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국수난기 21- 마음고생 편
<소년이 온다>를 영문으로 읽고 있다.
한강의 글은 그 모양이 건조하고 단단하여 때로 설명문처럼 읽힌다.
그러나 그 안에 든 알맹이는 바스라질 듯 여리고 서슬 퍼렇게 사무친다.
사무치는 설명문.
한 폭의 그림을 보듯 그의 글을 읽어 온 나에게
- 강렬한 시적 산문 -이라는 한림원의 심사평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림을 그리듯 글을 쓰는 작가의 글은 손에 만져지고 눈에 보이며 냄새가 난다.
구체적이고 명확하여 그저 언어로 증발하지 않고
가슴에 각인되어 오랜 시간 내 안에서 떠나지 않는다.
채식주의자를 한자리에서 날숨 한번 내어 쉬지 못하고 읽었을 때
그 강렬한 서사를 잊지 못해 몇 날 며칠 앓았었다.
물구나무를 선채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처럼
고통스럽고 잔혹하여 마음을 내려둘 곳을 찾지 못해 서성였다.
잔상이 오래 남는 일본식 공포영화를 접한 것 마냥 매일 머릿속에서 장면장면이 스쳐 지났고
결국에는 남들이 쓴 평론을 찾고 후기를 읽으며 조금씩 흥분을 가라앉혔다.
공포영화나 스릴러를 보고 난 후에
애니메이션으로 그 잔상을 덮는 것처럼.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를 접하고는
그가 폭력과 억압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구나. 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대서사시나 현대사를 소설로 다루는 다른 소설들처럼
역사적 당위성, 의미, 집단화된 감정, 같은 것 말고
개별화된 고통을 말하고 싶은가. 했다.
개인의 고통에 집중한 그의 글은
너무나 정교하고 잔혹하여
나 같은 대문자 F에게는 날 선 송곳으로 살을 후벼 파는 듯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다행히 그의 산문은 대하소설이 아니기에 몇 시간 몸부림치다 보면 마지막 장을 넘길 수 있다.
시는 무척 짧다.
기껏해야 500자에서 1,000자 내외의 글이지만
초등학교 때 접한 접시꽃 당신 같은 시는 몇십 년 후에도 그림처럼 내 뇌리 속에 남아있다.
한강의 글이 그랬다.
강렬하고 맹렬하여 중간에 책장을 덮는 것을 용서하지 않고
이야기를 마친 후에도 감히 쉽게 벗어날 수 없는 팜므파탈적 자세를 견지한다.
나는 그의 글을 맹렬한 고요함.이라고 묘사한다.
그의 외적 모습도 그러하다.
이제 미국 서점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 는 Human Acts으로 번역되었다.
소년이 온다는 소설이고
휴먼 액츠는 헌법해례 같으나.
과한(?) 은유에 관대하지 않는 미국인들에게는 <인간 혹은 사람의 행위>라는 제목이 더 나은지도.
미국인들도 남북전쟁을 겪었기에
그들도 식민지 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그들도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을까. 물음표를 가진채
미 대선 당일이 되었다.
내가 사는 동네는 온통 파란색 해리스 푯말이 꽂힌 곳이다.
대선 당일은 학교에 가지 않기에
아이는 친구네 집으로 놀러 갔다.
그 친구는 딸아이가 처음 이곳에 와서 말도 못 하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천둥벌거숭이 시절을
따뜻하게 감싸준 '좋은 사람'이다.
그리고 그 아이의 아버지도 늘 학교 행사마다 출석해 내 곁에서 부족한 내 영어를 참아주고 나를 외롭지 않게 도와준 '역시나 좋은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뭐라도 특별한 선물을 하고 싶었다.
늘 가져가는 쿠키 같은 것 말고. 좀 더 한국적인 것.
그래서 고른 것이 바로 휴먼액츠였다.
책 안에 아이가 쓰다 버려둔 빳빳한 연두색 종이를 끼우고 거기에 짧은 편지를 남긴다.
오늘은 너희 미국인들에게 특별한 날이겠구나.
이 책은 며칠 전에 우리가 이야기했던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작이야.
작가 한강은 늘 약한 것. 에 관심을 가지는 작가야.
그리고 이 소설은 특별히 한국의 아픈 현대사를 다룬 책이고.
역사를 해석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의견이 나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항상 기억하려 노력한다는 거야.
그게 작은 내 나라의 힘이라고 생각해.
너에게 이 책을 선물할 수 있어 무척 영광이야.
뭐. 요런 좀 스몰 한 국뽕을 담아서.
그는 '좋은 사람'이므로 쪼그만 나라에서 온 영어 못하는 아줌마가 국뽕 좀 보여준들
크게 유감스러워하지 않을 거라 믿으며
그에게 책을 내밀었다.
그리고 미 대선은 다음날 그가 원하는 결과를 가져오지는 못한 듯하다.
