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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요정 Jan 22. 2021

크로스오버 음악을 아시나요?

장르에 사생아는 없다

내가 음악을 접한 것은 어릴 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면서이다. 전공자로서의 소질은 별로 없어서 체르니 300번을 치고 그만둔 걸로 기억한다. 그 이후의 내 음악은 학교의 음악시간과 교회 성가대 생활, 라디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선물하면서 듣던 카세트테이프로 기억한다. 그래도 음악은 언제 어디서나 흘러나왔고 그냥 삶 속에 공기처럼 스며들어 존재했다. 음악을 좋아해서 굳이 찾아 듣지 않는 이상, 일반인이 여러 장르의 음악을 집중적으로 다양하게 들을 기회는 별로 없다. 그런데 여러 종류의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게 되면서 생각보다 다양한 노래가 있음에 놀랐고,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여러 장르의 음악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 이 부분이 오디션 프로그램의 순기능 중 하나가 아닐까? 묻혀있던 좋은 음악을 세상에 소개하는 역할 말이다. 


그러다가 알게 된 크로스오버 음악. 처음엔 너무 생경해서 이게 뭐지? 했었는데, 지금은 어느새 크로스오버 장르가 확장되고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누리기를 바라는 사람 중의 하나가 되었다. 크로스오버 음악의 사전적인 정의는 '어떤 장르에 이질적인 다른 장르의 요소가 합해져서 만들어진 음악'이다. 쉽게 표현하면 퓨전음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대중가요에 클래식이 합해지거나 혹은 국악이 합해지거나 때로는 국악과 클래식이 합쳐지거나 이런 것들이 다 크로스오버가 된다. 




한국 크로스오버 음악의 효시: 성악가와 대중가수가 함께 부른 '향수'. 

1989년 김희갑 작곡, 정지용 작시로 테너 박인수 님과 대중음악 가수 이동원 님이 함께 부른다. 나도 많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정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어디서나 이 노래가 흘러나왔고, '향수'는 국민가곡으로 자리매김한다. 그런데 이런 시도로 장르의 다변화와 확장이 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보수적인 성악계의 반발로 인해서 시도로만 그치고 만다. 당시 서울대 교수였던 테너 박인수 님이 재임명에 탈락되기도 하고 국립오페라단에서 축출되는 등 여러 파문이 있을 정도로 국내 클래식계는 장르 퓨전을 외면했고 그로 인해 결국 대중으로부터 가곡, 클래식 등이 외면당하게 된다.

출처: 차이나는클라스 방영 중 캡처




크로스오버의 또 다른 예시 : '세시봉'의 일원이었던 송창식 님의 '남몰래 흐르는 눈물(Una furtiva lagrima)'

세시봉은 1953년 서울 서린동(무교동)에서 개업했던 한국 최초의 대중음악감상실이다. 소량의 입장료만 내면 그 당시 인기 팝 음악을 들을 수 있었고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이 모여 통기카 라이브를 하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조영남 님이다. 그중 송창식 님의 일화를 소개한다. 송창식 님이 처음 '세시봉'에 입문할 때 부르신 노래가 오페라 사랑의 묘약 중 아리아 '남몰래 흘리는 눈물'이다. 당시 그 노래를 듣던 모든 관객들이 얼었다고 표현할 정도로 아름다운 노래였다고 한다. 사실 송창식 님은 서울예술고등학교 성악과 출신으로 여유가 없어서 대학에 진학하지는 못하셨다. 그래도 계속 음악을 하고픈 마음에 세시봉에 참여하게 되는데 상상해보라. 기타를 치면서 부르는 오페라 아리아. 그렇다면 이것도 넓은 의미에서는 크로스오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타 장르의 결합은 아니지만 오케스트라가 아닌 기타 반주에 의한 오페라 아리아는 그 자체가 혼합이 아닐지.


난 음악전공자도 아닌 일반인으로 이 노래를 특별히 찾아 듣거나 알지는 못했지만, 여러 곳에서 듣기는 했는지 듣는 순간 '아, 이거구나.' 하고 알 수는 있었다. 먼저, [사랑의 묘약]이라는  오페라는 도니체티의 희극으로 한 마을의 아름답고 부유한 여인을 짝사랑하는 농부 청년의 이야기이다. (☞사랑의 묘약이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것으로 이 약을 마시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게 된다고 한다. 진짜 이런 묘약이 있다면? 흠~~ 과연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ㅎㅎ)

사랑의 묘약을 파는 사기꾼에게 속아 그 약을 먹지만, 결국 진심이 통하여 이 둘의 사랑이 이루어지게 되고, 

그때 청년이 기쁨으로 부르는 아리아가 바로 '남몰래 흘리는 눈물(Una furtiva lagrima)'이다.

