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의 번역 봉사, 내 마음을 지켜준 시간들

by 샤론킴



대학교 3학년.

‘승무원’이라는 꿈을 품고

나는 무엇이든 도전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물도 무서워했지만 수영을 배웠고,
Be동사조차 헷갈렸지만 영어를 바닥부터 다시 시작했다.


매일 새벽 6시 40분.
2년 넘는 시간 동안 기초를 갈고닦았다.


그렇게 시작한 영어 공부는
결국 내가 월드비전 번역 봉사를

시작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하게 해 주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자연스럽게

영어를 쓰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이력서 한 줄을

채우기 위한 활동이었다.


1년 정도만 하고 그만둘 생각이었다.

그 봉사를 시작한 해가 2015년.
그리고 지금, 11년 차가 되었다.


처음 번역했던 아이의 편지에는
부모님과 함께 보낸 소소한 하루가 담겨 있었다.
나와는 너무 다른 환경에서 자라고 있었지만,
글 속에는 꿈과 희망, 아이만의 따뜻함이 느껴졌다.


나는 그 글을 한국어로 옮기며
지친 하루를 버텨낸 나 자신에게도

살며시 위로를 건넸다.


이 작은 봉사는 어느새

내 마음을 지켜주는 루틴이 되었다.


직장에서는 늘 평가받고, 눈치를 보고,
불안한 계약직이라는 현실 속에서
내가 진짜 괜찮은 사람인지
확인받고 싶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이곳에서만큼은,
단 한 번도 평가받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Hello, my sponsor.”
“Thank you for your support.”


짧은 인사말이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심은 종종 나를 울게 만들었다.

어느 날, 퇴근 후 지친 마음을 안고
한 아이의 편지를 번역하다가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내가 이렇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구나.’
그 단순한 사실이
어쩌면 내가 계속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번역 봉사는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준 조용한 힘이었다.

바쁘고 지치는 하루 속에서도
이 일만큼은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네 번의 이직을 했고,
수없이 흔들렸으며,

스스로를 자주 의심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편지를 번역할 때만큼은
“지금 이대로의 나도 충분해.”라는 마음이 들었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 작은 봉사는,
내 마음의 중심을 지켜준 시간들이었고
그 덕분에 나는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


바쁜 회사일과 일상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아이들과 후원자의 편지를 번역하고 있다.


언제까지 이 봉사를 계속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할 수 있는 한,

아니 시간을 내서라도 계속 이어가고 싶다.


이 조용한 루틴이
앞으로도 내 삶을 단단하게 지켜주기를.


그리고 언젠가,
내가 누군가의 하루에

작은 위로가 되어주기를.



<나는 늘 누군가를 챙기며 살아왔다>를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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