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성향이 파악되기 까지
결혼을 하고, 첫째 아이가 내 아내의 뱃 속에 있을 때 나는 많은 양의 육아관련 도서를 읽었다.
와이프의 강압에 의해 읽기를 시작한 면도 없지 않았지만,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똑같기에 와이프가 추천한 도서를 열심히 읽었다.
그런데, 몇권의 책을 읽었을 때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모든 내용이 대동소이했고,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 내용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예를들어 아이가 말을 안들어도 화를 내지 말고, 차분하게 알아듣게 설득하라는 내용이 대표적이다.
표현만 다를 뿐 도덕교과서에나 실린 만한 이러한 내용이 육아관련 도서에는 생각보다 많다.
"누가 이런거 모르나. 그게 안되니까 문제인 거지"
"그리고, 설득해서 알아들을 정도면 왜 화를 내겠어"
이러한 내용의 문구를 볼 때마다 문득 든 생각들이었다.
그래도, 좋은 아빠가 되고 싶은 욕심에 그 따분한 책들을 끝까지 다 읽었다.
뿐만 아니라, 나의 아내는 첫 아이이기에 태교에 정말 많은 신경을 썼다.
클래식 듣기, 커피 등 절대 안마시기, 영어책 읽기 등 자신의 본능을 조절해 가며 태교에 힘썼다.
당시만 해도 우리 부부는 차분하고, 똑똑한 아이가 태어날 걸로 생각했다.
그렇기에 이후 우리 아이가 ADHD 진단을 받았을 때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의 첫 아이가 탄생했다
그런데, 아이의 성향이 생각보다 키우기 쉽지 않았다.
처음에 우리는 첫 아이인데다, 남자아이라 그런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어린이집에 갔을 때 어린이집 선생님이 우리에게 이런 말을 했다.
"아이가 너무 순수해요. 마음의 상처도 잘받고, 제일 걱정되는 건 사회성이에요"
그게 우리가 아이의 성향에 대해 걱정하게 된 첫 계기였다.
그때만 해도 ADHD까지 걱정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나 유치원에 입학한 이후에도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를 못하였다.
친구들이 조금만 놀리거나 장난을 쳐도 그것에 대해 많이 힘들어 했다.
또한, 그림을 그리는 등 자신이 하던 일이 있으면 선생님이 제지를 해도 그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선생님들이 우리 아이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유치원 참관 수업이 있어 가보면 우리 아이가 아무리 손을 들어도 선생님이 발표를 잘 시켜주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나는 자주 속이 상해서 집에 돌아오고는 했다.
또한, 자면서 이불에 소변을 지리거나 바지에 대변을 묻혀오는 일도 꽤 자주 있었다.
그러한 일들이 쌓이면서 우리 부부에게는 또 다른 두려움이 쌓여갔다.
혹시, 그냥 예민한 아이가 아니라 다른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유치원을 졸업할 무렵,
내 아내는 아이의 초등학교에 대해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너무 예민하고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살다보니 선생님들이 혹시나 방치해버릴까봐 걱정이었다.
그래서 아이를 제대로 파악하고 잘 케어해 줄 수 있는 학교를 보내기로 했다.
그리고 와이프가 어느 날 내게 말했다.
"대안학교라는 곳이 있는데, 북미식 교육을 지향해서 아이와 선생님이 대등한 관계에서 서로 친구처럼 대해준대. 그리고 수업도 앉아서 수업만 듣는 방식이 아니라 여러가지 활동을 할 수 있대"
나에게는 여간 솔깃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도 우리 아이가 혹시나 천덕꾸러기가 될까봐 많은 걱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그럼 우리 대안학교에 보내자"
그렇게 우리 아이는 대안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