출처: 유튜브 스트리밍 중 캡처(사진에 출처 있음), 유채훈(러브 포엠 공연 중)

실제로는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이 아리아를 불러서 167회의 기록적인 커튼콜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가장 유명하기도 하지만, 이 노래를 부른 사람들은 생각 외로 굉장히 많다. 내가 이 노래를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은 '러브포엠 공연'에서 유채훈 님이 부르셔서였다. 지금도 가끔 유튜브로 찾아 들을 만큼 너무 아름다운 노래이다.




대중가수의 크로스오버 시도 :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

지금은 아니지만 당시 10대부터 2~30대까지 아니 어쩌면 그 당시의 모두에게 '서태지와 아이들'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오죽하면 '문화대통령'으로 불렸을까? 물론, 지금도 서태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많을 것이다. 솔직히 우리나라 대중음악 역사상 서태지만큼 충격적이었고 놀라울 만큼 영향력을 발휘했던 사람이 있을까? 음악도 문화의 하나이기 때문에 당연히 유행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트렌드라는 게 있다. 요즘 트로트가 대세인 것처럼. 그런데, 문화나 유행의 시작이 된다는 것, 혹은 선구자가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어려운 일을 갓 20살 넘은 청년이 해냈다는 것만으로도 놀랍고 대단하다.


1992년 초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3인조 그룹이 '난 알아요'라는 노래를 발표한다. 이것이 우리나라 댄스음악, 힙합 장르의 선구자라고 불리는 그룹의 등장이다. 완전 센세이션이었고 그때의 젊은 사람들은 서태지에 열광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뭐, 팬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놀라웠고, 신선했고, 사실 천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으니까.

그리고 1993년에 나온 '하여가'. 나에게는 정말 충격적인 노래였다. 아니, 대중가요에 국악이 들어가다니? 그럼에도 너무 힙하고 이런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전문가의 평을 빌어서 얘기하자면, 이 '하여가'는 펑크 사운드 브레이크 비트와 헤비메탈, 힙합 그리고 국악이 혼합된 하이브리드 댄스 뮤직으로 장르적으로는 랩 메탈이란다. (ㅋ ㅋ 뭔 말인지...) 단, 하나 알겠는 것은 굉장히 많이 섞였다는 것,  즉,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크로스오버라는 거다.

이 노래를 듣다 보면 태평소 연주가 중간에 들린다. 정말 그 당시에도 어떻게 태평소가 이런 힙합과 어울리는지 굉장히 놀라워했던 기억이 난다. 모든 예술의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국악이라고 해서 서양음악이나 대중음악과 어울리지 않을 거라는 건 아마 편견일 것이다. 이런 시도를 한 게 30여 년 전이라는 것도 놀랍지만,  그 이후에 특별히 크로스오버적인 시도를 한 대중가요가 별로 없다는 것도 놀랄 일이다.




크로스오버의 확장을 위한 시작 : '팬텀싱어'의 탄생

2016년에 성악, 뮤지컬, KPop 보컬에 이르기까지 여러 장르의 숨은 실력자를 발굴해서 남성 4 중창 그룹을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오디션 프로그램 '팬텀싱어' . 아무도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면서 시즌 3까지 방영된다. 누군지 몰라도 처음 기획을 제안하고 실천한 이를 칭찬하고 싶다. 결국 크로스오버 장르라는 것을 대중에게 인식시키는 큰 역할을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처음 팬텀싱어 시즌1이 시작되었을 때 이미 각 분야에서 프로인 숨은 실력자들이 나와서 노래를 하게 되니 