실제로 많은 미국인들은 트럼프 당선자가 후보시절에 ‘나는 독재자가 될 거야'라고 한 말에
깊은 우려를 가지고 있었다.
나의 절친(?)한 화상영어 선생님도 대선 다음날
크게 낙담하여 언빌리버블, 크레이지, 아이 캔트 언더스탠드. 하셔서
위로의 마음을 담에 휴먼액츠를 UPS로 보내드렸다.
늘 김홍도의 그림이 그려진 부채를 선물하던 나는
새로운 코리안 트레디셔널 기프트 목록이 업데이트되어 무척 기뻤다.
우리의 아픈 역사가
나의 국뽕을 더욱 부풀리는 소재가 될 수도 있구나.
나는 노벨문학상이라는 해피엔드 결말 위에 서있으니까. 하면서.
그리고 한 달 뒤
나는 아직 해피엔드 결말 위에 서 있는 게 아닐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한 달 전에 미국인들에게 '우리는 다 극뽁. 했어!' 미소를 지었던 나는 좀 머쓱해졌다.
아직 끝난 게 아니구나.
내가 너희들 걱정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구나.
자랑스럽게 내민 국뽕의 열매를 슬며시 주머니 속에 밀어 넣는다.
지난여름 보스턴에 갔을 때
수륙양용버스를 타고 보스턴 시내를 돌았다.
목소리가 걸걸한 가이드 아저씨는
보스턴식 영어가 뭔지 가르쳐주며 미국독립의 역사를 설명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광주나 마산 스타일의 바이브였던 거 같다.
그리고 그 아저씨는
여행을 마치고 어둑한 거리에 하차하는 우리를 붙잡고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너한테는 우리 보스턴의 역사가 더욱 인상 깊지 않니
나는 한국이 어렵게 독립과 민주주의를 쟁취한 역사를 알고 있어
한국 근현대사를 알은체하는 그 아저씨가 반가워 호텔로 가자는 아이들을 붙잡고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너희 나라도 식민지 생활을 했다는 걸 전혀 생각 못했어
너희 나라가 자유민주주의를 생각하는 진지함이 매우 인상적이야
너는 좋은 리더들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독재를 경험하지 않았구나. 부럽네.
그러자 그는 국뽕이 가득 찬 표정으로 결연하게 말했다.
그래. 그래서 너희들이 중요한 거야.
미래는 너희들이 만들어가는 거니까.
덕투어 버스 앞에서 아무 생각 없이 서있던 아이들이 갑자기 숙연해졌다.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 들었다에 내 손목을 건다)
그래도 아저씨의 눈빛이 워낙에 진지하니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알고 있는 정치 시사 단어를 다 소진한 나는 서둘러 인사를 건네고 호텔로 돌아왔다.
대통령제라는 강력한 통치체제를 가진 미국이
그래도 큰 이변 없이 200년이 넘도록 민주주의를 지켜온 것에 경의를 표한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이제 겨우 70여 년.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는 신생국인 우리나라가 누구보다 드라마틱하고 강렬한 현대사를 써온 만큼
다가올 미래도 현명하게 이겨나가기를 바란다.
문학적 가치로 인정받은 한강의 소설이
역사적 가치로 새로 조명되지는 않기를
내 아이들이 소설 속에서 현재를 보게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무자비한 폭력성과 오만함 속에서도
본 뒤 인간은 연약함과 온유함을 가진 동물임을.
미래의 여느 소설 속에서도 늘 확인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나는 두 소녀의 엄마니까.
나는 소녀가 온다.라는 새 소설 속 엄마가 되고 싶지 않으니까.
오늘 매일경제에 노벨문학상 심사위원장의 인터뷰가 실렸다.
매일경제에 한강 작가와 무척 친분이 깊은 기자가 있음에 틀림없다. (웃음)
지난번 수상 때도 작가님의 인터뷰를 단독으로 싣더니.
이번 난리통에는 위원장의 인터뷰를 게재하다니.
경제신문의 배신이다 싶다. (역시나 농담이다)
참고로 링크를 걸어둔다.
노벨상 심사위원장 안데르스 올손 단독 인터뷰
“한강의 소설은 인간의 고통에 대한 거대한 질문을 담고 있다.”
안데르스 올손 노벨문학상 심사위원장(노벨위원회 노벨문학상 의장·75)은 3일 매일경제와 단독 인터뷰에서 “한강의 작품에서 반복되는 것은 윤리적 차원과 인간의 고통에 대한 강한 감각”이라고 강조했다.
올손 위원장은 오는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개최되는 한강 작가의 2024년 노벨문학상 시상식에서 심사위원회 전원을 대표해 스웨덴의 칼 구스타브 16세 국왕과 세계문학 독자들에게 ‘2024년 노벨문학상 한강 선정 사유’를 연설하는 인물이다. 노벨문학상 심사위원장이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진행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https://www.mk.co.kr/news/culture/11186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