제맘대로 지은 이름) 녀가

사람 투성이의 집단에서

끊임없이 경쟁하고 평가받는 컨베이어 위에 몸을 싣고

매일 10시간 이상 시간을 달리다니!!!

오. 마이. 갓.

나는 그동안 정말 엄청난 일을 해왔구나!!


나는 행복에 관한 답을 찾던 중에

지난 내 직장생활에 대한 경외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할 지도 모른다.

나는 사실 일상생활에 큰 무리가 없는 정도의 불안을 느끼는 정상(?)인이고

향긋한 바람만 맞아도 아 행복해. 할 수 있는 쉬운 행복 체감인이다.

그런 정상범주 안의 인간도

늘 누군가의 표정 뒤에 숨은 마음을 살피고

수시로 눈치를 본다.

지나가는 말에도 생채기가 나 며칠 동안 풀이 죽고

할 말을 아끼다가 입안에 똥내가 나는 기분도 느낀다.

나는 그저 좀 민감하고 소심해서

바람이나 햇살 따위에서나 행복을 느끼는

다소 지질한 회사원이다.


회사원 會社員

모이고 모여 일하는 집단의 구성원.

나는 모여서 일하는 사람 중에 한 명이다.

나는 월급을 받고.

일을 하며

그 일로부터 보람과 의미를 찾는 회사원이다.


그래서 나는

굳이 행복을 나무에게서 찾는 나를 변화시키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나는 일의 의미와 보람을 추구하고

때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상을 영위하는 불안녀로 주욱 살 거다.


행복을 사람에게서 찾을 수 없으면 어때.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행복하다

아침 커피를 사러 나선 길에서 만나는 파란 하늘

평소보다 이른 시간 출근해 잠깐 읽는 소설책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 어린이집 마당에 옹기종기 모여 모래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어쩌다 이른 퇴근길 사이드 미러에 비치는 붉은 노을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달려오는 아이들의 함성(?) 소리


나는 불안을 평균보다 1% 포인트 더 잘 느끼지만

그래서 몬스테라나 금붕어. 이구아나 같은 생명체에게서 편안함을 느끼지만

그 덕에 사람보다 관대한 존재들로부터 더 농밀하고 빈도 높은 행복을 느낀다.

나는 회사원이다.

행복은 사무실 창을 너머 스며드는 햇살로부터 느끼자.

어차피 불안 때문에 행복으로 변환도 안될 '관계'나 '인정'같은 개념은 과도하게 추구하지 않는 걸로.



아보하를 말하는 한국의 소비자들.

그래서 무해하고 조금 비싼 치약을 장바구니에 담는 우리.

우리는 어쩌면 모두 전세계 평균보다 불안이 조금 더 많은 것 뿐이다.

나에게 무해한 치약으로 아주 보통의 하루를 마무리하는 한국의 소비자들에게

경계선 불안증 아줌마가 깊은 응원을 전한다.


행복 말고도 좋은 거 많아요

감사. 평안. 재미.

아보하. 하다 보면 혹시 모르잖아요

우리도 언젠가 아. 행복하다. 하는 순간이 올지도요.

마음이 찰랑찰랑 차올라 넘칠 듯 말 듯.

절로 안면근육이 이완하는 그런 날들이 펼쳐질는지도요.

우리 포기하지 말아요

저도 어제 샀어요

세일해서 5.6달러짜리 유기농(?) 치약이요.









나의 행복 시리즈

윤슬. 달과 별. 나무와 나뭇잎. 노을. 아침공기  

어르신들 사진첩에 왜 꽃들이 가득한지 이해할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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