처음 노래를 들었을 때는 그저 충격이었을 따름이었다. 공짜로 안방 1열에서 이런 고품격 공연으로 귀호강을 할 수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기만 했던 프로그램. 그리고 이런 고품격 노래 말고도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과의 차별성이 존재한다. 그것은 경쟁보다는 조화와 화합을 추구했다는 점이다. 이제까지의 오디션 프로그램은 한 명의 1등을 뽑는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경쟁구도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4 중창을 만들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경쟁임과 동시에 평생의 음악적 동료를 찾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래서 더 따뜻하고, 서로에게 순수하게 감탄하고, 나와 어울릴 수 있는 소리가 무엇일까 진지하게 고민한다. 또한 다른 장르의 음악뿐 아니라 언어, 문화도 배우기 위해 노력하는 그런 청년들의 모습이 아름다웠던 프로그램이다. 그래서 더 크로스오버 음악에 매력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성악가와 뮤지컬 배우, 록가수, 연극인, 국악인이 함께 팀을 이루어 가요를 부르기도 하고 클래식을 부르기도 한다. 시즌3에서는 성악가로만 이루어져서 성악 어벤저스라고 불리는 팀인 '라포엠'이 우승하면서 성악가들이 가요도 부르고 팝송도 부른다. 노래할 수 있는 무대가 필요했고 그런 간절한 마음으로 팬텀싱어가 된 싱어들. 방송 이후에도 대중들에게 알리고 다가가기 위해서 노력한다. 아직 불모지나 다름없던 크로스오버 장르.  그래도 앨범과 공연, 방송 활동 등 열심히 활동하고자 노력한 역대 우승팀을 비롯한 결승팀들의 활약으로 조금씩 대중들에게 알려진다. 특히, 팬텀싱어 시즌 3은 많은 팬덤이 형성되어 더욱 활발한 활동을 한다. 아마 그 인기를 실감하기 때문에 이번에 '팬텀싱어 올스타전'도 시작하지 않는가 싶다. 물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이럴 때 '팬텀싱어 올스타전'을 통해서 크로스오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커지고 그래서 이 장르의 저변이 확장되기를 크로스오버를 좋아하는 팬으로서 간절히 바란다.




크로스오버도 하나의 장르인가?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어떤 장르에 이질적인 다른 장르가 합해져서 이루어진 음악이 크로스오버이다. 즉, 특정한 어떤 장르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대중들은 크로스오버가 클래식에 대중음악을 믹스한 장르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 기초가 클래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일반인들은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잘하는 성악을 계속하지 왜 대중가요를 하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사람들도 있다. 마치 '향수'가 나왔을 때 클래식계의 반응처럼. 솔직히 보수적인 사고방식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어차피 개인의 의견이고 그 사람의 음악적 취향이라고 얘기하면 할 말은 없다. 그리고 당연히 자신의 취향에 대해서 주장하고 말할 자유가 있다. 


하지만 공식적인 음원사이트나 음악계에서는 장르에 대한 분명한 정리가 돼야 하지 않을까? 어쨌건 그들은 음악 전문가들이 아닌가. 그런데, 크로스오버가 클래식의 하위 장르로 있거나 혹은 하위 장르로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크로스오버 음악을 들어보면 알겠지만 클래식이라고도 대중가요라고도 할 수 없다. 그저 새로운 하나의 장르일 뿐이다. 그렇다면 하나의 장르로 인정하고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음원사이트들은 자본의 논리를 내세워 소수의 장르까지 다 세분화하기 위해 시스템을 바꾸는 게 이득이 안된다고 할 수는 있다. 어차피 영리 사업이니까. 하지만 음악계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예술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대중의 관심이 필요하다. 대중의 관심이 있고 나서 뒤따라 허겁지겁 따라오는 것은 의미 없다. 도리어 대중의 관심을 유도할 수 있어야 한다. 즉, 트렌드를 주도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더 발전할 수 있다. 게다가 크로스오버 음악의 경우 대부분의 팬은 4,50대 이후이다. 이 세대들은 베이비부머와 포스트부머 세대로서 구매력과 자본력이 있을 뿐 아니라 많은 인구로 유행을 이끌어갈 수 있는 세대이다. 이런 이들이 응원할 때 한바탕 놀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준다면 좀 더 크로스오버 시장도 음악계도 함께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방송계는 이런 흐름을 타기 위해서 '팬텀싱어 올스타전'도 기획하는데, 음악계도 독립적인 장르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좀 더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장르에 사생아는 없다. 장르로 태어났다면 그 자체로서 하나의 장르인 것이다. 난 음악 전문가가 아니다. 그저 크로스오버 음악의 팬으로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음악의 매력을 알고 좋아해 주길 바랄 뿐이다. 


음악, 영화, 드라마, 웹툰 등 우리나라의 문화는 이미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다양한 장르가 함께 공존하며 발전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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